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통제를
- 발의권, 소환권 쟁취 운동의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
이주영 (인권운동사랑방) 읽음: 3221
작성일: 2004년04월23일 12시35분35초
인민들은 자신이 뽑은 대표자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자신들의 삶의 조건과 관련된 중요한 제도의 신설 혹은 변경, 즉 법안을 대리자 없이도 직접 발의하고 논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주권자에게 당연한 권리여야 할 발의권, 소환권을 쟁취하자는 운동을 지난 한달 여 간 벌였다. 현 시스템 하에서 인민에게 허락된 유일한 주권 행사인 선거도 끝난 지금, 그 동안 진행됐던 발의권, 소환권 쟁취 운동을 평가하고 이후 과제를 적어보려 한다. 이 운동을 함께 진행했던 ‘국민발의권, 국민소환권 쟁취를 위한 네트워크’에서는 논의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 글은 이 운동에 함께 했던 한 활동가로서 쓰는 글임을 미리 밝혀 둔다.

왜 발의권, 소환권이었나?

운동을 해 오면서 씁쓸했던 기억의 상당수는 여의도 벌판에서의 싸움들이었다. 파병동의안, 집시법 개악안, 테러방지법안 등 침략전쟁에 동참해 평화를 파괴하고, 민중들의 표현의 자유를 결박하고, 정보기관의 권한을 확대해 감시의 그물을 더 촘촘히 하는 움직임들이 법률로 완성되려는 위기의 국면에 우리들은 국회 앞 거리를 메우기도 하고, 국회의원실 돌아다니며 이른바 ‘면담투쟁’을 하기도 하고, ‘신성한’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기습 시위를 하다 닭장차에 실려 끌려 나오기도 했다. 또 근로기준법 개악안, 한-칠레 FTA 협정 비준안 등을 막기 위해 노동자, 농민들은 여의도에서 ‘아스팔트 농사’를 지었다. 국회는 번번이 우리가 결코 스스로 위임한 적 없는 권력을 행사하며 의사봉을 휘두르는 결정권자로서 군림했다. 우리는 주권을 잃은 ‘노예’로서 분노와 무력감에 치떨어야 했다. 정치에 대한 환멸로 속이 탔다.

이 와중에,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은 저마다 갖고 있던, 대의기관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폭발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던 게 아닌가 싶다. 대중들의 자발적 분노가 이후 열린우리당의 세 불리기에 이용되고, 질서가 과잉 강조된 촛불시위 속에서 저항의 빛을 상실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초 그 분노가 부르주아 의회 정치에 대한 강한 도전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점이 평가절하 되어선 안 될 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몇 가지 해법들이 제시되곤 한다. 그 중 하나는 ‘그날’이 와서, 민중들이 국가기관을 장악하면 일거에 풀릴 문제이므로, 지금은 현장에서의 투쟁을 열심히 하자는 것. 혹은 진보적인 정당이 국회에 진출해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될 때,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좋으리라는 것 등. 이런 주장들이 다 일정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대리자와 주권자 사이의 긴장과 불일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직접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지 않는 한, 의회 안에 갇힌 정치에 대한 환멸은 탈출구를 찾지 못할 것이란 점에 우리의 고민은 도달하게 됐다. 발의권, 소환권을 쟁취하자는 주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렇다고, 발의권, 소환권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자동적으로 신장할 것이라는 둥의 대단한 환상을 품고 있는 것도, 대의기관을 대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대립적 관계와 모순을 보다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공적 결정에 대한 민중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개입의 통로를 만들어준다는 점에 우리는 착목했다.

활동에 대한 평가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진 단체들로 구성된 ‘국민발의권, 국민소환권 쟁취를 위한 네트워크’는 총선 때까지 거리와 학교 등에서의 서명운동, 총선 투표함에 국민발의 요구 용지 넣기, 발의권?소환권 요구하는 메일 이어 보내기 등의 몇 가지 공동행동을 함께 진행했다. 4월 7일에는 발의제, 소환제에 대한 헌법적 검토, 외국의 사례를 통해 본 한계와 가능성, 부안에서의 실험, 그리고 민주주의 투쟁의 의미 등을 토론하였다. 10일에는 직접 각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 의제를 자유로이 발의하는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 아래, 서울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민공동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의 합법화, 병역거부권 인정, 청년실업 문제 해결, 이라크 파병동의안 철회, 미군기지 반대, 교육개혁 등을 발의했다. 조직된 참가자 외의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는 집회를 만들어보겠다는 애초의 취지가 썩 잘 실현됐다고 볼 순 없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말 건네기’ 혹은 집회 안에서의 민주주의 등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공동행동 중 하나였던 ‘투표함에 국민발의권 요구 용지 넣기’는 예기치 않았던 ‘파문’을 일으켰다. ‘용지 넣기’는 몇 년 만에 찾아온 유일한 주권 행사의 순간에 이제 곧 주권자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국민들의 어이없는 처지를 상징적으로 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민중들이 직접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면 굳이 투표함에 다른 용지를 넣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언론은 이러한 취지는 외면한 채, ‘용지 넣기’의 불법성 여부만 부각시키며 선관위와의 대결을 부추겼다. 사실 그들의 ‘법치’의 관점에서 따져보더라도, ‘용지 넣기’는 다른 이들의 선거권 행사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기 때문에 선거법 혹은 관련 시행령 및 규칙 어떤 규정에 의해서도 규제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직전까지 선관위와 법무부는 ‘엄정대처’ 운운하며 언론의 선동에 동조했다. 정작 4월 15일, 언론이 기대했던 투?개표 방해 행위 혹은 투표장에서의 소란은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지 넣기’에 참여했는지는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용지 넣기’가 투표 행위로 우리의 주권을 가두지 않겠다는 상징적 실천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용지 넣기에 대해 일부 시민들(?)이 보인 부정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들의 선거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분명한데도 일부 사람들이 용지 넣기에 대해 상당한 적대감을 보인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보통선거권의 행사마저도 여전히 불안정하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선거만이 유일한 주권행사이며 투표함은 신성한 것이란 주술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됐든, 어떠한 직접 행동을 대중적인 실천의 한 방식으로 제안할 때 우리가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식 및 정서와 접속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지난 한 달 동안의 짧은 운동 과정에서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이 운동의 주체가 그다지 넓지 못했던 점이다. 여러 가지 변수들이 요동치며 상황을 변화시키는 가운데서 기층 시민들 혹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투쟁하는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준비나 고민이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 같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어떻게 하면 더욱 대중적으로 소통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동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상황을 새롭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무척 기본적인 사항이 실제 운동 과정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고려되고 준비되지 못했던 점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아래로부터 상당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발의권, 소환권 운동’이 실제 기대했던 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한편, 좌파운동이 이 운동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도 아쉽다. 성명서나 유인물에 ‘발의권, 소환권’에 관한 구호를 한 두줄 넣는 정도로 그치고, 탄핵 및 총선 국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공동의 실천을 만들지 못했던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우리의 연대 노력이 부족했던 탓도 있겠지만, 좌파 운동 일각에서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을 교란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민주주의’적 요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던 탓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당들이 말하는 소환제, 발의제

국회에 쏟아지는 대중의 불신을 각 정당들도 모를 리 없다. 모든 정당들이 총선 전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소환의 사유와 대상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 입장들이 분명치 않은데, 부패?비리 문제로 협소하게 사유를 정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이를테면, 열린우리당은 인권운동사랑방의 관련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구체적인 국민소환의 대상은 공청회 개최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국회의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라크 파병 등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헌법소원 등 다른 방법으로 그 정당성을 묻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자칫, 국민소환제가 지금의 의회정치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봉합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편, 발안제(발의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민주노동당만이 도입 의사를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국민발안제도에 대해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것으로서 필요한 제도이나 불순 세력의 개입 등으로 정국불안의 소지가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민발의제에 대한 이러한 입장의 이면에는 대중에 대한 공포 혹은 불신이 깔려있다. 만약 이와 같은 이유로 국민발의제를 반대한다면, 이는 결국 대의제의 존재 근거도 부정하는 것이다. 대표들을 선출하는 것 역시 그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경우 이익집단의 로비에 의해 좌우되는 국회의원들의 입법 행위, 민의 의사를 무시한 정부의 입법 발의야말로 ‘불순’한 것 아닌가.

앞으로의 과제

소환제가 기만적인 장치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부안에서의 군수 소환운동의 예처럼,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의 소환의 사유를 정할 수 있도록 해 대의기관 및 관료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 장치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헌법재판소장, 대법원장, 경찰청장, 검찰총장, 국정원장 등 행정부와 사법부, 억압적 국가기구들의 비선출직 임명직 공무원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민중이 발의권을 운동의 중요한 장치로 삼고, 자신의, 혹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의제를 사회화함으로써, 민중들에 의해 실제로 작동되는 제도가 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파병동의안 철회 발의’나 ‘최저임금 현실화 발의’ 등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참가의 권리로서 투표권, 발의권, 소환권의 주체를 확장하는 문제도 중요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미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인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혹은 참정권 행사가 가능한 연령은 몇 세부터인가 등의 논의가 그것이다. 한 헌법학자는 이에 대해 참정권을 국민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 차원에서 이야기해보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또, 누군가는 이주노동자의 정치적 권리를 시민권의 확장 차원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주목해야 할 이야기들이다.

발의권, 소환권 쟁취 운동은 우리 운동 내부에 대한 성찰을 수반해야 한다. 민주적 관계, 권력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통제가 운동의 내재적 원리가 될 때, 국가기구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및 해체를 위한 운동도 힘을 얻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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