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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자타가 공인하는 컴맹입니다. 김진균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저에게 몇 번 메일로 보내주셨을 때도 전 되게 신기해했고, 강내희 선생님이 하이퍼 텍스트 이야기하셨을 때도 전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항상 놀림을 받았고, 최근에 진보넷에 상근하면서는 거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편함을 몰랐어요. 모를 땐 주변에 한컴 한다는 동지들이 항상 동지적 애정(?)으로 저의 의존을 받아주었기 때문이지요. 인터넷에서의 소통에 관해 저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아니 만나서 이야기하믄 되지, 필요하믄 전화를 하던가 싸울 일이 있으면 만나서 술 한잔하면 되지, 머하러 피도 안통하는 화면을 눈앞에 놓고 자기 속내를 털어놓고 심지어 그걸 공개하느냔 말이지... 정말 그랬더랍니다.
처음 another0415를 시작하면서 컴맹답게 머하러 해야 할까에서부터 공포심까지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총선이든 대선이든간에 소위 '우리'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독자후보 전술을 쓸 수 있는 힘이 있었을 때, 선거는 소위 '프로파 아지'의 장이라면서 무척 열심히 뛰었었습니다. 그런데 독자후보 전술을 구사할 힘도 역량도 잃은 순간 의회주의에 대한 비관과 합법정당에 대한 비판만이 존재했습니다. 결론은 언제나 '투쟁으로 돌파하자'는 것이었죠. 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의회의 진출과 합법정당 노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듯 하니 다음으로 미뤄야할 것 같습니다.
하여간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까, 팔짱끼고 비토하는 사람으로 남아야만 할까? 그런 고민으로 시작했습니다. 과연 조합원들, 그리고 내 주변의 동료와 동지들, 소위 사회에서 열심히 노동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거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통해 판단할까? 선거만 되면 소외되는 인민들의 투쟁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 누구를 찍냐, 어떤 정치적 견해가 옳다는 어찌 보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총선이라는 정국에서 열린 논쟁, 열린 토론을 한 번 시작해보고 싶었던 것이 another0415 였습니다. 그런데 탄핵정국이 터지면서 논쟁이 한편에서는 격화되었고, 한편에서는 협소화 된 측면이 없지 않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이 짓을 시작하면서 저의 고민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연 소통이란 무엇일까? 대중과 함께 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운동권들이 쓴 글을 보면, 신자유주의, 투쟁, 대중이란 말이 검색 순위 1-2위를 다툽니다. 과연 나는 대중과 소통하고 있었던가, 아니면 소통하려 노력했던가? another0415를 개통하기 직전 탄핵사태가 터지고, 촛불시위가 일었던 토요일이었지요. 오랜 동안 친자매같이 지내던 후배랑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광화문에 있더라구요.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왜 거기 가 있냐고 따져 묻고 끊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광화문에 사람들이 왜 나갈까? 나의 행동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어제 처음으로 광화문에 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그래서 광화문이 아닌 다른 공간을 조직하자거나 광화문이건 아니건 탄핵반대가 아닌 민중투쟁의 슬로건을 외치게 하자 등등의 대안을 낼 수 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해왔던 말, 하지만 실현하지 못한 공허한 말, 그것이 우리의 아니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발전 파업 과정에서도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처음에 누가 38일을 버티리라고 생각했을까요? 사유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철한 계급의식이 발전 노동자들의 뚝심의 근원일까요?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적 계급의식이 투쟁의 물을 만나 드디어 발호하게 된, 그런 것이었을까요? 생존의 위협 때문이건, 사유화 저지에 대한 신념에서건 간에 이미 시작된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은 원칙과 신념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 그것이 충분히 소통하였고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은 훌륭한 것이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기에 발전노동자들은 귀족 노동자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현실의 모습이었고, 소위 말하는 노동자 계급 운동의 현 주소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들은 일상적 상황에서 때로 비겁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의 조건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상황에 처하면 일순 혹은 급격하게 바뀌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람이고 사는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이러한 현실을 이해하며, 그래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그 '코드'를 찾는 것이 운동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도 바로 그 여러 가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원칙을 벼리고, 대안을 내놓지 못해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해력이 부족하고, 재단하는 나쁜 버릇을 놓지 못하고, 그래서 먼저 절망하거나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동지의 말씀대로 우리는 입장과 원칙을 주장하는데는 익숙하지만, 자기를 드러내고 솔직하게 사람들과 만나는 것에는 무능합니다. 저는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7-80년대 선배들의 논투, 그것이 ane어나는 책을 읽고 그것을 교과서인 냥 외우면서 그러한 논법과 말투로 이야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그 사람의 솔직한 마음을 들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저 사람의 출신성분을 궁금해하고 그에 따라 재단하고, 신뢰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운동권의 용법과 언어를 유산받았다고 생각하면서 그 유산을 자랑하고 다녔던 것이 저였고, 우리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동지께서 술자리에서 우리에겐 왜 선동가가 없고, 시인이 없고, 소설가가 없냐고 물으셨죠... 왜 없겠습니까? 단지 우리가 먼저 그 분들이 말하는 생경한 단어에 주저했고,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좌파의 피, 그 농도 여부를 따지면서 그 분들과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 피의 농도를 가늠해왔던 기준은 외양과 외견이었지 진정성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진정성은 서로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신뢰가 쌓이고 존경이 생겨나면서 그 피는 농도 짙게 발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운동의 경험 속에서 투쟁의 현장을 뛰어다닌답시고 했던 많은 기억들이 스칩니다. 왜 그 소중한 기억을 자산으로 남기지 못했을까 지금 돌아보니 발등을 찍고 싶습니다. 현장에 투신한 훌륭한 선배와 동지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이 적통임을 자랑하면서 주변의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지치게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자신이 노동자라고 불리는 것을 기분 나빠했다고 고백했던 한 동지는 지금 훌륭한 투사가 되어 굳건히 서 있습니다. 이런 역설적인 과정을 마음에 새기고 배우고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운동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설과 반어, 극적인 반전은 시와 소설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운동의 삶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야 되겠지요. 그렇지만 올바름은 언제나 과정인 듯 합니다. '우리는 순수의 새를 겨냥했지만, 결국 그 새는 피에 젖은 상한 새에 지나지 않았다'는 시 구절이 갑자기 기억납니다. 올바름을 찾아나가는 길은 하나의 결론이 아닌 과정으로, 그런 만큼 솔직하고 담백하게, 서로를 믿어가며 찾아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제 운동의 신념이 되었으면 하고 진정으로 바랍니다.
하여간 요즘 저는 이 짓, 이 어려운 짓을 시작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해가면서 새로 배우는 것, 고민하게 된 것이 '피에 젖은 상한 새'를 잡는 잔인한 짓에 머무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던져주신 고민에 부족한 답변이지만, 계속 고민해나가겠습니다. 잘했으면 하는데, 저를 짓누르고 있는 관성의 벽이 저를 과연 놓아줄까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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