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이 웬 글이냐고? 죽은 것이 분하고 원통해서 저승에서 보낸다. 무엇이 그리 분하고 원통하단 말인가. 나는 나도 모르게 수 천억 원을 도둑질한 도둑놈이 되었고, 노동자 민중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다. 보수정치가 내 권력을 도용하면서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일 뿐이다. 누가 제도권 정치인들에게 내 권력을 위임하라 했나.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부르주아 의회가 난장판이다. 소위 386세대 및 개혁의 기수라고 하는 작자들은 국회 본관을 점거하여 농성하고 있고, 파시스트들의 후예와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작자들은 국회 본관을 탈환하려 하고 있다. 보수권력을 둘러싼 그들만의 전쟁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대통령을 탄핵한다고 국가의 위기가 발생한다느니 혹은 제2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느니, 대통령을 탄핵하여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다느니. 국가와 사회를 그들이 지탱하고 있다는 환상의 마약을 먹었나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가 없어진다고 국가와 사회가 무너지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 노동자 민중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한쪽에서는 노무현을 구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집회하고, 다른 쪽에서는 노무현을 권좌에서 축출하라는 집회가 열린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도둑놈이 된 자신을, 살인자가 된 자신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대의정치에서는 자신의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의 행위가 자신의 행위가 아니던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상황만을 연출하고 있다.
이 놈의 의회정치가 주기적으로 나를 죽이고 있다. 의회를 포위하고 있는 국가-자본이 폭력적으로 나를 죽이고 있다. 나는 죽고 자본주의 체제의 자유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름만이 나를 대신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은 분노의 감정을 상실했다. 보수주의 의회정치를 수용하기에 급급하다. 의회를 새로운 도둑놈과 살인자들로 새롭게 치장만 하려 한다. 보수주의 의회에 안주하려 한다.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살기가 힘든 것인가. 부르주아 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및 대의민주주의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편한 것인가.
보수주의 의회정치를 새롭게 치장하면, 의회가 더 이상 도둑놈이나 살인자들의 소굴이 아니라고 믿는다. 많은 노동자 민중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노동자 민중들을 미혹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부르주아 의회공간에 몇몇의 노동자가 진출하면, 더 이상 도둑놈이나 살인자들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고. 이렇게 말하거나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기까지 하다. 얼마나 당해야 보수주의 의회정치를 제대로 알는지. 방폐창의 건설을 스스로 결정하는 부안 군민들의 정치, 이러한 정치가 보수주의 대의정치를 대신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많은 노동자 민중들은 오는 4월 15일을 또 다른 희망의 날로 여긴다. 의회정치를 새롭게 치장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로 치장된 한 줄기 희망이다. 그 희망을 살리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애쓰고 있다. 버거운 발걸음 하나 하나가 가엾어 보인다. 도둑놈과 살인자의 소굴에 들어가려는 몸부림 말이다.
나는 살고 싶다. 내 권력을 살려내고 싶다. 내가 정부?의회?사법을 직접 통제하는 정치를 통해서. 부르주아 의회에서는 그러한 정치의 실현이 불가능한 희망이라는 사실 앞에 비참해진다. 부르주아 의회정치를 너머서는 희망의 불씨를 죽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자족할 것인가. 부르주아 의회정치의 무덤에 묻힐 것인가. 나와 내 권력을 두 번 죽일 것인가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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