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 결과를 두고 우리 사회가 '좌선회'를 했다는 진단이 대부분이다. '민주개혁'을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넘기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43년만에 의회에 진출했으니 그런 평가가 나올만하다. 그리고 한나라당내에서도 보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좌향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렇게 총선결과와 그 효과가 전반적으로 '좌경화(?)'의 양상을 띌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되어 왔다.
반공의식에 기반한 색깔론이 힘을 얻지 못하여 왔고, 비록 이번 총선에서도 맹위를 떨치긴 했지만 지역주의는 지속적으로 옅어져 왔으며, 2002년 반미촛불시위와 탄핵반대 촛불 시위로 표출된 대중들의 참여와 직접적인 행동은 민주적 의식의 발전을 표상하는 것이었으며, 더군다나 신자유주의 전략의 결과 자본의 지배력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매우 높게 증대되어 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나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의 가결과 '차떼기 정당'으로 표상된 기존 보수정당의 부패는 '정치개혁'과 '물갈이'의 열망을 표로 직접 심판하는 계기로 강력하게 작용하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좌선회'한 총선 결과와 이를 통해 형성된 정치구도, 그리고 대중들의 전반적인 의식의 '좌선회'가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를 높여내는 결과를 낳을 것인가? 흔히 '왼쪽'은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요시하거나, 경쟁과 효율보다는 평등과 연대를, 시장보다는 국가의 역할과 책임을 더 강조하는 세력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분배, 평등과 연대, 국가의 역할과 책임의 강화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이러한 가치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속에서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의 '개혁성'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장밋빛 미래에 대한 섣부른 기대보다는 좀더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결과는 누군가가 '6월항쟁의 완결판'이자, 87년 노동자대투쟁, 96·97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정치적 수렴이라고 평가하듯이 그리고 탄핵무효 촛불시위의 후과라고 말해지듯 대중적인 저항과 투쟁의 성과위에서 결과지어진 것이다.
따라서 딱 그만큼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 즉 민주개혁과 진보세력의 정치적 성장과 헤게모니의 확보라는 성과를 가짐과 동시에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자유주의'(열린우리당의 정동영의장은 이를 개혁적 '실용주의'라고 표현했다)와 '형식적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진보진영의 국회의석이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는 크고, 한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지금의 의석수는 전체 의석수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즉 한술 밖에 안 된다는 소리이다. 그만큼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열린우리당이 개혁적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가지고 있으며, 시장주의적 질서를 더 확산하는 데에 동의를 표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향후 임기동안 추진하겠다고 밝힌 '참여복지 5개년계획'에 따르면 국민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은 여전히 먼 과제이며, 당장의 불안정하고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800만에 달한다는 빈곤한 이들의 삶을 개선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라다. 이를 뛰어넘어 민중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제도나 정책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기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의식만큼 실질적 민주주의와 삶에 대해서 기본적인 권리라 인식은 부족하며, 더군다나 이를 쟁취하기 위한 작은(?) 투쟁은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지만, 대중의 큰 흐름을 형성해 본 역사적 경험은 부재하다. 아직 우리사회에서 '분배'를 둘러싸고,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가지고서 커다란 대중적 행동이 정치적으로 광범위하게 전개된 적은 없다.
왼쪽의 가치를 가진 대중투쟁의 연장선에서 이루어낸 정치구도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향후 전개될 사회적 재편의 결과는 예측불가능하다. 즉 현재의 '좌선회'한 정치구도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과는 연관성이 크지 않다. 아울러 시민사회운동의 성격과 영향도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정권 1년동안 더욱 분명해진 현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소위 민주개혁세력이라 불리우는 지배헤게모니가 달성된 지금 민중의 생활권과 노동권 쟁취를 위한 투쟁은 이제 본 궤도에 접어들 계기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선을 통해 기본적인 생활을 확보하는 투쟁, '가난한 노동자'라고 일컬어지듯 일하더라도 가난은 지속되는 불안정한 생활의 극복, 그리고 무상의료·공공의료를 현실적으로 실현하여 노동자·민중의 건강권을 확보하는 투쟁은 지난 10여 년 이상 지속되어온 싸움보다 더 힘든 투쟁을 겪어야 할 지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은 민간의료보험 도입, 영리법인 허용 등 시장주의를 전면적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조건이기도 하며, 불안정한 노동자를 더욱 양산하는 노동시장유연화가 노사관계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강제되려 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움직임이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명목하에 자유화·개방화라는 '세계적 대세'라는 흐름을 뒤에 엎고 강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기와 기회'라는 다른 조건하에서는 보다 세련된 '현실가능한 정책대안'을 만들어 국회의사당 내에서 이를 공론화하고 사회적 의제화하는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대중들의 직접적 참여와 행동을 촉발해내는 프로그램과 계획하에서 '사회적 힘'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더욱 절실하다. 민중복지영역에서 시장도 살고, 민중의 삶도 개선되는 '상생과 타협의 정치'는 시장으로 기울어진 추를 더욱 기울어지게 할 뿐이다.
* '주간 민중복지' 기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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