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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혁구도가 제대로 정립된 적은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하는 민주노동당이 지지율 배가와 2기표 도입으로 의회진출이 무난하게 된 것은 대단히 반길 만한 일이다. 더욱 반가운 것은 민노당이 과거 '국민승리21'의 행적을 반성하고 노동자 이익의 대변에 더욱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민노당을 통해 계급 중심의 보혁구도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생겨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점일수록 더욱 계급노선을 분명히 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그런데 민노당의 강령과 정책을 보면 노동자정당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전체적으로 창당선언문과 강령 전문에는 사회주의적 목표들을 명시하고 있지만, 과학적 사회주의로 보기에는 미진한 부분이 많고, 구체적 정책은 국가사회주의적 입장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민노당의 강령과 정책은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는 듯 하지만, 그조차도 현재 유럽 복지국가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창당선언문을 보면, 민노당은 자기 정체성을 "노동자 농민 빈민 중소상공인의 정당이며, 여성 청년 학생 진보적 지식인의 정당"으로, 그리고 민노당의 주인을 "땀흘려 일하는 모든 사람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였다.
민노당의 선언적 목표는 "노동자와 민중이 주체가 되고 사회의 부가 소수에게 장악되지 않는 평등사회, 개인의 창조성과 성과를 존중하면서 제도화된 인간과 인간의 차별을 극복하는 평등사회"이다. 민노당의 연대전략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진보세력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개인의 총화를 이루어 내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와 군사적 위협, 인권 침해에 반대하는 세계의 모든 진보 세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자기 정체성 면에서 창당선언문은 노동자계급을 주체로 세우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계급을 어떻게 세워내는 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즉자적 계급과 대자적 계급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채 "다양한 진보세력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개인의 총화"를 이루어낸다고 함으로써, '노동당'보다는 '민중당'이나 '인민당'이라는 명칭이 더 어울릴 듯하다.
다음으로 민노당의 강령을 보면, 전문은 "민주노동당은 외세를 물리치고 반민중적인 정치 권력을 몰아내어 민중이 주인되는 진보정치를 실현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전진해 나갈 것"라고 서술하였다. 평등과 해방이라는 말로 사회주의적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에 따라 강령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와 민중 주체의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모든 국가기구와 법, 제도를 완전히 폐지할 것"이며,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여 "아래로부터의 민중권력을 창출해 나간다"고 규정하였다. 자본주의 국가의 "폐지"를 언급하며 새로운 정치권력체를 구상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더 구체적인 분석이 요구되며, 당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명시적 언급도 더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강령의 다른 부분에서 보이는 오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곧, "한국의 정치권력은 국내외 자본의 충실한 대리자에 불과했다. 재벌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들이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한 민중은 정치 경제적으로 무력할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우리들 민중이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워왔음에도 여전히 민중의 권익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라는 언급을 보자. 정치권력을 누가 장악하고 있는가만 문제가 될 뿐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민노당이 정치권력을 장악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회주의적 민중권력이 가능하다는 억지가 될 수 있다.
17대 총선에 대비한 선거강령도 위와 같은 비판을 벗어나지 못한다. 민노당의 "17대 선거 핵심 공약"은 사회, 농업, 교육, 통일, 환경, 대외 정책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도 진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선거공약들도 정치강령의 테두리 내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농업과 경제 정책에 있어서는 소유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교육정책은 국공립 대학의 통합을 이야기할 뿐 대학 자체의 국유화나 사회화에 대한 인식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병리적 현상'을 치유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치유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계급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세우고 이념적 토대를 굳건히 할 때에 비로소 민노당은 장차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보혁구도에서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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