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우리 엄마 이야기
송유나 (활동가) 읽음: 4077
작성일: 2004년04월14일 04시24분32초
우리 엄마는 얼굴에 흉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80년 투쟁 때 데모 구경 나갔다가 -엄마는 커다란 돌이었다고 극구 우기지만- 하여간 뭔가의 파편에 맞아 생긴 작은 상처이고, 다른 하나는 91년도 강경대 열사 투쟁일 때 생긴, 그것도 작은 상처이다. 91년 투쟁의 상처 이야기는 딸이라는 사람이 슬퍼하고 걱정해야 할 일인대도 나는 재미있는 일로 기억하니, 참으로 나쁜 딸이다.

사정은 이렇다. 전라북도 전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항상 데모를 하는 곳은 지금은 없어진 전풍 백화점 앞 즉 객사 앞 혹은 헌트 사거리이거나, 코아 백화점 앞이다. 서울로 치면 그 공간은 딱 이대 앞, 그 큰길까지도 말고 이대 정문 앞 골목 좌우 정도일 것이다. 아니면 대학로 뒷골목 정도?

하여간 서울에서 딸도 최류탄 지랄탄 연기에 도망 다닐 때 엄마 역시 항상 데모에 나갔었다. 집이 바로 그 옆이니까 심심했던 엄마의 소일거리였기도 하였을 터이다. 물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코가 매워지거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면 항상 달려나가곤 했다. 87년 때는 시험기간이었는데, 둘이서 밤새 데모행렬을 쫒아다니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 데모에 나가서 잘 보겠다고 겁도 없이, 전투조 옆에서 어정거리다가 저 쪽에서 치고 나왔단다. 우왕좌왕하다가 어리버리 전투조하고 같이 움직인 것 같다. 잘 달리지도 못하니 몇몇 전투조하고 함께 셔터문을 내리려고 하는 가게 -바로 그 헌트- 로 달려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다가 뭔가에 맞아 상처를 입었고, 이미 가게 문 내리기도 전에 최류탄 지랄탄 연기 가득한 곳에 꼬박 갇힌 것이었다. 눈물 콧물 흘러내리면서도 그 학생들이 잡힐까봐 버텼고, 그렇게 그 학생들이 안잡혔다고 자랑을 했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 엄마는 서울에서 고생하고 뛰어다닐 딸을 걱정해 고기를 재우고 김치를 담가 몇 번이나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데모를 나가면서 친구들과 나눠먹으면서 힘을 냈다. 그리고 엄마는 전주에서 계속되는 데모 행렬에서, 이제는 중간쯤 서서 지켜보는 지혜를 익혔고, 가끔 빵과 우유를 사주는 미덕을 발휘했다.

졸업을 한 것을 여전히 의심하는 -졸업장을 실수로 찾지 못하고, 그리고 찾을 생각도 없어서,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받는- 엄마이지만, 졸업이라는 것을 한 이후로는 운동을 그만 두고 돈을 벌거나 제대로 살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소위 돈으로 버텼다. 나 개인의 재정적 자립은 어떻게 해보겠는데, 생활비는 안되더라도 용돈이라도 -아주 적은 돈과 선물로 버티면서- 챙겨야 하는, 소위 허접한 뇌물공세로 버텨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생활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엄마는 항상 잔소리가 심하다. 술과 담배만 끊어도 그 잔소리는 덜 하겠지만 두 세 달에 한번 내려가는 집에서도 난 술과 담배를 한다. 그것도 엄마가 챙겨주기 시작했다. 참으로 나쁜 딸이다. 그런 울 엄마하고 지난 몇 년 동안은 항상 정치적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니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도대체 딸년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더욱 궁금해진 것이고, 그 운동이라는 것이 이전에 엄마가 보기보다 훨씬 복잡해졌고, 사실은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운동의 실체를 알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 같다.

어찌나 신문과 뉴스를 뒤적이고 눈을 시뻘겋게 보고 사는지, 나도 모르는 집회와 이슈를 다 꿰어차고 있다. 집에서 자고 있는데도 어디 어디 데모에 있냐고 전화오기 일쑤이다. 정치판에 뭔 일이라도 터지면 엄마가 먼저 전화가 온다. 정확하다. 항상.

최근에 탄핵사태가 터지고, 총선이 임박하면서 우리 엄마와 나와의 관계는 재미있어졌다. 일단 우리 엄마는 탄핵을 찬성한다. 이유는 깬다. 민주당을 배신한 죄란다. 흐흐. 그래서 좀 언쟁을 했더니, 전라도 어쩌고 난리이다. 그러다가 항상 궁금해하듯이 넌 지금 머하고 사냐고 또 난리이다. 그래서 인터넷 어쩌고 얼버무렸드니, 어이구! 잘 알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 탄핵 찬성과 반대가 엄청 붙고 있다고 아는 체를 한다.

알고 봤더니 꼴통보수와 노빠의 논쟁이었던 것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차분히 설명을 하려고 했다가 포기했다. 일단은! 역시 이런 논쟁은 얼굴을 보면서 서로 침이 튀기면서 -항상 우린 이렇다- 해야 한다. 하여간 탄핵 관련한 엄마의 주장은 니 입장이 그렇다면 보수들과 연합해서 탄핵을 찬성시키란 것이었다.

선거는 어떠한가. 우리 엄마는 민주노동당을 찍기로 했다. 지난 구정 때 내려가서 한 참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의 코드는 이미 노동자와 서민에 가 있었다. 최근 상황을 돌아보면 지난 628 철도 파업 때, 해고당한 노동자들 땜에 안쓰러워서 잠을 못잤고, 발전 파업 때도 처음에는 딸자식에게 무슨 일이라고 생길까봐 잔소리하다가 명동성당에 갇혀 산다는 이야기에 가슴아파 했었다. 이렇게 우리 엄마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당, 아니 엄마의 표현대로 짓밟히고 사는 사람들의 당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래서 엄마는 민주노동당을 찍기로 했다. 물론 여전히 엄마의 입장에서는 노무현의 배신과 민주당의 뻘 짓이 민주노동당 지지의 근원일 수 있지만. 물론 아직도 노동자 정당에 대해서는 잘 모르면서도, 그래서 이 결정은 언제든 번복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 그 딸은 더욱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도 그 딸은 다시 요구했다. '엄마, 친구들도 찍게 해! 잘해 봐' 그랬더니 용돈을 달랜다, 선거 자금이 필요하대나?

사실 투표만으로 이야기하자만 할 말이 많다. 지난 92년 백선본 이후 심한 몸살에 앓다가 전주에 내려가던 밤이 바로 김대중 은퇴선언을 한 날이었다. 막차를 타고 내려가 한 2-3시 쯤 전주에 도착했고, 눈이 엄청 오던 밤이었다. 김대중 은퇴 선언에 눈물 콧물 흘리던 엄마는 심지어 죄책감까지 느껴서 그 죄책감이 딸에 대한 화로 변하여 딸을 징벌하러 나왔다. 역까지 마중 나온 것은 사실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없었다.

역에 내리자마자 엄마가 나타나서 등짝을 갈기며 '너 때문에 우리 선생님이 은퇴를 했다!'고 하면서 '심지어' 울었다! 으윽! 택시 안에서도 계속된 고문, 그런데 택시 아저씨가 더 골 때렸다. 우린 쫓겨났다. 김대중 안 찍어서... 눈 오는 밤에 택시에서 내쫓겼다.

그런 우리 엄마는 김대중의 환상도 극복하고, 노무현의 환상도 극복해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나름대로 흔쾌히 노동자 서민의 당인 민주노동당을 찍겠다고 했다.

그런데 엊그제 난 어려운 전화를 받아야 했다.

'야, 안달라. 비슷하더만.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머가 달라? 야, 앉아도 항상 똑같이 앉더라. 그냥 통합하라 그래!'

딸 왈, '엄마, 내가 먼 힘이 있다고... '

엄마 왈, '야 통합하믄 크게 되겠더라, 그렇게 해보라 해, 그리고 말 잘하더라 웃기게...'

딸 왈, '엄마, 참나 그래도 열린 우리당이 노동자 서민을 생각하냐?'

엄마 왈, '야 근데 넌 왜 안나가냐?'

허허

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실없이 끝나게 되었다.

며칠 안 남은 기간, 난 또 우리 엄마의 이 엽기적인 전화를 몇 통이나 받아야 할까?
적어도 15일이 되기 전에 집에 내려가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

소위 보수와 개혁, 민주와 진보라는 다른 전선에 대해, 노동자 당의 의미에 대해, 민주노동당에 대해, 그리고 왜 내가 민주노동당원이 아닌지에 대해, 그래도 민주노동당을 찍으라고 했던 이유에 대해...

이 말을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줄까...
그리고 우리 엄마의 고민을 내가 어떻게 안을 수 있을까...

우리 모녀의 대화는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듯 하다.
 
하하... 유나씨, 이렇게 재밌는 얘기도 할 줄 안다니... ^^ 04/14 12:06
도롱 재밌어요.. ^^ 어머니 멋지네요...
04/14 17:00
신기섭 유나씨, 모녀의 대화 장면이 눈에 선하군요. 근데 아무래도 유나씨가 질 것 같다. ^^ 04/15 10:33
송유나 제가 진다는건 어떤 의미일까요??? 04/15 20:30
달군 오오! 멋있는 모녀네요.^^ 아.저런게 현실이라니 안믿겨요 04/17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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