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습게도 소녀가장이었고,
아버지도 안 계시는 불쌍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입학금조차 없는 가난한 집의 둘째였다.
이런 나에게… 미래가 있을까?

노숙자생활을 하다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연탄배달, 여관청소, 식당종업원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꾸리다 뇌종양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어머니. 그런 가운데에 컴퓨터·일본어·기타·음악도 배우고 싶다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가던 16세 '소녀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달 60만원의 생계비로 보증금 200만원 월세 20만원의 방에서, 4천만원의 카드 빚을 지고 생활하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다.

이 여중생에게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도, 중등학교까지의 무상교육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단지 '학비도 마련하지 못하는 주제에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게 우습다' '남을 구한다고 얘기하면서 나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자책과 비관만이 존재했다.

예외가 아닌 보편적 사회 현상인 '빈곤'

이 사례처럼 우리사회의 빈곤은 이제 '못 먹어서 굶어죽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또 가난은 사회 극소수계층에 국한된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생계형 자살'이 아니더라도 가난은 어느덧 노동자·민중의 일상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보편적 현상이 되고 있다. 국내 굴지의 재벌은 '나눔경영'을 모토로 내걸었으며, 조중동 일간지의 지면에는 빈곤과 관련된 특집시리즈와 사회적 아픔에 동참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시민의 모습이 연일 지면을 장식한다.

'굶어서 얼어죽는' 모습보단, 병원비를 못 감당해 자식의 목숨을 저버리는 부모의 모습이, 카드빚에 시달리다 자식과 함께 목숨을 던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전기료를 못내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다 불이나서 죽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간대접을 못받고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는 비정규직의 모습이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한국사회 빈곤층은 정부연구기관자료를 보더라도 최저 366만명(최저생계비 기준선 이하)에서 최고 743만명(중위소득 50%이하)에 이르며, 이를 OECD 기준으로 재조정하면 빈곤율은 11.53%(중위소득 40%)와 16.99%(50%)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을 하는 인구 중 50%이상이 비정규직으로서 항상적으로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들의 임금 수준이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바가 있다.

'가난한 노동자'는 이제 보편화되어 가고 있다.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30% 정도 수준이고, 남성비정규직의 임금수준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60%에도 못 미친다. 따라서 특히 여성에게 있어 이러한 고통은 더욱 가중되어 '빈곤의 여성화'라는 용어는 일반화되었다.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건강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구수도 이미 150만 가구에 이른다. 그리고 전기료를 내지 못해 전기 공급이 끊긴 가구만도 100만 가구에 육박한다.

국민연금가입 대상자 중 40%는 연금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처지에 있어 이들의 노후생활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또한 신용불량자는 400만에 달하고 있어 정상적인 사회,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가구당 부채는 3000만원에 달하고 이미 전체규모는 400조원에 이른다. 2,30대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중 10%가 실업상태에 놓여 있으며, 설사 고용된 처지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이들의 반 이상은 비정규직이란 처지에 놓여 있다. 그리고 지난 해에는 하루 28명꼴로 아이들이 길거리에 버려졌으며, 빈곤아동인구만도 100만명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소득격차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어 소득 최하위와 최상위 10분위계층이 시간당 임금 차이가 2003년 5.6배로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임금소득 불평등도는 OECD 국가중 최고인 상황이다. 또한 저소득지역 가구의 60%가 가난을 대물림하고 있으며, 빈곤에서 벗어난 사람의 60%가 1년이내에 재빈곤을 경험하는 등 빈곤의 고착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계부채 400조원과 투자처를 찾아 떠도는 돈 380조원이 rmrad하게 대비되는 사회, '20대 80의 사회' '빈익빈 부익부' '빈부의 세습화' 라는 사회적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한 빈곤의 문제는 '신빈곤'으로 통칭되고 있다. '신빈곤층'은 '가난한 노동자' '불안정한 일자리'의 양산 및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 기인한다. 즉, 실업의 문제와 더불어 다양한 불안정 노동층의 빈곤화가 '신빈곤'의 원인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빈곤'이다. 빈곤이 예외적인 아닌 보편적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빈곤의 원인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일부 극소수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전략에 야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빈곤 탈출이 불가능하고 대물림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회적 빈곤'에 대한 자본의 '철면피'

이러한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자본은 빈곤의 원인을 '경제침체'에서 찾는다. 그리하여 당연히 그 해결책도 '경제성장' 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논리는 간단하다.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가 늘어나며, 일자리는 곧 최고의 복지이며 빈곤에서 탈출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경제성장을 하기 위해서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임금인상도 자제해야 하며, 노동시장도 유연화하여 기업이 해고와 채용을 자유롭게 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손해를 본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또한 각종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절대 빈곤층에 대해서는 정부가 앞장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철면피'적인 주장도 한다. 그리고 '부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는 발전의 동인이지만 적개심과 분노는 파괴적 인자'라고 하면서 빈부격차의 확대에 대해 사회적 불만과 분위기에 대해 역으로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눔 경영'을 강조하며, '불우 이웃'에 대한 지원을 '새발의 피'도 못되게 한다고 강조하고, 재벌과 족벌언로들은 연일 빈곤의 실태를 생중계하기에 바쁘다. 이를 옛 속담은 고양이가 쥐생각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사회적 빈곤'은 바로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한 정부와 자본의 논리가 낳은 결과이다. 아무리 자본과 정부가 부르짖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이며 가장 효과적인 소득분배 방안이며, 일자리 만들기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고 하더라도 이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 것임은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자본과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재벌의 연구기관인 삼성경제연구원이 2004년 시대적 트렌드의 으뜸(?)으로서 '고용없는 성장'을 지정한 것이 바로 그것이며 경제부총리도 올해 1월 이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였다.

즉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일자리는 늘지 않으며, 설사 일자리가 늘더라도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며, 그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정규직에 미치지 못하며, 그리고 정규직의 임금 수준 또한 지속적으로 하락하리라는 것이 자명하다. 기업의 규제완화라는 명목하에 사회보험에 대한 부담을 줄이게 되면, 사회보험 재정은 악화될 것임이 분명하고 그에 따라 노동자민중이 사회보험을 누릴 권리는 지속적으로 축소될 것이 뻔하다.

여기에 더하여 '투자유치'라는 명목하에 교육과 의료 등 사회적 서비스의 시장개방 움직임과 더불어 이를 공공책임이 아닌 '시장'에 맡기는 전략을 시행함으로써 '가진 자'만이 선택권을 누리게 되는, '없는 자'는 '선택권'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혜택을 누리는 권리마저도 박탈당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려 하고 있다. '사회적 빈곤'의 해결책으로 그것의 원인인 '시장의 강화'를 부르짖는 자본은 진정 파국을 원하는 것인가?

위기 관리전략으로서의 참여복지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연두기자회견의 첫 머리를 장식했던 노무현 정부는 지난 1월 '참여복지 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상대빈곤'문제와 빈부격차해소에 집중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발표된 '참여복지'는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위에서 언급한 자본의 논리를 합리화하고 뒷받침해 주는 성격이 농후하다.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을 강조하면서 참여복지는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사회안전망의 기본틀이 확충되어 있다고 파악한다. 그리하여 비정규직의 확대나 정규직 노동자의 권리가 축소되더라도 사회안전망으로 충분히 보완이 되는 만큼, 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하향평준화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차별'을 없앨 수 있다고 한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안전망이 저소득 소외계층 보호에 치중되어 왔다'고 언급하면서 이제는 차상위계층에 대한 부분적 급여지급이나 수급자수의 확대를 얘기한 바가 있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복지제도' 때문에 이제는 '노동을 통한 복지'를 강조했던, 그리하여 실업자들을 필요할 때는 동원하다가 필요없을 때는 퇴출하는 인력풀로 작동시켰던 것이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였다.

이제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참여복지는'비정규군'과 '정규군'까지 취업과 해고의 유연성 확보를 통해 언제라도 퇴출이 가능하도록 '차상위 계층'을 관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2월 체결된 '노사정 일자리 사회협약'에서 강조된 기업규제완화, 사회적 일자리 확충, 정규직의 적절한 임금 등의 내용은 정확하게 이를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참여복지에서 강조하고 있는 민간참여의 확대, 보편적 서비스의 제공, 국가책임 강화 등의 내용은 이미 현실에서 별 실효성이 없음이 줄지 않고 있는 '생계형 자살'자의 수가 명백히 증명해 주고 있다. 아직 1년 밖에 안됐다고? '시작이 반이다'라는 옛 속담은 또 여기서 필요하다.

* '노동자의힘' 기관지 투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