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배드뱅크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황선웅 (시민) 읽음: 4154
작성일: 2004년04월12일 13시12분15초
첫 번째 시선, 첫 번째 공상

3월 3일자 한국경제신문 칼럼. 저명한 교수 한 분이 <신용불량자의 심리학적 해법>이란 글에서 한달 후 another0415에 실릴 신불자의 고백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에~ 살인의 충동을 느끼지만 무기가 없다면 살인을 할 수 없겠죠.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카드가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손이 카드로 가고, 그래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카드 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청소년이나 무직자, 자기 통제력이 약하거나 중독경향이 있는 사람에게 카드 발급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누가, 어떻게?'란 질문이 예상됐나 보지, 심리학자들은 그런 사람을 가려낼 수 있다는 문장을 덧붙인 걸 보면. 계속되는 그분의 해법을 들어보자.

"빚을 무조건 탕감해줘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어떤 처벌이 뒤따라야 하죠. 우선 정부가 할 일은 심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신용불량자들을 몇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농촌에 젊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많은 신용불량자를 농촌에 이주시켜 이들이 선진국형 농업기술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아직 군대를 필하지 않았다면 직업군인으로 취업하게 해야 합니다. 일반 무직자 집단의 경우에는 일손이 부족한 3D업종에 배치해야 합니다.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한 신용불량자는 각종 사회봉사활동에 투입해야 합니다."

나는 문득 이분 교수님의 발언 배경을 심리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어졌다. 내 결론은 이랬다. 이분은 한번도 신용불량자의 처지에 처해본 적도 없거니와, 지인 중에도 신용불량자가 없었던 게 확실하다. 아니면 신용불량자들이 작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배경을 이렇게 모를 리 없고, 자기 자식을, 자기 부모를, 사랑하는 친구나 애인을 군대나 농촌, 3D 업종으로 보내야 한다는 망발을 꺼낼 리가 없으므로.

이런 글은 쓰여지지 말았어야 했다. 근본적인 대책은 신문사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자기 통제력이 약하거나 중독 경향이 있는 사람은 글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일 지 모른다. 살인의 충동을 느끼지만 무기가 없다면 살인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나는 굳이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충분히 가려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첫 번째 시선, 두 번째 공상

지난 3월 17일, 대통령 탄핵으로 점철된 뉴스의 끝자락에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에헴, 자못 심각한 표정의 그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신용불량자 사태의 해법을 발표했다.

자산관리공사와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출자해 올 5월중에 "배드뱅크"를 설립한다. 배드뱅크의 지원대상은 2곳 이상의 금융기관에 원금 기준 5,000만원 미만을 연체한 다중채무자들로, 원금의 3퍼센트를 상환하면 기존의 연체이자를 전액 감면해 주고, 남은 원금은 5-6%의 이자와 함께 최장 8년에 걸쳐 분할 상환케 한다.

안 돼~. 곧이어 익숙한 저항이 고개를 쳐들었다. 정부가 깡패야? 이자가 꽁돈이니? 자기 돈 아니라고 너무 막말하는 거 아냐? 생돈을 날리게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당연히 볼멘 소리를 냈다.

이들은 주장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도덕군자의 옷을 입고 등장하기도 했다. 시장의 기본질서를 뒤흔들면 안됩니다. 성실히 빚을 갚아온 선량한 이들을 역차별 해서는 안되겠죠. 신용불량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지도 않습니까?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 국가의 운명을 논하는 고성이 오고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기실 중요한 대부분의 문제에는 입장을 같이 하면서, 채무재조정과 관련된 몇몇 세부사항을 놓고 격론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이 공유하는 동의지반은 이렇다. 신용불량자들은 남의 파이를 훔쳐먹은 자들이다. 빼앗긴 파이는 어떻게든 되찾아야 한다. 이자감면과 저리의 이자율 부과만 해도 엄청난 혜택이요, 신용불량자를 구제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안이다.

이번에도 나는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신용불량의 상황에 처해 본 적이 없거니와 신용불량자를 지인으로 둔 적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확신한다. 그랬다면, 이처럼 공허하고 지리멸렬한 논쟁에 적어도 진지하게 임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신용불량자들이 작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까닭을 이처럼 모를 리 없고, 신용불량자의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자식이, 부모가, 사랑하는 친구와 애인이 이번 조치로 무언가 획기적으로 달라진 삶을 살 수 있다는 망발은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현실

올해 나이 서른 둘에 총 2,000만원의 빚을 짊어지고 있고, 월 100만원을 버는 내 친구 한 명을 이곳으로 초대하고자 한다. "국가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잠재적 위험요인, 신용사회에 부적합한 인물, 무분별한 소비자, 도덕적으로 해이한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힌 커다란 죄수복을 입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그의 이름은 신용불량자이다.

그가 젊은 나이에 이처럼 큰 빚을 지게 된 데는 부모를 잘못 만난 것도 큰 몫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승을 떠나셨다. 변변한 재산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편모 슬하에서 지방의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의 대학에 입학한 그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빚을 저축해왔다. 대학등록금은 매년 두 자리 숫자의 퍼센트로 인상됐다. 그는 4년 동안의 대학 등록금 거의 대부분을 학자금 융자와 카드 빚으로 충당했다. 하숙비의 상당부분도 현금대출로 충당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입는 것도.

뭐, 매일 탱자탱자 논 건 아니고 누구보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따라올 테면 따라 와봐'라며 달려나가는 빚의 속도를 따라잡을 길이 없었다. 졸업 후 처음 몇 년간 취직이 안 돼서 또다시 신용카드에 의존해 생활하다 보니, 빚은 어느덧 2,000만원으로 불어 있었다.

그의 욕구가 문제라면 최소한 인간답게는 살아보려 한 게 문제일 수 있다. 그가 도덕적으로 문제라는 말은 가난한 게 죄라는 말밖에 안 된다. 신용불량자가 될래야 될 수가 없는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게 그의 원죄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렇게 얘기하는 게 그나마 솔직하고 정확한 지적이다.

도덕적 해이가 염려된다고? 모든 경제활동을 제약당하는 식물인간 상태의 신용불량자들 중에서 비참한 현실을 벗어나고픈 "의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문제는 "지불능력"이고 가난한 이들의 지불능력은 오직 그의 임금수준에 의해 결정될지니, 금융자본의 이해에 따른 경제의 구조조정과 실질임금 하락을 꾀하는 한편, 그래도 노동자들이 어디에 뭔가를 숨겨 놓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염세적 공상이 가공할 따름이다.


하나의 결론

배드뱅크의 지원이 그에게 어느 정도의 혜택을 가져다줄까? 간단한 계산을 통해 이를 한 번 따져보자.

만기가 8년으로 늘어날 경우, 연간 상환액은 대략 250만원 정도. 연간 250만원을 상환하기 위해선 매달 20만원의 돈을 채무 상환에 지출해야 한다.

지하철 역이나 공원에서 신문 덮고 자라는 것은 너무한 요구이니까, 그가 지금처럼 매달 30만원을 월세로 지출하며 이불 덮고 향후 8년을 살아간다고 가정해보자.

이제 남은 금액 50만원. 그의 입에 안성맞춤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라면 중에 가장 싸다는 이유로 그가 매일 저녁은 500원짜리 안성탕면으로 때우고 점심만 밖에서 해결하면서, 삽겹살에 소주, 노가리에 호프를 멀리해도 월 식비가 20만원. 간염 치료를 위해 하루에 두 번씩 복용하는 알약 값이 매일 5,000원이니까 월 15만원. 국민연금 7만원. 전기세, 수도세, 교통비, 휴대폰 요금, 인터넷 사용료에 어머니 용돈까지... 계산이 너무 서글퍼지니 이쯤에서 그만하자.

사이보그 또는 화성인과의 대결이 펼쳐질 줄만 알았던 밀레니엄 21세기에 안성탕면 편식으로 인한 영양실조와 싸우면서 빚 갚는 기계로 살다가 빚을 모두 갚고 나면 그의 나이 마흔. 배드뱅크가 그에게 선사하는 혜택이 바로 이런 내용의 미래이다. 어디서 어디로 구제한다는 거지? 남의 삶이라고 적어도 막말을 하지 말자.

가진 자의 입장에서는 이자감면과 만기연장만 해도 엄청난 선심이다. 더 이상은 못해준다. 하지만 없는 이의 입장에서는 그런 조치가 별다른 의의를 갖지 못한다. 어차피 상황이 이렇다면 오늘이나 내일이나 비참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조우가 있을 수 없으니, 각자 네 멋대로 하자. 심리학자들은 신용불량자들의 내면세계를 분석하기 위해 불철주야 연구에 연구를 거듭할 일이고, 정부와 금융자본은 매일 그렇게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과 이자감면의 폭을 놓고 아웅다웅 다툴 일이다. 없는 이들은 꾸준히 투쟁을 통한 돌파를 시도하면서 가끔씩 로또나 사고 웃을 일이다. 가끔은 안성탕면 말고 스파게티도 먹고, 삽결살과 소주에 화해를 청할 일이다.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합리적 선택이라고 칭찬해 마땅한 일이다. 게다가, 없는 이들이 힘들게 번 돈을 자기 분수를 모르고 가진 자에게 갖다 바치며 사는 것보다 자신을 짜르고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키워낸 자기 파이를 되찾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면서 사는 게, 사실 분수에도 맞고 도덕적으로도 옳은 일 아닌가.
 
해벌레 '각자 네멋대로 하자'라... 너무 무책임한 발언 아닌가? 배드뱅크에 대한 부정만 있고, 뾰족한 대안은 없는 듯... 04/12 14:26
해벌레 글구, '문제는 서로가 처한 계급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이다'는 너무 나이브한 분석 아닌가요?
그렇게 따지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의 문제도 그들이 노동자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거나 그들의 지인 중 누구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거나, 정치권의 문제도 그렇고, 뭐 다 그런 식으로 갖다 붙일 수 있지 않을까요?
끝으로, 친구 분의 예도 좀 극단적인 거 같아요. 나이 서른 둘에 월소득 100만원을 벌고, 빚 2000만원을 짊어 진 사람이 얼마나 될 지... 생활비 계산도 그렇고, 좀 비현실적이고, 자의적인 거 같아요.
p.s. 하지만, 글 자체는 재밌네요.
04/12 14:31
비정규직 채무자 해벌레/
'나이 서른 둘에 월소득 100만원 벌고 빚 2000만원 짊어진 사람' 얼마든지 있습니다. 헤벌레 님이나 님이 그런 사람을 지인으로 둔 적이 없을 뿐이지요. 월소득 100만원이면 십중팔구 비정규직일텐데 비정규직의 소득은 10년이 가야 거의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고, 간염 치료비 대신 누구한테 하소연하거나 건의할 수 있는 통로도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부분 앓고 있는 화병 치료비를 대체하면 그리 비현실적인 계산도 아닙니다. 더욱이 빚이란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더군요. 괜히 '헤벌레'해서 사람 속 뒤집지 말구 사고에 각 좀 잡으시죠.
04/12 18:52
흑빛에바 제가보기엔, 요즘 월소득 100만원이면 남자든 여자든 결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혼 안하면 그나마 가끔 이라도 안성탕면 먹으면서도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면 삶은 지옥이 될 겁니다. 설혹 결혼할 사람이 같은 수준의 돈을 번들 말입니다. 04/12 23:27
서른 네살 헤벌레 / "나이 서른 둘에 월소득 100만원을 벌고, 빚 2000만원을 짊어진 사람"이 극단적인 예라.... 나하고 내 친구들은 참으로 극단적인 예에 많이 속해 있군요... 흑흑... 슬퍼라... 04/13 00:30
황선웅 해벌레/ 분량이 제한된 글에 많은 내용을 담아낼 능력이 안 돼서 그냥 에세이 형식으로 쓰다 보니 나이브한 면이 많네요. 동의합니다.
글에 담아내고 싶었던 건 그냥 답답함과 불만 정도입니다. 신용불량자 문제의 해법에 관련해 여기저기서 많은 얘기들이 오가는데, 막되먹은 말들이 그토록 진지하게 다뤄지는 꼴들이 하도 아니꼬와서.
비유가 적합한 진 모르겠지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 마신다는 식으로, 신용불량자들에게는 와 닿지도 않고 아무런 실제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조치들을 놓고서 예상효과가 어떻느니, 도덕적 해이가 어떻느니 떠드는 꼴들이 웃겼다는 말이지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수 천만원의 빚을 질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한테, 이자를 5퍼센트로 낮추든, 6퍼센트로 낮추든 그게 무슨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까? 투기자본의 입장에서나 결정적인 문제이지,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는 노동조건의 사수/ 또는 개선이 가장 시급하고 결정적인 문제 아닙니까?
04/13 01:07
황선웅 씨 그런데 그 쓰지 말아야 할 글을 쓴 '저명한 교수님'의 존함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뭐죠? 04/13 01:21
황선웅 황선웅씨/ "인간행동의 심리적 이해"라는 책으로 유명한 연세대 심리학과 이훈구 교수입니다. 굳이 그 분뿐 아니라 언론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똑같은 말들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 굳이 이름을 언급할 가치도 없어 생략했었습니다. 04/13 02:07
뿌~웅 저는 "신용불량자"라는 표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먹고살기는 해야겠는데 소득조건이 불안정해서 어쩔 수 없이 꿔올 수밖에 없었던 거고, 갚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이자율은 높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못 갚은 게 된건데, 결과만 놓고 "못 믿을 인간들"이라고 해서는 안 되지요. 그건 순전히 금융자본의 입장에서 정의된 용법일 뿐,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는 다른 식의 접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경제위기 이후에 금융자본의 규모가 크게 증가했고, 그것이 주식시장에도 갔다가, 부동산 시장에도 갔다가, 나중에 가계대출, 현금서비스로도 몰려 온 건데 그거 다 과잉자본 파괴하고 일자리 파괴, 비정규직 확산시켜 생긴 돈들 아닙니까?
원래가 노동자/민중의 것이지요. 못 살게 해놓고, 그렇게 해서 원래 내 거를 지가 가져가 놓고, 그런 연후에 원래 내 거를 나에게 꿔 준답시고 이용하게 한 다음에 나를 다시 긁어먹는, 그런 놈들이 정말 "못 믿을 인간들"이지요. 파이를 키우는 게 급선무이니까, 키운 다음에 다시 나눠 주겠으니까, 잠깐만 허리 때 졸라 메자 했다 약속 안 지킨 놈들이 "못 믿을 놈들"이지요.
일부에서는 "과중채무자"라는 표현도 쓰고 있는데, 이걸로는 뭔가가 좀 부족한 거 같고. 하여튼,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04/13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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