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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좌파 정당 이야기(4) - 프랑스 사회당
정병기 (서울대 국제대학원) 읽음: 5342
작성일: 2004년03월26일 16시04분47초
오늘날 프랑스 사회당의 모태가 되는 사회주의 정당이 출현하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 영국 노동당 창당과 비슷하지만, 출현 방식으로는 독일 사민당과 유사하게 기존 두 정당이 통합하는 형태였다.

혁명적 세력으로 분류되는 맑스주의자 쥘 게드(J. Guesde)와 블랑키스트 바이양(E. Vaillant)이 이끌던 '프랑스의 사회주의당(PSdF)'과, 라쌀주의와 유사하게 공화국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적 사회주의자인 조레스(J. Jaur s)가 이끌던 '프랑스 사회주의당(PSF)'이 통합하여 탄생한 '인터내셔널 프랑스지회(SFIO)'가 그것이다. 그러나 PSdF 내에 두 계파가 존재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프랑스 사회당은 세 입장의 절충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당의 1차 노선변화는 영국 노동당과 같은 시기인 1차대전을 전후하여 일어났으며, 당시의 혁명적 열기는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공산당의 분리 창당으로 작용하였다. 1920년 투르(Tours) 전당대회를 통해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분리해 나가고, 개혁적 세력만이 블룸(L. Blum)을 중심으로 SFIO에 남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조레스와 블룸의 노선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좌파로부터는 공산주의 세력과 구별짓고 우파로부터는 공화주의 세력과 구별짓게 되었다. 특히 조레스적 관점에서 본다면, 프랑스 사회당의 목적은 무계급사회가 아닌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1920년 이후의 프랑스 사회당은 계급정당의 정체성을 갖지 않았거나 매우 약하게 띠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사회당의 2차 노선변화는 1920년대의 분열과 오랜 정체 기간을 거쳐 사회주의가 프랑스 정치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는 1970년대에 일어났다. 1969년 알포르빌(Alfortville) 전당대회를 통해 기존의 SFIO가 사회당으로 탈바꿈한 것이 그 전조였다. 이 사회당은 1971년 에피네(Epinay) 전당대회를 거쳐 1974년에는 다양한 사회주의 정당들을 통합하고 중도파를 이끄는 미테랑(F. Mitterrand)을 중심으로 커다란 성격 변화를 겪게 되었다.

새로운 통합 사회당의 정파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테랑의 중도파 외에, 좌파로는 슈벤느망(J. P. Chev nement)을 중심으로 한 맑스주의 연구집단 CERES(Centre d' tudes, de recherches et d' ducations socialistes)가 있었고, 우파로는 제3공화국 급진공화당(Parti Radical) 세력을 이끌던 로카르(M. Rocard)의 급진공화파가 있었다.

일부 평자들이 에피네 전당대회를 사회주의에 대한 급진주의의 승리로 평가할 정도로, 급진공화파의 합류는 1920년 이래 사회당 노선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했다. 대외적으로도 사회당은 공산주의와 급진공화주의 사이에서 후자에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사회당내 세력관계의 변화는 물론 세 정파간 연합의 결과였다. 그러나 당권을 장악한 미테랑은 사회주의자이기 이전에 공화주의자였으며, 당은 그에게 권력의 장악과 행사를 위한 도구였다. '인간의 권리에 기반한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미테랑 계파의 중심적 가치는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결합, 특권의 해소 등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당이 공산당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얻은 1978년 선거를 계기로 나타나는 3차 노선변경에 직접 반영되었다. 좌파진영 대변에 위기를 느끼게 된 사회당 내에서는 공산당과 연대를 주도했던 좌파인 CERES 그룹이 약화되고 우파인 로카르 계파가 강화되었다. 로카르는 공산당과의 공동강령이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며 중앙집중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반자코뱅적이고, 지방분권적, 자주관리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경제정책적으로는 긴축정책, 인플레이션 억제, 유럽과 세계에 대한 개방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 개념의 수정은 우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슈벤느망도 1984년 '현대 공화국(R publique moderne)'이라는 새로운 정치집단을 만들고 CERES 그룹 명칭을 '사회주의와 공화국(Socialisme et R publique)'으로 변경하였다. 이어 1987년 릴(Lille) 전당대회에서의 슈벤느망의 주장에서 나타났듯이, 이들에게도 이제는 사회주의가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고 현재적·현실적으로는 공화국만이 쟁점이 된다는 것이다. 좌우를 막론한 당내 정파들의 전반적 우경화는 1991년 이후의 최종적 노선변화를 예고했다.

1991년 임시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당 기획안은 10년 동안을 주도했던 기존 원칙과의 단절을 명확히 했다.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의 도덕과 방법'이라는 텍스트의 한 절에서 사회주의는 하나의 '도덕' 또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정의되었다. 곧, 하나의 제시된 길로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 평등, 사회적 정의, 연대, 관용, 책임 등 다양한 가치들을 배제하지 않는 다원주의성을 띠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이 1995년 이후 '현대적 경제정당화'의 의미에서 현대적 국민정당화의 길을 완성했고, 독일 사민당도 블레어-쉬뢰더 성명을 계기로 영국 노동당의 뒤를 밟아간 것과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국민정당화의 시기는 빨랐지만 최종적인 노선변화에 있어서도 '친근로자성'을 유지하는 국민정당 노선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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