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2004년은 1987년의 계승인가?
- 칼 맑스 <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부쳐
장귀연 (시민) 읽음: 7340
작성일: 2004년04월03일 02시09분56초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들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몽마처럼 살아있는 세대들의 머리를 짓누른다. 그리고 살아있는 세대들이 자기 자신과 사물을 변혁하고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 바로 그러한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 그들은 노심초사하며 과거의 망령들을 주문으로 불러내고, 그 망령들에게서 이름과 전투구호와 의상을 빌린다.


촛불집회에 딱 한 번 나가봤다. 할 말 있으면 광화문 가서 하라던 그대들이여, 미안하다. 한 번밖에 안 나갔다. 나는 활동가도 아니고 조직도 없는, 그냥 시민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시초에 나는 직감적으로 독자집회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대들이 열렬히 주장했듯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이 다 노빠가 아니라고 믿기에, 희희낙락하는 노무현과 열우당에게 그걸 분명히 보여줄 독자집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곳에서도 독자집회를 연다는 말이 없었고, 갈데없이 우왕좌왕하던 평범한 시민인 나, 어느 날 광화문 나가 봤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안 나갔다.
이제 총선~ 다된 밥에 재뿌릴라, 자기 소임 다 하고 막을 내린 촛불집회에 대해 왈가왈부 뒷북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정세분석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어처구니 없는 신화들이 난무한다.
그 신화들 중 한 가지만 지적해 보자. 2004년은 1987년의 계승인가?
그렇다! 계승이고 부활이고 재현이다. 단, 이번에는 희극으로!

촛불집회 얘기로 시작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내가 본 그날 집회의 기조는, ‘87년 계승하여 민주주의 완성하자!’ 였던 것이다. 87년이 회고되고, 민주수호가 외쳐졌고, 그 정신을 완성한다고 했다. 발언대의 자발적인 목소리들은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진행자의 기조는 참으로 일관되었다.
그러나 순전히 주최측의 농간(?)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 기조가 대중의 정서와 맞아떨어진 지점도 있었던 듯 하다. 특히 87년을 뜨겁게 경험한 이른바 386(몹시 싫어하는 단어이긴 하지만)들에게. 그 당시 날리던 운동권이었던 선배가 “이것들이 87년에 뜨거운 맛을 제대로 못봐서 정신 못차렸지”라는 말을 남기고 첫날부터 광화문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초창기 게시판에서 “87년 그 거리를 기억하며 눈물 흘리면서 수구세력 심판하기 위해 집사람과 광화문에 나왔습니다”라는 말로 <another 0415>를 비판하는 것을 보고, <한겨레>가 87년을 상기시키며 광분하는 것을 보고, 그런 의심은 더 짙어졌다.
그래, 아마도 ‘정서’는 그러할 것이다. 추억이란 항상 가슴을 적신다. 그날 집회 진행자가 백번쯤 반복했던 말처럼 ‘아름다운’ 이 정서를 흰 눈 뜨고 볼 정도로 내가 무감동한 인간은 아니다.
그러나, 과학적 ‘분석’은 달라야 한다. 그 장르를 분석해 보았을 때, 2004년 비장하게 재현된 신화극은 사실 구식의 의상을 우스꽝스럽게 걸치고 나타난 ‘희극’이었던 바, 차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던 것이다.

‘호헌철폐, 독재타도’와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구호 중에서 어떤 것이 역사의 진보를 의미할까? 말할 것도 없이, 전자다. 물론 용어들 자체는 거의 비슷해 보이며, 지극히 전형적인 부르조아 민주주의의 어구들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나는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BDR)도 역사적으로 진보일 때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87년 투쟁은 아주 사전적인 의미에서 BDR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아마 당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물론 87년에는 BDR조차 완전히 완성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12월, 쿠데타의 주역이 다시 대통령이 되었고, 술집마다 울분에 찬 사람들이 잔을 내동댕이쳤다. 그런 울분과 허탈함 속에서, 87년은 미완의 혁명, ‘비극’처럼 기억에 각인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 이른바 문민정부, 그리고 그 다음 정권교체… 나는 YS도 DJ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부르조아적인 자유주의는 발전했다고 본다. 적어도, 80년대 지금 돌이켜 보면 ‘어찌 그런 시대가 있었지?’ 하고 절로 진저리쳐지는, 군사정권의 그 일상적 폭압을 옛 이야기하듯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은 87년의 BDR 덕분이었다. 투쟁으로 쟁취한 자유주의였다.
그런데 지금 2004년, 17년만에 다시 같은 구호가 울려퍼지고 있다. 나는 어리둥절하다. 무엇을 위해서? 무슨 진보를 위한 투쟁인가? 다시 쿠데타라도 일어난단 말인가? 아, 그렇게 선동하는 자들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의회쿠데타(?)에서 군사쿠데타까지, 각종 음모론(<한겨레>의 안수찬 기자는 인터넷에서 “수구들은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선동했다), 심지어는 미국개입설… 설마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겠지?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그 뛰어난 상상력을 칭찬해 주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내 선배의 말대로 ‘87년에 뜨거운 맛을 보지 못한’ 잔존 세력이 얄미울 수는 있다. 정서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러나 정통 야당인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조차도 전두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고 그 구성상 그럴 의지도 없다고 봐야 한다.
1987년과 지금은 다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우리는 노조를 쟁취했다. 물론 이 역시 87년 한 해로 결판난 건 아니었다. 오래동안 우여곡절과 탄압을 겪었지만, 크게 보았을 때 적어도 집단적 노사관계법에 관한 한 개선이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87년의 BDR에서 시작하여 부르조아 민주주의 틀 내에서의 형식적 권리를 획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노동에 대한 공격이 멈췄는가? 전체 노동자의 삶이 나아졌는가? 노동자의 삶에 대한 공격은 더욱 교묘하고 집요해졌으며 형식적 권리 속의 내용은 신자유주의적 시장 억압이다. 노동자들은 투쟁해야 하고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노조 쟁취’가 전 노동운동을 결집시키는 구호가 될 수는 없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다.

결국 2004년 ‘민주수호’ 구호는 역사에 대해서 반동이다. 이 말이 지나치다면, 적어도 진보의 걸림돌이다. 진보(進步),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걸음을 제자리뛰기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BDR의 무한반복.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은 보수세력인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민주수호’이다. 87년을 불러내고 그 장엄하고 비장한 무대를 재현한다. 비극을 완성할 기회, 그러나 희극으로.


<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다시 읽었다. 나는 맑스가 말한 몇몇 어구들을 인용하며 정당성을 확증하려는 훈고학을 대단히 싫어하지만, 이 경우는 역사적 국면에 대한 분석이다. 그리고 역사를 읽는 이유는 당연히도 현재의 상황에 대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부쳐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우선, ‘공화국 수호’라는 피켓을 들고 나왔던 분들에게. 지금이 1848년의 프랑스라고 생각하시는가? <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1848년 이후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각종 공화파 쁘띠부르조아 분파들에 의존하고 말아먹히고 후퇴하는 과정 끝에 부르조아 독재를 성립시킨 과정을 분석한 글이다.
다음으로, 현 상황을 ‘떼르미도르의 반동’이라고 규정하신 분들에게. 지금의 계급분파와 정세가 17년 전과 같다고 판단하시는가? <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바로 그 떼르미도르 반동에 당한 1793-1795년의 산악파와 그 후 역사가 진전된 후인 1848-1951년의 산악파를 비교한 구절이 나온다. 꼭같이 이름은 산악파이지만, 전자가 비극의 주역이라면, 후자는 희극의 주역으로서 말이다.


나는 이해한다. 아니, 나 이전에 맑스가 이해했다. 모든 옛 언어는 우리를 짓누른다. 우리는 옛 언어의 정신을 계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언어를 상기하지 않고 새 언어를 사용할 때에만, 새 언어를 사용하면서 원래의 언어를 망각할 때에만, 초보자는 이 언어의 정신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고 그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루이 보나빠르트의 브뤼메르 18일)

 
고니 팬입니다. 잘 읽었어요. 04/03 07:24
386 BDR을 얘기하고, 맑스의 책을 읽고, 활동가도 아니고 조직도 없는 이런 '시민'이 많아지는 사회...그게 진보인거 같다... 04/03 09:51
김성구 좋은 글을 한신대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읽게 하고 싶어 한신대 사이트로 퍼갑니다... 04/03 13:20
이름이.. 글의 취지에 맞게 추상적 bg적 (시민) 보다는, (노동자 혹은 민중) 이렇게 신분을 나타내야 하지 않을까요.. ㅋㅋ 04/03 16:37
시민 '시민'이 부르조아적이라니요? 좀 황당한 발상이군요.. 04/09 21:33
이름 : 비밀번호 :
15 광화문 인파는 누구를 위한 물결인가 (5) 안윤길 2004-03-16
14 민주노총의 궤변 (9) 김성구 2004-03-16
13 또 다른 탄핵?! (11) 손호철 2004-03-16
12 급구! 해독제를 찾습니다! (1) 송유나 2004-03-14
11 탄핵에 대한 두 가지 마음 (11) 박기범 2004-03-14
10 착각하지 말자, 그리고… (1) 강내희 2004-03-14
9 노사모, 우리당, 총선연대, 물갈이 연대 (1) 김성구 2004-03-14
8 노무현과 개혁세력에게 면죄부를 안겨주지 마라 (1) 김세균 2004-03-14
7 대한민국이라는 식인 체제 (5) 김규항 2004-03-14
6 “하일(Heil) 노무현!”을 저지해야 (12) 채만수 2004-03-14
◀ [1] [2] [3] 4 [5] ▶
CopyLeft By Jin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