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광화문-울산-부안은 하나다
서창호 (대구지역 활동가) 읽음: 4172
작성일: 2004년04월01일 18시09분55초
4·15 총선거 흥행몰이에서, '촛불'을 구출하기 위하여

전국을 뒤흔들었던 광화문의 '촛불'을 뒤로하고 4·15 총선거가 빠르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광화문(대구지역의 경우 대구백화점 앞을 가로지르는 동성로 거리)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수십만의 '촛불'을 운집하게 하였다. 그러나, '촛불'의 흥망성쇠는 '촛불'을 이해하고자 하였던 민중진영의 무기력과 완강하였던 신경전(?) 그리고, '촛불'의 자발적인 분노와 요구보다는 4·15라는 규격봉투에만 담아두고자 하였던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범국민행동(이하 범국민행동) 등의 시민진영에 의하여 '촛불'은 너무나 쉽게 꺼져 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한 자루 한 자루에 쥐어져 있었던 수십만의 '촛불'은 민중-시민진영의 탄핵(?)에 의하여 붉은 기운을 다 사리지 못하고 4·15 총선거에 강제 징집에 꺼져버린 '촛불'이 되어 매캐한 연기만 날리고 있다.
즉, 지난 3월 27일 촛불집회를 중단하면서 밝힌 범국민행동의 대국민 호소문의 내용은 4·15 총선거에 대한 극명한 태도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모든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하여 수구부패정치를 반드시 심판합시다. 선거참여로 부패무능한 보수정치권이 초래한 비정상적 사태를 수습하고 국민의 힘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꽃피워 나갑시다.

총선거는 모든 사회적 의제를 삼켜버릴 만큼 강력한 흡인력으로, 정국을 총선거에 대한 태도와 관심으로 희화화시키지만 다시 돌이켜보건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후 전개되었던 일련의 촛불시위는 결과적으로 4·15 총선거에 대한 "선택과 태도"가 촛불시위의 흥행을 증명하는 쿨한(?) 코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촛불시위가 4·15 총선거의 흥행몰이가 아니라 민중들의 분노를 조직하고 민중들의 직접민주주의와 노동자-민중정치를 진전시키는 장이 되어야 함을 믿는 우리는 지난 촛불시위를 냉정히 다시 평가해야 한다.
물론 애초 범국민행동에서 제출되었던 슬로건인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슬로건은, 민중진영에서 바라보는 정세판단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충실히 따른 노무현정권을 향한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결여된 슬로건이었기에 민중진영은 범국민행동과 광화문을 개입하기에는 버거운 3월의 봄날을 보내어야 했었다.
그러나, 민중진영의 버거운 3월의 봄날과 한편으로 범국민행동의 주최로 광화문의 운집하였던 수십만의 '촛불'은 범국민행동에서 제출하였던 '탄핵무효''민주수호'의 앙상한 슬로건으로 수렴되기도 하였으나 '탄핵무효''민주수호'에 제한되지 않고 개개인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저마다의 거리의 정치는 광화문 그 광장에서 한바탕의 난장이 되었다.
민중들의 자발적인 결집과 자발적인 투쟁을 범국민행동과 동일시하는 민중진영의 시각을 걷어내어야 할 것이다. 수십만의 '촛불'을 광화문으로 이끌어낸 것이 범국민행동이냐? 전국민중연대인가? 아니다. 그들의 주최여부는 적어도 참가의 판단근거가 되지 못한다. 수십만의 '촛불'은 그 하나 하나의 '촛불'이 되었으며 그 수십만의 개개인의 자발적인 '촛불'이 되어 3월의 봄날에 오롯이 확장되고 싶을 뿐일 것이다.
물론, 지난 촛불시위는 범국민행동의 촛불시위 중단선언으로 일거에 무력화되었다. 그러한 관계로 거리의 정치와 민중의 자발적인 직접민주주의를 좀더 풍부하게 하기보다는 범국민행동의 통제와 지침을 '촛불'은 한 발걸음도 넘어서지 못 하였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리의 정치와 민중의 자발적인 직접민주주의의 요구로 급진시키지 못했던 우리 민중진영의 반성으로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일관된 신자유주의 정책이라 할 수 있는 비정규직, 실업, 빈곤 등 노동의 위기와 가족의 해체, 교육의 붕괴 등 삶의 근저가 무너지는 민중들의 들불이 수십만의 '촛불'로 당당히 나설 무렵, 수십만의 '촛불'이 '탄핵무효', '민주수호'라는 몸에 맞지 않은 지배계급의 갑옷으로 무장하였다 하여 민중진영의 성긴 목소리와 당장에 함께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지 말자.
광화문 거리에서 진실로 외쳐야 할 민중들의 비정규직, 실업, 빈곤 등 노동의 위기와 가족의 해체, 교육의 붕괴 등 지배계급에 대한 탄핵을 전면화하는 반신자유주의적 요구가 엉뚱하게 '탄핵무효', '민주수호'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촛불'을 적극적인 개입을 포기하고 평론가적인 시각으로 재단한다면 광화문의 '촛불'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될 것이다.
오히려 좀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수십만의 '촛불'들에게 급진적인 투쟁과 요구가 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적극적으로 제기될 수 있었어야 하였다. 그래서, 광화문의 수십만의 '촛불'이 거리의 정치와 민중의 자발적인 직접민주주의의 요구를 활성화시키는 스스로의 학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 있었어야 하였다.
늦었지만 4·15 총선거의 규격봉투로 휘발하고 있는 광화문의 '촛불'을 구출하기 위해서 민중들의 거리의 정치와 민중의 자발적인 직접민주주의의 요구의 한계와 가능성을 확인하였던 지난 광화문의 '촛불'을 냉정히 평가하는 것이 최소한의 노력일 것이다. 한편으로, 거리의 정치와 민중의 자발적인 직접민주주의 요구를 보다 다양하게 보다 풍부하게 하기 위한 민중진영의 적극적인 자기 성찰과 고민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광화문의 '촛불'의 성과와 한계는 저 멀리 울산에서는 차가운 얼음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거리의 정치와 민중의 자발적인 직접민주주의 요구는 고사하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들의 분노와 적극적인 투쟁을 꽁꽁 묶어 세우며 재갈과 지침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보다는 박제화된 앙상한 구호만 남아 몇 몇 위임받은 교섭권자들이 울산을 채우고 있었다.

다시 노동자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광화문과 전국의 촛불시위가 '촛불'이 마지막 불꽃으로 잦아갈 무렵이었던 지난 3월 27일, 필자는 울산에 진행되었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정신계승, 영호남노동자결의대회에 참가하였다.
지난 2월 14일 고인은 유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고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기득권 가진 놈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제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 모습인지 자신의 온몸을 던지면서 고발하였다. 그 동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조합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비정규직 철폐와 현장에서 하나에 열까지 부당하게 정규직 노동자와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 투쟁을 전개하였다.
한편으로, 박일수 열사의 분신이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차별철폐, 노동탄압 분쇄 고 박일수 열사분신대책위(이하 대책위)를 꾸리면서 박일수 열사에 투쟁에 대한 현대중공업에 대한 교섭 및 투쟁을 경건하게(?) 위임받아 박일수 열사에 대한 투쟁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전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책위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요구와 무관하게 "대책위-현중노조-현중자본"의 3자 교섭을 조건없이 수용하기로 전격적 결정하는 등 현대중공업의 회사의 이해와 다르지 않는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의 교섭테이블의 실질적으로 인정하였다.
'박 터지는' 투쟁보다는 '커피한 잔의 여유'가 감미로운 교섭이 몸으로 채득된 대책위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자들의 정서와 유리된 결정을 통보하면서, 거부한다면 반조직적이라는 정언명령으로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동조합과 사내하청노동자들에게 이행 할 것을 일방적으로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하달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지난 3월 27일, 필자는 울산에 진행되었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정신계승, 영호남노동자결의대회는 대책위의 강고한 지도력(?)으로 인하여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반성에 기초한 투쟁의 열의를 또다시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 동안 대책위 주최의 크고 작은 집회는 비정규직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현대중공업의 박일수 열사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투쟁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라는 평가에 기초해서 비정규직과 사내하청노동자는 행진 중간머리쯤에서 현대중공업에 대한 최소한의 분노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비정규직과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달걀과 폐인트로서 현대중공업공장 담벼락에 박일수 열사의 분신에 대한 분노와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면서 현대중공업에 대한 비정규직과 사내하청노동자의 분노와 투쟁을 모아가고 적극적으로 수렴해야 할 대책위는 예정되어 있는 마무리집회 장소로 이동할 것을 방송차로 요구하더니 급기야는 집회해산을 선언하고 집회장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결국 집회에 참석하였던 노동자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소동이 벌어졌으며 현대중공업에 대하여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면서 현대중공업에 엄정 항의하였던 비정규직과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대책위의 참담한 결정에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주저 않고 말았다.
언제나 18번처럼, 87년 노동자 대항쟁을 시작으로 자랑스런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민주노총은 70만을 헤아리며 비대해진 몸집만큼이나 완결된 조직구도에 의거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부터의 지침과 하달로서, 모든 결론은 교섭테이블에서 끝장낸다는 사생결단에 찬 지도부의 강고한 지도력으로써, 집회를 하여도 엠프 소리에 목숨을 걸면서 줄서서 길 맞추는 행진에 등쌀에 못 이기는 집회가 되고, 조합비와 맹비의 교차하는 막대그래프에 현장의 정서는 늘 엇박자의 춤을 추면서, 또 다시 역설적으로 현장은 미워도 다시 보아야하는 재방영만 틀어주는 민주노총판 흥행신화에 모두 아류화 되어 갔다.
광화문 '촛불'의 거리의 정치와 민중의 자발적인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생동감 있는 민중들의 모습은 비단 대책위뿐만 아니라 현장이던 연맹이던 민주노총이던 노동진영에서 그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판단은 나만의 생각일까? 교섭이 가져다주는 영험한 믿음이 조합원들이 부족한 것일까? 오직 지침과 하달이라는 따뜻한(?) 지도력을 무지랭이 조합원들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일까?
그랬다. 광화문의 촛불시위가 보여주었던 그 가능성은 민주노조운동이라 표현되는 노동진영의 박제화된 노동자민주주의를 넘어서고 남음이 있다. 노동자민주주의를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그리고 학습해 보았을 용어이지만, 2004년 민주노조운동에서 노동자민주주의는 클릭 할 수 없는 아이콘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닐런지...

광화문-울산-부안은 다르지 않다

부안의 2 14주민투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사건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민이 관을 감시하는 체제 아래에서의 주민투표였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그야말로 한국사회에서 전례 없는 의미를 가진 역사적인 '자치적 주민투표'였다. 헬기 유인물 살포나 일부 주민 관광보내기, 관제집회 등 각종 방법들을 동원한 부안군의 방해활동에도 불구하고 부안 군민은 2 14 주민투표에서 당당하게 승리했다. 이에 따라 부안군대책위는 2월15일 집회를 열고 '핵폐기장 백지화'를 스스로 선언했으며 주민들은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였다.
-고길섶『부안꼬뮨을 상상한다』

무려 일년 가까이 투쟁을 벌였던 부안의 '핵폐기장 백지화'운동을 아마도 그 누구도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부안주민들의 자발적인 결의를 밑천 삼아 생계를 거의 놓다 시피 진행되었던 정부와의 투쟁에서 부안주민들은 당당하게 승리하였다. 더군다나 그 승리가 지도부의 몇 몇의 승리가 아니라 부안주민들이 대다수가 그 결과에 자랑스러워하면서 부안주민이 막걸리 한 잔을 권하는 풍성한 성과이다. 또한, 그 동안 민중진영에서 경험하지 못하였던 생경하지만 즐거운 투쟁을 우리는 멀리서나마 지켜보아야 하였다. 물론, 부안투쟁을 직접 경험하였던 부안주민들이 전국에 퍼담아 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승리의 분위기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핵폐기장 백지화'운동을 둘러싼 주민들간의 이견이 주민들간의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어 버리거나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부안군의 경제적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부안투쟁의 성과가 부안투쟁의 그늘에 가려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문화적으로 부안주민들의 자발적인 공동체적인 분위기, 조직적으로 읍면별 대책위원회 등으로 일년 가까이 몸소 느꼈던 부안주민의 살아 펄펄뛰는 민주주의의 훈련과 경험 그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부안주민의 경험을 각 지역과 각 업종 및 영역에 따른 민중진영이 고스란히 처해진 조건과 상황에 따라 부안투쟁을 카피레프트 정신에 입각해서 '우리'의 부안투쟁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광화문의 '촛불'에서 확인되었던 거리의 정치와 민중의 자발적인 직접민주주의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급진화시키기 위해서, 민주노조운동이라 표현되는 노동진영의 박제화된 노동자민주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부안투쟁의 성과를 주민투표에 멈추어서는 것이 아니라 부안주민들의 삶의 결을 넘나들면서 진정한 '민중자치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 광화문-울산-부안은 서로 닮지 않은 만큼이나 서로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광화문-울산-부안은 하나다.
 
최원 너무 고마운 글입니다.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04/02 03:30
동지에게 동지의 고민만큼 함께 하겠습니다 04/03 00:06
집강소정신으로 동지의 문제의식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로부터의 현장연대를! 04/0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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