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좌파적 표현
강내희 (중앙대 교수) 읽음: 26372
작성일: 2004년04월05일 01시38분03초
유나씨,
그동안 내가 유나씨에게 보낸 글에 대한 <어나더0415>에서의 '논란'을 그냥 지나치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갑자기 일이 밀어닥쳐서 처리하느라고 시간을 못 내기도 했지만, 또 어떻게 화답을 해야 할까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집디다. 그래서 반응이 늦어진 건데, 지금이라고 제대로 '입장'을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자꾸만 미루는 것이 능사는 아닐 듯해서 글을 써봅니다.

내가 쓴 '누드쇼'라는 표현에 대해 몇몇 사람들이 유감을 드러낸 데 대해서는 나도 유감이야. 그런 표현에 대해 일부 페미니스트의 심기가 불편할 것임을 전혀 짐작 못한 바는 아니나 어쨌든 그 표현을 썼고, 그 결과 자신을 이런 표현 문제에 무감각한 것처럼 만들어 놓았으니 나 자신에 대해서 유감이 없을 수가 없지. 그래서 일단 내가 쓴 표현으로 인해 마음이 불편해진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가 쓰는 표현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요. 방금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는데, 사실 그 일이 간단한 것 같지는 않아. 누구에게 어떻게 그 말을 전할 수 있을까? 내 글을 읽고 마음이 불편해진 사람들에게 직접 일일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이렇게 유나씨에게 글을 쓰고, 지난번처럼 이 글이 <어나더0415> 게시판에 오르고 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후자의 경우처럼 빙빙 도는 방식으로 내 유감 표명이 전달될 경우 과연 나의 진심이 담길 수 있을까?

왜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유감을 표명한다는 말과 내가 유나씨에게 편지 형태로 한 말은 서로 다른 수사학과 장르를 전제하는 것 같아서야. 지금 내 글은 '편지' 형태잖아? 문제의 그 표현을 쓴 것도 유나씨한테 이메일 답장으로 쓴 것이고... 사실 처음에 나는 지난번 글이 게시판에 오르는 과정을 편지가 공개되는 것으로 이해했어.

물론 이렇게 말하면 진상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기는 해. 유나씨에게 그 글을 메일로 보내면 게시판에 올라갈 것이라 확신했던 게 사실이고, 그래서 비록 편지 형태라고는 해도 공개될 것을 전제하고 쓴 측면은 분명 있으니까. [좌파의 누드쇼]라는 제목까지 붙여 보낸 것이 그 증거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내 글이 서한체로 쓴 것이라는 사실까지 부정되는 것은 아닐 거야. 내가 쓴 글은 무거운 공식문건이 아니라 가벼운 글, 사담에 가까워. 그래서 그때도 지금처럼 유나씨한테 내가 말을 높였다가 낮췄다가 한 거고. 그리고 제목을 붙일 때는 못했지만 편지 본문에서 그 표현을 처음 쓸 때는 따옴표를 쳤어. 따옴표는 '소위'라는 의미를 추가하는 관습이거든. 그리고 제목에서 그 따옴표를 붙이지 않은 것은 공개될 때는 제목이 맨 먼저 올라오지만 내가 글을 쓸 때는 처음 따옴표를 붙일 때보다는 뒤에 써 붙였기 때문이기도 하지.
그래도 '누드쇼'라는 말에 기분이 상한 사람들은 나의 지금 이런 말도 마음에 안 들 것 같아. 조심스럽게 표현했다는 말도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변명일 뿐이라고 하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왕 그렇다면 좌파적 표현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고 싶어. 과연 여성의 권리나 감수성을 생각하는 좌파는 '누드쇼' 같은 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가? 좌파적 표현에는 폭력, 신성모독, (누드나 심지어 포르노 등) 음란은 일체 배제해야 하는가? (나는 지금 내가 실제 쓴 것보다 훨씬 더 도발적인 표현을 쓴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내가 쓴 표현을 보고 기분이 상한 사람들한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물론 어떤 표현이든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그러나 어떤 표현은 되고, 어떤 표현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난 번 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기본 취지와 어긋난다고 봐요. 좀더 말하면 그것은 나름대로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정도의 표현은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이런 생각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좌파들끼리 서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내가 쓰는 표현이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우리는 서로 적이 되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동지들 사이에도 의견 차이가 있잖아요. 동지(同志)는 한 뜻을 공유한 사람일 텐데, 이때 '한 뜻'의 '한'이 숫자 1을 나타내진 않을 거야 아마. 나는 '하나'는 그 안에 2와 3을 포함할 만큼 크다고 봐요. 우리말의 '한'이 '큰'으로도 읽힌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굳이 숫자 중에 가장 큰 것을 나타내는 말을 고르라면 나는 '하나'를 고르고 싶어.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좌파 가운데 내가 쓴 표현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그런 표현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적이 된다고 보지도 않고. 물론 다른 감수성과 판단을 가진 사람들은 나의 이런 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때는 다시 그런 표현의 문제에 대해 논의, 토론, 논쟁을 해야 할거야.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접촉하고, 공명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 여기에 연대의 문제가 있지 않은가 싶어요. 내가 생각하는 연대의 모델은 '접속' 형에 가까워. 접속은 합치와는 다른 조직 방식 같아. 합치가 되면 동지들의 연대는 오히려 쪼그라든 모습일 거라는 게 내 생각이야. 반면에 차이들이 드러나지만 접속을 한 모습은 저녁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새떼처럼 보이지 않을까?

왜 '누드쇼'라는 표현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는가? 그것은 이 말이 좋다거나, 가장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은 아니야. 다만 그런 표현도 사용할 수 있는 맥락이 있다고 보고, 나는 그 맥락에서 사용했다고 생각해. 내가 쓴 맥락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오히려 내 글이 말하려던 바이기도 하잖아요? 나는 좌파의 '꼬라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 것이고, 그래서 좌파의 '누드쇼'가 필요하다고 한 거잖아.

혹시 누가 제안한 것처럼 '누드쇼'라는 표현을 좌파의 '속속들이' 등으로 표현해야 할까? 문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그런 건 수사학적 빈곤만 같아. 좌파의 '있는 그대로'나 '속속들이'보다는 '누드쇼'가 효과가 훨씬 크거든. 물론 바로 이런 수사학적 함정이 문제이고, 그 안에 반여성적 태도가 스며들어 있다고 지적할 여지가 있겠지만, 그렇다면 나는 "음란은 숭고하다"는 미학적 입장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싶어(이와 관련해서는 작년 말에 낸 졸저,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 중에서 [누가 음란을 두려워하랴], [타자의 문화연구와 숭고의 미학]이라는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게이, 레즈비언이 사용하는 말, 또는 다른 다양한 하위문화 주체가 사용하는 말, 좌파 중에서도 이런 저런 성향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 모두 같을 수는 없으며, 그 중 어떤 표현은 다른 사람들의 심기를 뒤집어 놓을 수도 있을 겁니다. 타자의 목소리는 더럽게, 아니꼽게, 욕설처럼 들리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불편하게 여겨지는 그런 표현들을 최대한 용납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보적 태도겠지요? 어떤 표현, 주장을 존중한다는 것과 지지하는 건 물론 다르지요. 나는 내 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들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의견을 달리할 길이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 다름에 대해서는 쟁점을 찾아 논쟁을 할 필요가 있겠지요.

좌파적 표현은 위에서 정의한 '하나'인 것이지 숫자 1로 이해한 '하나'는 아니라고 봐요. 좌파적 표현이 도발적이고, 되바라지고, 매력적이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야. 밋밋한 글, 속살 드러나지 않는 글만 좌파의 글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해. 좌파도 다양한 장르로 글을 쓰고, 다양한 매체로 대응하는 능력을 갖췄으면! 이 매체, 저 매체로, 이 장르, 저 장르로 옮겨가면서 좌파적 열정을 '전도'(傳導)하고 파종할 수 있으면! (참고로 전도conduction는 최근에 배운 개념인데, 연역deduction, 귀납induction, 가추abduction와 같은 논리적 방법들과는 구별되는 추론 형태로서 사물에서 범주로, 범주에서 사례로, 사물과 사례 사이로 다니는 앞의 세 방법과는 달리 사물에서 사물로 건너뛰는 추론 방식이랍니다)

좌파적 표현은 무엇일까? 그걸 일목요연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실험할 수만 있는 것일까? '누드쇼'니 뭐니 해가면서, 욕 얻어 먹어가면서, 그리고 가끔은 반성도 하고 또 가끔은 고집도 부려가면서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일까? 무엇일까, 그것은? 과연 좌파적 표현은 있기는 한 것일까? 만약 좌파적 표현이 있다면 다양성을 담뿍 담은, 가능한 최대의 차이들을 담아낼 수 있는 크기와 넓이와 깊이와 굴곡을 지닌 표현 영역일 것을 기대합니다. 그래야 좌파들이 노는 표현 영역이 매력적이지 않겠냐는 거지요.
 
이은희 저두 가끔 표현에 대해 이런 고민을 해요. '좌파적'인 표현, '완전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 그런 것이 있는 걸까요? 그렇게만 고민하면 표현이란 너무 탈색되고 재미없어지는 것 같구요. 이렇게 고민하다보면 재미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보다 앞서는 것 같아서 또 고민이 되구..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요. 암튼 선생님께서 먼저 고민거리를 풀어내어 주셔서 참 좋네요. =) 04/05 22:10
바보된 학생 강내희 씨의 글은 궤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지적이었고, 그 지적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잘못되어 있는 거죠. 은근히 흐르는 권위의식이 느껴집니다. 학자 나부랭이들 짜증나네요. 어나더 0415, 들릴 때마다 힘만 빠져서 갑니다. 04/06 13:50
더 바보된 학생 강내희 선생의 글 자체는 편지투의 글부터 시작해서 궤변적인 요소가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진심은 이해가 가는 바입니다. 항상 일반적(뭐가 일반적인지 모르겠지만)기준에 빗대어 항상 비교되고 판단되어지는 것이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욕을 상당히 많이 사용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안좋은 모습일 때가 많지만 가끔은 정말 가끔은 솔직한 심정을 나로서는 이렇게, 욕을 사용해서 표현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이 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의 아가리에~라고 노래를 부를 때 좆같은~ 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정말 많은 함의가 담겨 있는 아주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남성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그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속에 담겨 있는 진실을 또 하나 없애버리는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 글은 권위적인 모습을 주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 진심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4/06 18:00
싫다 싫어 편지 글 투의 문체, 정말 맘에 안든다. 유나 씨가 누군지 모르오나 그런 투의 글은 둘이서 쓰길 바란다. 문체의 누드쇼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04/06 18:17
삐리리 싫다 싫어/ 그냥 님의 기호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거 같은데요?
필자의 선택 아닐까요. 표현 양식이라는것은. 구체적으로 내용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고, 그런식으로 내뱉는 말은 피차 힘빠지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04/07 00:41
삐리리 동의하며 삐리리 님의 의견에 절대 동의!
필자들이 편지 글의 형태, 즉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선택한 형태, 그것에 대해 이해가 갑니다...

개인과 개인의 소통이라는 형식을 통해 솔직히
자신을, 소위 집단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왜 그걸 애써 알려 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문체의 000은 머란 말이죠?
04/07 02:10
~~적표현? 저는 교수님이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의 차원에서 누드쑈란 단어를 선택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앞서 여러사람들이 문제제기 했던 것은, 누드쑈라는 단어선택의 기저에 깔린 그 무엇이었던 것이지요. 누가 감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자고 말했던가요? 교수님은 이번 글에서 문제제기의 지점이 어디인지도 알고 있다고 하시나, 오히려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마라 우리 자유로운 표현의 나래를 펼쳐보자하시니..김규항씨가 '그래 나 노력하는 마쵸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궁색해보이기까지 합니다. 04/07 03:28
싫다 싫어 삐리리/ 미안합니다. 내 얘기는 너무 자주 그런 사적 문투의 글을 쓰는게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고 논리적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받는 듯한 인상이 싫어 그랬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명증한 논리를 펼쳐야 할때 그런 투의 글이 논지를 방해할 수도 있으니, 신선한 감은 있으나 너무 자주 쓰지 말자, 뭐 이런 취지로 댓글을 단 것이니, 너무 노여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강내희 선생께도 죄송... 04/07 12:35
바보된 학생 제 생각도 <~~적표현?>님과 같은 겁니다. 여성주의적 실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에서 기인하는 문제라고 봅니다. '너무 딱딱하다'라고 느껴진다는 것은, 그것이 어느 정도로 중요한 원칙인가에 대한 이해 부족인 거죠. 여성주의적 감수성에 따른 문제제기에 직면해서 입장의 차이라는 언명으로 빠져나가는 모습들은 이제 전형적이기까지 합니다. 결단코 이것은 이해 부족의 문제입니다. 04/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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