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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의 정치학:열린우리당은 왜 노란색을 선택했을까
정병기 (서울대 국제대학원) 읽음: 13457
작성일: 2004년04월14일 16시43분20초
이제 와서 웬 색깔론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색깔론에 진실이 담겨 있다면 '해묵음'이란 없다. 열린우리당은 왜 하필 노란색을 선택했을까? 노랑은 DJ의 상징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주당과 노랑의 정통성을 둔 다툼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랑이 주는 의미를 황색의 사회학과 노랑의 정치학을 통해 보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필연적인 사실들이 발견된다.

노랑은 인간의 희노애락과 역사의 영고성쇠를 담고 있는 색

노랑은 인간의 희노애락과 역사의 영고성쇠를 담고 있는 색이다. 동양에서 노란색은 매우 고귀한 색으로 여겨져 방위로는 중앙을 나타내고 나라의 수도와 황제를 의미함과 동시에 풍요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그러나 고 김진균 선생님께서 "황달: 노란색, 노란 스쿨버스, 황건적"라는 칼럼에서 읊으셨듯이 황달기든 민중의 얼굴빛이기도 하였다.

서양에서 노란색은 더욱 부정적으로 사용되었고 그 색의 미학이 현재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었다. 노랑은 일반적으로 '조심'의 뜻을 지니게 하는 색으로 인정되어, 교통표지판이나 방사능 표지에 사용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노란색은 불신이나 경박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도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조건하에서 이루어지는 고용계약을 '황견계약'(yellow dog contract)'이라고 하며, 친기업 노조를 황색노조라고 한다. 선정주의 저널리즘을 일컬어 '황색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라고 하거나, 노랑장미의 꽃말이 질투나 부정(不貞)으로 되어 있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정당정치적으로 볼 때, 갈색은 나치즘, 검은색은 보수주의 혹은 무정부주의, 붉은색은 공산주의, 장밋빛(혹은 붉은색)은 사민주의, 녹색은 탈물질주의적 신좌파를 상징한다. 그리고 노랑은 전통적으로 자유주의를 의미했다. DJ와 열린우리당의 상징이 노란색인 것은 우연일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강령 정책을 비교해 보면서 색의 상징을 논해 보자.

정당 스펙트럼상의 정당색

이념적 성격이라는 의미에서 정당색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정당정치가 오랫동안 정착해온 유럽의 정당 스팩트럼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도권 정당들만을 놓고 볼 때, 좌익에는 의회주의 좌파인 사민당, 사회당, 노동당들이 위치해 있다면, 우익에는 시장자유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자유당, 자민당 등이 위치해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의 자민련은 명칭과 내용의 불일치를 보인다).

그 가운데 중도에 해당하는 정당들이 보수주의 정당들인 국민당, 기민당, 기사당들이라는 당명들을 사용한다. 보수주의 정당들은 시대에 따라 경제정책적 이념을 달리해 와서 정형화된 이념을 갖지 않는다. 절대왕정시대에는 지주ㆍ귀족로서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왕정을 옹호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는 부르주아로서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의 구체적인 이해관계는 변화하는 정세에서도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있기 때문에 다른 정파들과 쉽게 타협하는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의 이념적 근거는 특정 사회의 전통적 가치에 기반한다. 곧, 부르주아적 보수주의자들은 전통적 가치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케인즈주의 시대에 노동당, 사민당, 사회당과 연정을 구성하여 복지국가를 구축했고,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자유당, 자민당과 연정을 구상하여 탈규제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자유주의는 개개인의 신체와 재산의 자유를 근본이념으로 하여 자유계약과 시장경제의 확립을 구체적 목표로 한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든 국가든 시장에 대한 어떠한 개입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봉건 시대의 종교와 신분적 제약과 절대 왕정의 국가 개입에 대항해 싸운 것도 그 때문이다.

가족과 같은 전통적 가치와 부정부패 등 불합리한 논리가 자유경쟁을 저해하는 것을 이들은 참지 않는다. 보수주의자들이 세습과 지위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면, 자유주의자들은 자유경쟁에서 능력 있는 자는 대우받고 능력 없는 자는 도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이 절대권력 앞에서 진보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들의 정부론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것처럼 과거 자유주의 시대에는 '작은 정부'를 주장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정부가 오히려 시장에 개입하는 다른 요인들을 제거하는 데에는 강력하고도 효율적이어야 한다. 곧 '작고 강한(효율적인) 정부'를 주장한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강령과 정책

호주제 폐지를 두고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열린우리당이 찬성하는 것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무리일까? 정동영 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도 시장위주와 적자위주의 자유경쟁 논리를 무의식에 깔고 있어서, 노인들이 생산인구층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장래를 결정하는 데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은 아닌가? 이제 미뤄둔 강령 정책 분석을 통해 이 의심을 풀어보자.

열린우리당의 강령 전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안정과 발전, 번영의 21세기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명시하였다. 그리고 기본정책을 보면, "정부조직의 효율화, 지방화, 분권화, 전문화, 경쟁력 강화 등 지속적인 정부개혁을 통해 행정의 민주성 투명성ㆍ책임성을 강화하며 21세기에 적합한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고품질 정부를 구현한다"(7조)라고 하여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구상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열린우리당은 "세입기반을 확충하는 한편, 재정지출의 우선순위 조정 및 효율적인 관리를 통한 예산 낭비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재정의 건전성을 실현"(27조)하는 재정 효율성과 재정절약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2조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조화를 이루"고 "저소득층에 대한 완전한 기초생활보장, 사회보험의 내실화, 근로자에 대한 일자리 제공 및 공정한 대우"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도 "시장경제질서"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2조)의 목표 앞에서는 멈추어야 한다.

반면, 전통적 가치와 사회복지 정책 등 '큰 정부'에 대한 구상과 정책은 한나라당에서 더 뚜렷이 나타난다. 한나라당의 정강 전문은 "발전적 보수와 합리적 개혁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한 정당으로서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사회가 공동의 책임을 지고 함께 협력"하는 정치를 추구하며, "가족의 가치에 대해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고 명시하였다.

그리고 제6조에서는 "기초생활은 물론 교육 훈련 및 의료비를 지원하여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패자부활의 기회를 부여하고,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하고,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여 개인의 생애주기별 특성에 따른 복지체제를 구축"하며, "노동과 교육, 복지, 문화, 보육 정책을 통해 개인의 자아 실현과 삶의 질을 보장하는 복지사회의 틀을 구축"하고 "국가 유공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과 지원을 대폭 강화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경우보다 국가개입의 범위가 넓게 규정된 것이다.

독재 콤플렉스와 대통령당

이와 같이 강령과 정책상으로 볼 때, 정당스펙트럼에서 한나라당이 중도ㆍ보수주의에 포진하고 있으며, 열린우리당이 우익ㆍ자유주의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더 우익으로 보는 반면, 열린우리당에 대해 더 중도적(내지 진보적)으로 인식하며 열렬한 지지를 보이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들이 아직 독재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주장하듯이 비록 민주-반민주 구도라는 담론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하나 그 내용은 여전히 독재-민주의 구도를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반민주 곧 독재의 잔영으로 인식되는 반면, 절대왕정 앞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적이었듯이 독재-민주의 구도에서 열린우리당은 진보로 보이는 것일 뿐이다.

한편 열린우리당의 급성장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대통령당'이라는 한국의 특수성이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로서 대통령의 권한이 대단히 막강하여 비록 30% 안팎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할지라도 일단 대통령이 되면 그 주위에 권력이 집중되고 이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당선된 대통령이나 후보는 새로운 권력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대선 전후나 당선 직후에 항상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왔다. 따라서 열린우리당도 대통령 노무현을 중심으로 창당된 '대통령당'이라고 할 수 있다.

계급구도의 가능성

열린우리당이 '대통령당'으로서의 생명을 다한 후 개명을 하든 또다른 이합집산을 하든 자유주의 정당으로서의 명맥은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한나라당의 중도ㆍ보수주의적 성격과 열린우리당의 우익ㆍ자유주의적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며, 중도와 우익의 진영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장기적으로 보면, 시장경제와 자유경쟁을 절대시하는 우익ㆍ자유주의적 입장은 대기업과 엘리트 및 대부르주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1인1표의 보통선거권이 투명하게 발휘되는 선거제도의 환경에서는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 반면, 전통적 가치를 가진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농어민과 서민들에게까지 일정한 지지를 받는 중도ㆍ보수주의 정당들이 우세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 결과는 구체적인 정세와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한편,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해지고 독재 콤플렉스가 우리 뇌리에서 사라진다면, 민주-반민주 구도 대신 계급이라는 정치적 균열이 전면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도든 우익이든 이들은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를 같이 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제3당으로 전락할 것이며(자유주의 정당일 가능성이 큼), 나머지 한 정당과 노동자 정당이 제1당을 두고 경쟁하는 지형이 펼쳐질 공산이 매우 크다.
 
얼치기 서양사 공부만 했군 쿄쿄 04/1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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