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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동원의 물결 : 시애틀에서 칸쿤까지
- 재미있는 반제-반세계화 운동 이야기(2)
원영수 (노동자의힘) 읽음: 3754
작성일: 2004년03월23일 10시09분53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주력을 타격하라!

1999년 11월 30일, 미국 시애틀. 세계은행(World BanK) -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 IMF)과 함께 세계경제를 관리하는 3대 축의 하나인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sation : WTO 1995년 출범)에 맞선 역사적 투쟁이 벌어졌다. 지난 1970년대의 거대한 베트남 반전운동의 물결 이후 사실상 긴 동면 상태에 빠졌던 미국의 운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려고 하는 WTO 각료회담을 5만 명의 거대한 시위대가 포위했다.

시애틀 경찰은 시위대의 규모와 투쟁력에 당황했고, 각 국의 협상대표들 역시 예상치 못한 항의와 포위상황에 당황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포위 행렬로 개막식이 취소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의 회담 끝에 회기를 하루 더 연장했지만, 1990년대의 우루과이라운드에 이은 새로운 협상을 출범시키기 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새로 탄생할 예정이었던 시애틀 라운드는 영영 사라졌다. 바로 이 시애틀 전투가 반세계화 운동의 첫 걸음이었다.

새로운 반세계화 운동은 전 세계의 노동자-민중-사회운동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989년 사회주의진영의 붕괴가 가져다 준 커다란 충격을 벗어나, 자본주의의 일방적 공세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WTO와 더불어 세계화를 강제하는 세계은행과 IMF의 연차 총회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졌다. 2000년 4월 미국의 워싱턴, 9월의 체코 프라하. 시애틀 전투에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투쟁의 물결이 한층 거세졌다.

그리고 2001년 4월에는 전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남북 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인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회의가 열린 캐나다의 퀘벡에서도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일상화되기 시작했다.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저항의 세계화였다.

초국적자본과 국제금융기구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반세계화 운동의 거센 도전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2002년 6월 반세계화 운동은 이제 제국주의 중심부 국가들의 모임인 G8을 겨냥했다. 이탈리아 제노바가 그 무대였다. 언론재벌 출신의 총리 베를루스코니는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투사들은 이런 협박에 굴하지 않고 무려 30만 명의 대오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의 한 목소리를 내었다. 위협을 느낀 이탈리아 정부는 한편으로 언론을 통해 반세계화 운동을 공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무정부주의 그룹을 이용, 무력저항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그 과정에서 줄리아니라는 젊은 청년활동가가 경찰의 총격으로 숨지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제 반세계화 운동은 단순한 항의시위가 아니라, 자본의 도발에 맞선 전쟁이 되었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미본토를 강타한 미증유의 테러가 발생하자, 갓 태어난 반세계화 운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공안정국이 형성되면서, 반세계화운동은 그 해 11월 사막 한 복판의 항구인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회담을 저지할 수 없었다. WTO는 시애틀의 실패를 딛고, 도하개발의제(DDA)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무역협상을 출범시켰다.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반세계화 운동에 작별을 고했다. 반세계화 운동이여, 안녕!

그러나 세계화의 주범에 대한 포위공격과 다른 축으로 형성되었던 세계사회포럼(2001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출범)의 두 번째 모임이 아프가니스탄 침략을 포함한 부시 일당의 제국주의 전쟁공세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제국주의 전쟁은 별개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이제 반세계화운동은 반전, 반제국주의투쟁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 안았다. 포르투 알레그레에 모인 10만명의 대오는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명확한 반대를 통해, 새로운 저항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리고 2002년 6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유럽정상회담에 대항한 30만 명의 반세계화 시위가 벌어짐으로써, 반세계화 운동은 다시 살아났다. 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국주의의 전쟁공세에 맞선 반전투쟁의 핵심적 동원력을 제공함으로써, 사상 유례 없이 강력한 반전운동의 등장을 위한 길을 닦았던 것이다.

제3차 세계사회포럼과 역사적 2.15 반전투쟁으로 문을 연 2003년 9월 반세계화 운동은 멕시코 칸쿤에서 다시 한번 WTO를 결정적으로 타격하였다. 지리적 고립과 상대적으로 빈약한 준비 등 어려운 조건에서도, 예상치 못한 이경해 열사의 자결로 조성된 긴장국면을 한국의 노동자-농민의 반세계화 투쟁단의 헌신적 투쟁을 통해 돌파함으로써 WTO회담을 강력하게 압박하였다. 그 결과, 회담은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봉합할 수 없는 균열로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시애틀에 이은 또 한번의 승리였다. WTO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제 반세계화 운동은 시애틀전투로 비롯된 초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동하는 모든 세력과 기구에 대한 전면적 공세를 조직함에 따라, WTO, IMF, 세계은행 등의 국제금융기구 만이 아니라, G8 및 EU 정상회담 역시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반세계화 운동은 경제투쟁을 넘어,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한 전면적 정치투쟁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즉 반세계화 운동은 초국적 자본과 그들의 대변자인 국제금융기구, 그리고 이들을 엄호하는 제국주의 국가들까지 직접적 타격하는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운동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단지 적을 추적-포위할 뿐 아니라, 운동의 전략과 새로운 대안 사회의 비전을 논의하고 소통하는 구조로서 세계사회포럼 운동을 탄생시켰다. 이제 반세계화 운동은 동원타격투쟁과 사회포럼운동을 양 날개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의제의 확장을 통해 전면적인 반제국주의 운동의 주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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