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시작한지 일주일. 앞으로 남은 기간 일주일. 선거운동 혹은 선거투쟁이라도 진행되고 있는지 없는지 참으로 조용하다. 일그러진 후보자들의 얼굴만이 벽보에 흩날릴 뿐이다. 무심코 바쁘게 지나치는 노동자·민중의 발걸음과 어깨만이 무거워 보인다.
선거에 관심이 없는 나만의 생각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지만, 4년에 한번씩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축제가 무리없이 아주 조용하게 끝날 것 같다. 선거축제를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기획자도 없고 참여자도 없기 때문이다.
각 정당별로 정책의 차이도 없다. 각 정당별로 선거투쟁의 차이도 없다. 노동자·민중을 선거공간에 끌어 들여 투쟁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정당도 없다. 공수표일지라도, 사회적인 '희망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정당도 없다. 누구는 낙선되어야 하고 누구는 당선되어야 한다는 말뿐이다. 각 정당은 몇 명이 당선될 것인가에 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실시되는 1인 2표에서 정당에 대한 지지표만을 높이려 하고 있다. 부르주아 정당들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도 마찬가지이다. 선거투쟁을 노동자·민중의 투쟁전술로 배치했던 역사만이 아련하게 다가오면서, 가슴을 싸하게 한다.
말 꽤나 하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입방아를 찧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적인 선거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후보자들이나 유권자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 아닌가, 제도권 정치개혁의 혁혁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한국사회가 점점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 아닌가 등 등.'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도 이러한 입방아에 장단을 맞추려는 것인지. 노동자·민중의 전술적인 선거투쟁을 죽이고 있다. 노동자·민중들은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국회에 들어가서 잘 했으면 하는 기대만을 갖게 되었다. 노동자 후보가 당선되어 국회에 들어가면 우리의 투쟁은 달라질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만이 남아 있다. 노동자·민중들은 선거에 참여하여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에 지지표를 던지는 투표기계로 전락하고 있다.
선거라는 말 그대로, 노동자·민중들은 지지만 하는 되는 것이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전략적으로 기획하는 선거투쟁은 죽고, '당선'이라는 선거의 전략적 목적만이 살아 있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선되어 국회에 진입하면 된다. 국회에 진입하고 난 이후에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살려 보겠다는 마음뿐이다. 노동자·민중의 투쟁에 국회의원이 결합하면 되는 것인데, 이 또한 투쟁의 일환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문만이 메아리를 친다.
직접 민주주의의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선거나 총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투쟁을 전개하지 않고서 노동조합의 어용 지도부를 몰아 냈던 적이 있었는가?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없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노동조합의 선거투쟁을 지원했던 자신과 선거투쟁을 직접 전개해야만 하는 자신이 서로 다르다는 것조차 모른 채, 선거를 죽이고 있다.
선거법에 충실한 정당이나 후보자들은 선거투쟁의 공간에서 노동자·민중의 조직적인 투쟁은커녕 집단적으로 선전·선동조차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하면서, 노동자·민중들을 법의 그물망에 던진다. 촘촘하게 엮인 날줄과 씨줄의 그물망으로 말이다. 노동자·민중들이 선거공간을 투쟁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악법에 순종하면서 말이다.
악법들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투쟁했던 어제의 용사들이 오늘은 법을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으로 변했다. 혼자만 변하려 한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순종의 늪'이나 '굴종의 늪'으로 노동자·민중들과 함께 빠지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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