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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기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연구원)
유럽 좌파 정당 이야기의 첫번째는 독일 사민당을 살펴보기로 한다. 앞으로 소개할 네 나라중 사민주의 계급정당이 가장 먼저 등장한 국가는 독일이다. 라쌀주의적 전독일노동자연맹(ADAV)과 맑스주의적 사민주의노동자당(SDAP)이 합당하여 사회주의노동자당(SAP)이 창당된 것이 1875년이었다. 그후 1891년 에어푸르트(Erfurt) 전당대회를 통해 독일 사민주의 정당은 오늘날의 이름인 사민당(SPD)으로 개명하였다.
라쌀주의와 맑스주의의 동거로 시작된 독일 사민당의 1차 노선변화는 1891년 에어푸르트(Erfurt) 강령에서 나타났다. 독일 사민당은 창당 시기가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보다 20여년 앞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1차 노선변화도 그만큼 빨랐다. 1차 노선변화의 시기는 사회주의자탄압법이 실패로 드러나고 경제침체에 따른 노동자 생활의 악화를 배경으로 맑스주의자들의 세력이 강화된 데에서 비롯되었다.
에어푸르트 강령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대안과 혁명적 노동자운동이라는 투쟁목표를 제시하면서 노동자계급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를 명확히 제기하였다. 물론 이 강령도 실천 강령에서는 라쌀주의를 그대로 답습했고, 이념 부분에서도 변형된 맑스주의로 현상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지만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고타(Gotha) 강령에 비해서는 분명 좌선회의 모습을 띤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곧 이어 시작되어 1차대전까지 이어지는 수정주의 논쟁을 계기로 독일 사민당은 의회주의적 계급정당의 길을 노정하게 된다. 수정주의 논쟁 이후의 사민당은 라쌀주의가 담보하고 있던 온건한 혁명성조차 상실해 간 것이다. 이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탈당하게 되는 계기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 대륙의 혁명 열기가 사민당 내에서는 수정주의를 강화시킨 반면, 사회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을 강화하여 사민당과 결별하고 독자적 정당을 꾸리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이다.
독일 사민당이 강령적으로 국민정당화한 것은 1959년 고데스베르크(Godesberg) 강령에서였다. 이 강령에서 선언되고 1960년대 중후반 연정참가로 완성된 국민정당 노선은 근본적으로 계급관을 포기한 것으로서 자본주의 질서의 유지를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질서를 수용하는 한도에서나마 당시에는 아직 사민당이 '친근로자'적 이념과 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사민당이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의 속성조차 포기한 것은 1989년 베를린 강령과 1999년 블레어-쉬뢰더 성명을 통해서였다. 당의 사회적 기반을 중간층으로 이동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정책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중도'와 '제3의 길'로 수용되는 '현대적 국민정당'은 영국 '신노동당' 노선과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민족적 경쟁정당'이자 시장 원리를 신봉하는 '현대적 경제정당'을 일컫는 것이다.
계급적 좌파 진영이 척박한 독일에서 사민당조차 부르주아 정당화한 것은 좌파 일반의 쇠퇴라 할만 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노조운동을 통해 비판적 경향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을 통해 독일 좌파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 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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