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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운동이 가장 초라해 보였을 때는 1996년 노동법 날치기 개악이 이루어지기 직전인 12월 중순이었다. 당시 상황은 정세적으로도, 운동내부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았다. 김영삼 집권이후 가속화된 시민운동은 기존 민중운동의 운동방식을 공격하였고, 노동자 운동을 이익집단의 운동으로 치부하였다. 부르주아 언론에서는 연일 이것을 대서특필하였고 마침 연세대 사태가 터져 나오면서 운동권에 대한 마녀사냥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리고 이미 사회운동의 주류가 된 시민단체들은 전국연합 같은 민족주의진영과도 잘 연대하려하지 않았다. 당연히 좌파는 모든 연대운동 공간에서 왕따였고 좌파 담론은 공격받았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운동진영 내에서조차 민중이라는 단어는커녕 진보라는 말만 꺼내도 시대착오적이고 교조적인 인간으로 낙인찍힐 정도였다.
그 당시 좌파는 1992년 백기완선거운동본부 이후 이렇다할 정치적인 진전이나 대중적인 진출을 하지 못했다. 대중적 토대도 없었고,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이념적 해체상태 속에서 각자 재갈길만 가고 있었다. 게다가 정권으로부터 대대적인 침탈을 받아 수 년에 걸쳐 조직사건이 터졌고 제대로 남아난 단체가 없을 정도였다. 학생운동, 청년운동, 정치운동, 노동현장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공안탄압의 기운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결국 '민중운동 탄압분쇄 범대위'를 구성하여 정세적인 대응을 확대하려고 했으나 사실상 어떤 활동도 할 수가 없었다. 위 얘기대로 좌파는 왕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좌파운동의 대중적 복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1996년 하반기 들어서서 경제위기가 한층 고조되었다. 그 즈음에 '경제위기극복 시민5단체연대회의'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경제위기를 빌미로 노동법개악 움직임이 가사회되자 이를 확대하여 '민주적 노사관계와 사회개혁을 위한 범국민대책위'로 재편하게 되었다. 이 때에 민교협 주선으로 간신히 민운탄범대위가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자 여연, 경실련, 환경련 순으로 이런 극좌파 단체와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빠져나가게 되어 민변, 민교협, 전국연합과 민운탄범대위 등 몇몇 단체들로 대책기구가 구성되었다.
한편 민주노총은 노동법 개악시 총파업을 단행하기로 어렵사리 결정하였다. 하지만 예고되었던 총파업은 12월 2일(1차 철회선언), 13일(2차 철회)에 이어 최종적으로 12월 18일 국회폐회와 더불어 완전히 철회되었다. 그러자 대책위 내부의 모든 단체가 빠져나가고 오로지 민운탄범대위만이, 좌파만이 남아서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노동현장은 분노와 좌절로 들끓었으나 사실상 운동은 개점휴업상태로 접어들었고 연말 휴가 분위기로 돌아가게 되었다. 어렵사리 연대운동판에 명함을 내밀게 되었던 좌파운동진영도 총파업 철회로 또 다시 고립되었다.
그렇게 1주일이 흐르고 12월 26일 새벽이 왔다. 신한국당(현재의 한나라당)은 기습작전을 방불케하는 방식으로 새벽에 모여 임시국회를 열고 단 7분만에 노동법,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정권의 실기였고 민중운동에 있어서는 덜컥수였다. 노동대중은 분노해마지 않았고 총파업 투쟁의 요구가 현장에서부터 들끓기 시작했으며 전국적인 대응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 그러자 애초에 존재하고 있던-해체선언을 하지 않은 채 좌파만 남아있던- 대책위로 모든 단체가 급작스럽게 모였고 이것이 현재 전국민중연대의 모태가 되었던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결성으로 모아졌다. 동시에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언하고 해방이후 최초의 정치 총파업이 시작되었다. 결국 좌파는 그 대책위를 통해,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을 통해 정치적으로 복권되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좌파들이 놀았던 것은 아니다. 대우차 구조조정반대투쟁, 발전노조파업투쟁, 열사투쟁,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빈민 등 대중투쟁은 물론 반전, 반세계화 투쟁 등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선두에서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조직하고 투쟁해 왔다. 또한 다양한 사회운동 공간으로 진출하여 국제연대, 정보통신, 인권, 평화, 보건의료와 복지운동에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좌파운동은 이를 수렴하지 못한 채 각개약진 하였고 정치적으로, 조직적으로 분열하였다.
96-97 총파업의 성과로 좌파운동진영은 정치연대를 결성하였으나, 일부는 국민승리21을 통해 민주노동당으로, 일부는 청년진보당으로 독자화 하였고, 나머지 세력들이 모여 노동자의힘을 만드는 등 초기부터 분열되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까지 좌파는 각자의 입장대로 개별적인 진출만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런 각개약진의 시기가 지나간 이후 시도된 정치적 통합에서 모두 실패를 거듭하였다. 2002년 전국활동가조직 건설은 대선공투본 무산이라는 후폭풍을 맞고 좌초되었으며, 사회당의 실험도 대선이후 분열과 17대 총선에서 0.2%라는 초라한 결과로 법적해산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장운동 또한 개별 현장조직들로 고립되었으며, 사회운동 영역에서도 좌파는 소규모, 써클화 되어 사업적 연계만을 형성한 채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떠한가? 민주노총 임원선거에서 대의원들은 국민파를 지지해 주었으며 대중투쟁의 모든 정치적 성과는 민주노동당으로 수렴되어 노동자 민중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려 하고 있다. 현재 좌파단체간 유일한 정치적 연대운동체인 '신자유주의심판 민중행동'은 어떤 투쟁도 조직하지 못하고 한번의 선전전과 한번의 토론회로 활동을 마감하게 될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게 좌파는 또 다시 정치적으로, 대중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8년 전과 다른 점은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했다는 것과 총파업과 같은 폭발적인 대중투쟁이 아래로부터 조직되기에는 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같은 점은 여전히 좌파는 고립분산적이고 각개약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넋두리로 들릴법한 이러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좌파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똑 바로 보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패배주의가 대안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낙관주의, 보신주의 역시 아무런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현재 좌파운동은 전략적 침로를 상실한 상태이며 지난 8년간, 아니 십 수년간의 반복된 실패를 또 반복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진정 변해야 하는 것은 좌파운동이다. 사회가 변혁되지 않는 것은 사민주의자나 민족주의자 때문이 아니라, 변혁을 바라지만 조직하지 못하는 좌파의 무능함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로 대중의 삶의 형태가 급변하고 있고,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으로 한국사회의 주류가 교체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전쟁의 위협에, 한편에서는 불안정노동으로 생존의 전쟁터로 대중이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좌파는 노선투쟁과 감정대립으로 대중의 삶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수구세력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또한 좌파운동의 모든 전략들은 실패하였다. 비제도적 투쟁정당 건설은 거듭된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였으며, 평의회 건설은 현장운동의 후퇴로 더욱 요원해 졌고, 민중연합은 그 실체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시도는 해체되었다. 이렇게 되자 또 다시 고장난 레코드마냥 혹자는 민주노동당으로 결집하자고 하고, 혹자는 독자정당 창당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다. 또 다른 이들은 굳건히 현장을 사수하고 강화하면서 때를 노리자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정당이나 정치조직에 관심을 끄고 새로운 사회운동의 전형을 만들어 가자고 한다. 이 얼마나 지루한 반복인가?
실패의 원인은 단순하다. 좌파의 제한된 역량으로 파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파이 따먹기를 계속해 왔고, 연대하고 비판하면서 서로의 운동을 강화시켜 온 것이 아니라 발목잡기만 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똑 같은 이야기를 자기 조직중심으로 해 온 것이 좌파였다. 비제도적 투쟁정당이, 민중연합이, 비국가평의회가, 노동자사회운동체의 과제와 역할과 이념과 조직운영방식에서 무엇이 달랐단 말인가? 현장권력과 노동대중의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를 염원했던 현장조직의 과제가 무엇이 달랐단 말인가? 지금 모든 좌파역량을 동원하여도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기는커녕, 현실적인 흐름으로 작용하는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적 경향과 민주노총 내부의 사회협조적 경향을 바꾸어 내기에도 벅차다.
나는 좌파의 통합을 주장한다. 그것도 즉시 진행해야 한다. 과거에는 서로의 차이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이제는 서로가 자기 운동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치적 제어, 민주노총의 계급적 강화, 사회운동의 새로운 돌파구를 형성하는 것. 이 모든 것의 최소 전제조건이 바로 좌파의 통합이다. 동시에 어느 하나를 절대화하여 편협하게 바라보지 않고 좌파운동의 파이를 키워나가야 한다. 그 방향은 첫째, 정당운동을 초월하는 비제도적(이는 다른 말로 하면 비국가적이며, 사회운동적이고, 평의회적이다!) 운동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둘째, 대중투쟁에 의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중행동과 대중운동을 직접 조직하고 결합할 수 있는 운동구조와 방식으로 변모해야 한다. 셋째, 이를 통해 좌파끼리의 노선논쟁에서 벗어나 좌파담론의 대중적 복원 계획을 가져야 한다.
이 글은 몇 회에 나누어 연재한다. 이를 통해 좌파운동의 과거를 돌아보고 좌파 통합의 새로운 전략과 공간을 열어가기 위한 고민을 모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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