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유럽 좌파 정당 이야기(3) - 영국 노동당
정병기 (서울대 국제대학원) 읽음: 4381
작성일: 2004년03월21일 21시38분11초
영국 노동당은 독일 사민당보다 약 30년 가량 뒤늦은 1900년에 창당되었으며,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현재의 당명을 갖게 되었다. 영국 노동당은 다른 좌파 정당들과 달리 노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즉, 영국 노동당은 영국노총 TUC에 의해 '노동조합이 대표하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의회에서 대변'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당되었다. 노동당의 창당에는 물론 기존 노동자계급정당인 독립노동당과 맑스주의적 사회민주동맹, 그리고 사회주의적 지식인들의 모임인 페이비언 협회도 참여했다. 그러나 노동당내 조직구조와 의사결정구조에는 최근의 변화가 있기까지 단체당원제와 블록투표제에 의해 노조의 권한이 강력하게 보장되어 왔다.

의회 진출을 통한 정치적 수단에 의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표에 머물렀던 영국 노동당의 1차 노선 변화는 1918년 전당대회에서 당헌 4조의 채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생산·분배·교환 수단의 사회화와 기업경영에서의 산업민주주의를 당의 강령적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이후 사회화의 현실적 형태인 '국유화'가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복지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노동당의 최종적인 강령 목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급진적 노선 변화는 당시 영국 인민들의 의식변화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노동당은 약 5년 후인 1923년 191석을 얻어 자유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기도 했으며, 1929년에는 악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제1당이 되는 데 성공했다.

노동당의 2차 주요 노선 변화는 세 차례 총선에서 패배한 1950년대였다. 영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인 이 시기에는 케인즈식의 재정금융정책으로 소득증대와 완전고용 및 소득재분배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이 노동당의 지도부와 이론가들 사이에 팽배했었다. 그래서 독일 수정주의가 독일 자본의 번영기에 등장했던 것과 같이, 국유화나 계획화 및 산업민주주의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수정주의와, 노동당은 더 이상 노동조합의 정당이 아니라 국민의 정당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이 시기에 크게 대두했다.

세 번째 주요 노선변화는 케인즈주의적 신념까지 포기하는 1970년대 후반의 변화이다. 1973년 야당 시절의 노동당은 국민기업청(NEB) 설립을 통한 국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정책 강령을 발표하는 등 일시적 좌선회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6년 캘러한(J. Callaghan) 노동당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전후해 임금 억제와 재정지출 삭감 등을 실시함으로써 처음으로 신자유주의적 경향으로 전환하였다.

노동당의 최종 노선변화는 1994년 블레어 당수의 취임으로 시작된 '신노동당' 노선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노동당 노선은 블레어가 '유일한 제3의 길(The Third Way)'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대체로 보수당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계급정치'가 아닌 '국민정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신노동당 노선은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전통사민주의 노선을 완전히 탈피하였다. 197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 경향 시작이 IMF 구제금융에 따른 외부적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면, 1990년대 신노동당 노선의 신자유주의는 집권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1995년 당헌 4조의 폐지는 이러한 노선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영국 노동당의 현대적 국민정당화는 독일 사민당과 같은 '현대적 경제정당화'에 다름 아니었다.

영국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혁명적 계급운동이 정당으로 조직된 역사는 그다지 깊지 못하다. 그러나 진보와 좌파가 비록 약해지는 시기는 있으나 역사가 멈추지 않는 한 진보와 좌파가 완전히 사라지는 곳은 없다. 영국 사회가 진보를 요구하고 좌파를 필요로 한다면, 새로운 좌파의 소생은 언제든 가능할 것이다.
 
이름 : 비밀번호 :
10 좌파의 누드쇼 (19) 강내희 2004-03-25
9 국제적 동원의 물결 : 시애틀에서 칸쿤까지 (0) 원영수 2004-03-23
8 유럽 좌파 정당 이야기(3) - 영국 노동당 (0) 정병기 2004-03-21
7 탄핵 국면에서 생각해본 직접민주주의 (5) 배경내 2004-03-21
6 유럽 좌파 정당 이야기(2) - 독일 사민당 (0) 정병기 2004-03-17
5 탄핵정국 민중진영 대응방침 비교분석 (8) 최원 2004-03-17
4 재미있는 반제-반세계화 운동 이야기(1) (2) 원영수 2004-03-17
3 나는 죽었다 (5) 김영수 2004-03-14
2 유럽 좌파 정당 이야기(1) - 들어가며 (0) 정병기 2004-03-14
1 탄핵 국면, 민주노동당이 딜레마에 빠진 이유 (3) 유영주 2004-03-14
[1] [2] 3
CopyLeft By 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