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에서 통과될 즈음, 이라크 파병안도 통과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적 노동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었다. 이런 반민중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을 총선에서 심판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때, 이런 정책을 도입한 대통령이 탄핵되어버렸다.

어느 새 신자유주의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정당이 피해자가 되어버렸고, 이들은 총선을 탄핵에 대한 심판으로 규정하면서 과반수를 얻고 소원을 성취했다. 불행히도, 우리가 정작 심판하자고 했던 신자유주의자들은 파란색, 노란색 옷을 나눠 입고 국회에 계속 남아있다. 더 불행히도, 'FTA 러시'가 시작되었다.

오는 4월 26일, 일본 통상 협상자들이 서울에 온다. 그리고 한일FTA 3차 협상을 맞이하여 협상문 초안을 놓고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게 된다. 한일FTA 협정문이 아직 초안일뿐더러 공개되지 않아 그 문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FTA라는 것 자체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 무역질서 강화를 위한 협정이라는 사실, 일본 자본의 압력에 밀려 한일투자협정이 이미 체결되었다는 점, 그리고 산관학공동연구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한일FTA가 가지고 올 파괴적 효과는 불보듯 뻔하다.

'일본자본을 위한 권리헌장' 한일FTA는 2003년 1월 1일부터 발효된 한일투자협정을 통한 일본 자본의 침투를 한층 더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투자협정은 그 내 여러 조항과 다양한 조치를 통해 사실상 투기를 '투자'를 보호해주고, 각종 사회경제적 규제보다 투자자, 즉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한다.

투자협정이 자본 투자에 대한 장벽을 없애주었다면, 이제 FTA는 관세, 비관세 무역장벽 철폐를 통해 공산품, 농산물, 서비스 등에 대한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자본에게 모든 분야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이런 자본의 '투기'와 무역에서 최대한의 자유 보장이 우리의 삶에 가져올 결과 역시 불보듯 뻔하다.

한일FTA은 특히 그러하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정치, 경제관계를 맺어왔으며, 대일 의존도가 이미 매우 심한 상태인데, 심지어 주류 경제학자들조차 한일FTA가 대일 무역적자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는 특히 자동차, 기계, 전자, 철강 등 대부분 산업에서 한국의 관세가 상대적으로 높고 일본은 이미 상당 부분 개방한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FTA로 관세를 낮춘다는 것은 한국만 일방적으로 낮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속에서 한국의 산업은 몰락하거나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로 달아날 것이며, 그 무게는 결국 노동자 민중에게 돌아올 것이다.

게다가 한일FTA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서비스 자유화를 요구하고 있다. 서비스에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의료 및 교육과 같은 필수 공공서비스에서 문화까지(물론 문화는 이미 많이 개방되었으나 FTA 체결은 이를 국제적으로 법제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기간산업과 환경까지 포괄하고 있다.

일본 자본이 투자협정을 체결하면서 이미 한 번 한국 철도 개방을 요구한 바 있다. 결국 일본과의 FTA로 공공서비스는 자본을 위해 자유화됨으로써 우리의 당연한 권리가 아닌 돈 있는 자만 살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일FTA는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투자협정 협상 당시 일본 자본은 한국 측에 '진지조항'을 요구했다. '진지조항'이란, 노동자 쟁의 행위에 대해 정부가 '진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여기에서의 '진지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다.

'진지조항'은 투자협정 체결 당시 무마되었다. 그러나 일본 자본은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어해야 한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고 오히려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산관학공동연구보고서의 의하면, 일본은 '비관세장벽'에 해당되는 여러 가지를 지적하고 이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자본에게 비관세 무역장벽이란, 수입관세의 형태가 아니지만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 즉 생태계, 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법률과 규제를 의미한다.

일본 자본은 특히 국내 노동법에 관심이 많다. 일본 기업들은 한국 정부가 노동쟁의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준수할 것, 휴가수당에 대한 사용자의 의무를 철폐할 것, 퇴직금 산출을 유연화할 것, 그리고 노조의 불법 행위에 엄격하고 신속히 대응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조항들이 실제 협정문에 들어가고 협상이 되면, 그 효과를 막대할 수밖에 없다.

FTA는 'WTO 플러스'라고도 일컬어진다. 146개국이 함께 협상하는 것보다 1대 1로 협상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게다가 권력의 불균형마저 등에 업으면 강대국들에겐 FTA란 선물이다. 실제로, 전세계의 FTA 홍수는 WTO의 칸쿤 각료회의가 붕괴된 이후 본격화되었다. 많은 국가들이 WTO 협상이 미궁에 빠지자 양자간 협정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전경련은 얼마 전 여러 나라와의 FTA를 동시다발로 추진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으로써 개도국들의 집단적인 반발로 시끄러운 WTO를 피하면서도 WTO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우리는 싸워야 할 바가 너무나 많다. 일본 뿐 아니라 이미 싱가포르와도 FTA 협상을 시작했고, WTO의 도하개발의제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또한 6월의 세계경제포럼 동아시아회의와 같은 국제회의를 통해 지배엘리트들을 끌어와 한국의 원대한 꿈을 선보이려 한다.

총선은 끝났고 이제 우리의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다시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안 그러면 WTO의 공세와 FTA의 홍수 앞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더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아군과 적군을 정확히 구분함으로써 우리가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