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최경희의 직접민주주의 이야기(2)
- 자유민주주의의 위대한 유산(?) 그리고 파산선고
최경희 (외국어대 강사) 읽음: 15925
작성일: 2004년04월06일 12시28분33초
1.
근대 또는 현대의 민주주의를 논의할 때, 국가와 경제체제, 각 사회적 주체와 세력 및 계급, 국제관계의 특징 등과 관련하지 않을 경우,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에 관한 담론은 허구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치형태로서 민주주의가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 것은 '근대'부터이다. 경제적 조건의 변화로 말하면, '자본주의'의 형성부터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외형상 보기에 잘 어울리는 한쌍으로 보이겠지만, 속으로는 무척 갈등하는 관계이자, 민주주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공존할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홉스바움(Eric John Ernst Hobsbawm)은 근·현대적인 세계사에 관한 유용한 시대구분의 분석틀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장기(長期) 19세기'와 '단기(短期) 20세기'로 명명하고, 장기 19세기를 혁명의 시대(1789-1848), 자본의 시대(1848-1875), 제국의 시대(1875-1914)로 나눈다. 19세기는 한마디로 균형을 잃은 세계이다.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이 나타났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주적 귀족제와 절대군주제가 굳건히 유지되었고, 따라서 근저에서 그것들을 파괴하는 부르주아 혁명이 발발하고 승리하는 과정이었고, 또한 세계적으로 그 권력을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 중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압도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도 시도되었다. 그리고 극단의 시대 20세기를 단기로 규정한 이유는 제국주의 전쟁의 틈새에서 발발한 1917년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시작되었지만, 1991년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몰락으로 20세기라는 특정한 시대적 특징은 종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20세기를 파국의 시대(1914-1945), 황금의 시대(1945-1975), 산사태(1975-1991)로 규정짓고 있다. 현재 세계는 어디로 가야할지 종잡을 수 없는, 종잡을 수 없도록 만드는 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하는 이유는 홉스바움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지나면서 '자유주의'는 몰락하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것은 정확히 '자유민주주의의 파산선고'이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스스로 자정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전쟁을 통해 극복하지 않고서는 나치즘이나 파시즘과 같은 극단적인 대중동원과 끔찍한 대학살을 통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그 역사적 경험을 직시하면서, 그는 '자유주의'는 몰락하였다고 파악하고 있다.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이 의회를 통해, 합법화를 통해 대중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현재까지도 '자유민주주의'의 환상과 기대에 스스로를 메이고 있는 것이다. 홉스바움이 자유민주주의가 생명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던 사회경제적, 국제적 조건이 있었지만, 그 조건은 유럽과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조차 소멸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자유민주주의'는 가장 큰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자유민주주의조차도 가장 제한적인 형태로서, 예를 들면, '법치 민주주의(legal democracy)'와 '경쟁적 엘리트 민주주의(competitive elitist democracy)'의 형태인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로만 그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담론은 심각한 '축소'와 '왜곡(歪曲)'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전자를 본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왜곡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서 민주주의와 독재의 대립구도이다. 다음 글에서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왜곡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국가, 계급,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2.
먼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고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정치체제(political regime)이다. 말하자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절충형태이다. 자유의 이념을 원리로 하는 자유주의는 새로운 자본주의사회의 지배적인 계급으로 부상하고 있었던 시민계급, 즉 부르주아지의 이념과 제도로서 발전하였다. 신흥계급으로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으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는 열심히 자기-권리와 권력을 위해 투쟁했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중세를 지배했던 봉건영주와 그 외피인 군주의 권력을 타도하고 새로운 권력주체가 되었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사회의 두 개의 핵심적인 제도적 지주인 '사유재산'과 '자유시장'을 보장하는 것, 곧 그 권리를 향유하는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민주주의는 인민권력(power of the people)을 의미하는 이념이며 제도라고 앞의 글에서도 밝힌 바 있다. '근대적'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시민사회가 발전한 토대 위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의해서 계급구조가 형성된 다음, 즉 노동자계급이 창출된 이후에 발전된 제도이다. 실제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계급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노동자계급의 힘의 팽창의 결과이다. 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경제 및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로 힘이 성장한 결과이며 그 제도적 표현인 것이다. 때문에 이 민주주의 이념의 기본정신, 제도적 발전은 자유민주주의 그것과 상충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적어도 자유민주주의체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 요구투쟁의 사회적 승인이 전제될 때만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의 발전은 갈등하는 사회세력간의 힘의 경쟁관계에서 양자 사이의 끊임없는 타협의 산물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을 통한 자유민주주의는 부르주아가 지배하는데 있어 가장 정당성을 획득한 정치체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긴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조점의 차이에 따라 즉, '자유냐', '민주냐' 무엇을 강조하는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변형태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신자유주의 시대' 즉, 1970년대 후반 자본의 이윤창출의 위기돌파로서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시대는 '시장의 자유'를 최우선적 가치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자유를 보장한 절차적 제도적 형태만을 의미한다.

신우파(신자유주의 또는 신보수주의라고 불리는)는 자유민주주의를 '법치 민주주의'로 국한시키고 있다. 신우파는 일반적으로 정치적 삶이란 경제생활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자유와 창의력의 문제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신우파의 정치적 강령은 훨씬 더 많은 생활 영역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경제체계와 기회의 제공에 있어서 '과도한' 국가의 개입을 박탈하며(예를 들면 노조와 같은), 특정집단이 자기들의 목적과 목표를 추구해 나가는 힘을 감소시키고, 또는 법과 질서를 강요할 수 있는 강력한 정부의 건설 등을 내포하고 있다.

신우파의 관심은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을 민주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자유주의'의 대의명분을 높이자는 것이다. 신우파의 사상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프리드리히 하이예크(Friederich Hayek)이다. 하이예크의 논증에 있어 핵심적인 것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구별이다. 그는 '자유주의는 법률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원리이고, 민주주의는 법률이 어떠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식에 대한 원리'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문제를 '법의 지배'의 형태로 국한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법의 형성과 관철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법의 성격과 내용, 법이 포괄하는 사회적 효과와 결과의 문제는 신우파에게 있어 고려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정리해고제'가 법제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이로 인해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불안정성, 빈곤화·인권의 문제는 그들에게 있어 고려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예로, 현실적으로 한국은 '국가보안법'이 모든 법규정력의 우선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주요한 가치인 정치사상 및 표현의 자유는 아주 쉽게도 억압당한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체제라고 한다, 법이 지배하니깐....

자유민주주의의 다른 변형태로서 '경쟁적 엘리트 민주주의'를 보자. 이 모델의 핵심적 사상가는 베버(Max Weber : 1864-1920)와 슘페터(Joseph Schumpeter : 1883-1946)이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합리성은 관료제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기 때문에 관료제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의회제적 정부와 경쟁적 정당체계를 강조하였다. 베버는 민주주의란 '시장'과 비슷하며, 투표권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 속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를 찾아내고 가장 무능한 자들을 제거하는 제도적 메카니즘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인민(demos)에게 과도한 권력을 양도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권위와 책임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을 말한다.

또한 슘페터는 고전적 민주주의의 전제들을 비판하였다. 즉, 그는 인민이 결정자나 통치자로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을 비판하였다. '인민'이 '정부의 생산자' 이상도 아니고, 그 이상일 수 없으며 따라서, 민주주의란 단지 '결정행위를 행할 대의원'을 선출하는 메카니즘에 불과할 따름이고, 민주주의는 있음직한 한때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유권자들이 주기적으로 선출하는 하나의 정치적 방법이라고 말한다. 슘페터는 정치가들의 행태를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경쟁하는 기업의 행위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의미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면, 2003년 내내 부안 군민들의 처사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쟁적 엘리트 민주주의'는 대리자를 뽑는 방식을 민주주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인민이 스스로 판단하고 집행하고, 대리자를 거스르는 일은 '경쟁적 엘리트 민주주의'에서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우린 그런 '대의 받을' 사람을 뽑는데만 민주주의의 의미를 국한시키는데 익숙하다.


3.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의 현대적인 변형태인 '법치 민주주의'와 '경쟁적 엘리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시장의 논리'로 파악하고 있으며, 인민을 대리자로 파악하고 있으며, 인민을 투표하는 행위자로만 국한시키고 있다. 질문해 보자. 시장이 민주적인가? 시장이 자유롭고 평등한 곳인가? 공정한 게임이 행사되는 곳인가? 그리고 인민이 투표자 유권자로 축소되는 것이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것인가 축소시키는 것인가?

근대의 포문이 인류에게 주는 위대한 유산은 인간을 인간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였다는데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인간'으로 대접받는 것-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 승인-은 비극적이게도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투쟁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하늘 아래 만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하였으나, 그 때 만인은 근대시민으로서 부르주아지만을 의미했던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다. 홉스의 생존권, 로크의 재산권과 생명권의 사회적 승인은 왜 부르주아지여야만 하는가? 노동자, 여성, 이주노동자, 소수자, 소외받는 사람들의 생존권, 생명권, 인권은 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가? 그리고 생존을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처절하게 싸워야만 하는가? 왜냐하면 이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정확히 자본가계급의 사회적 경제적 권력을 보장하는 정치적 메카니즘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사회적 주체와 세력, 계급은 이 체제를 유지하는 보조장치와 정당성을 부여하는 들러리일 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더 위기에 처하면 처할수록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서 포장할 능력조차 상실하게 된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로 담론을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가진 자들만의 자유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만인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모순적 성격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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