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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씨
<Another0415>가 '운동권 게시판'처럼 되고 말았다는 메일을 읽고 가진 내 처음 반응은 아니 운동권 사이트 아니었던가, 라는 것이었어요. 운동권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면 운동권 사이트지, 한 것이 내 착각이었나?
하지만 그래도 그런 사이트나 게시판으로의 '전락'을 염려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 그리고 그 염려는 아마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벌이려는 문제의 제기나 분석, 쟁점 토론, 논의가 확산되기보다는 협소해지지 않느냐는 답답함인 듯한데,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생각이 같아요.
금요일(3/19) '민중탄핵이다! 토론회' 참석했을 때 홍석만씨랑 잠깐 밖에 나와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좌파는 자기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좌파가 자기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 사실 좌파야말로 제 입장 지키는 데는 선수 아닌가?
하지만 입장을 지키는 것,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과 속마음을 털어놓는 건 다른 것 같아. 입장을 말하고, 주장을 펼치는 것은 엄숙한 공식 행사에서 하는 일 같다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건 마치 '누드쇼'를 펼치는 것 같거든.
그런데 우리가 진보의 누드쇼를 펼치지 못하면 과연 대중들이 우릴 신뢰할까? 우리도 자길 보여주지 않는 사람, 자기의 약한 모습 드러내지 않는 사람, 말하자면 '누드쇼'는 절대 하지 않는 사람 신뢰 잘 안 하지 않아요? 당연히 '누드쇼'도 누드쇼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면서 마음의 문을 꼭 닫아놓고, 행여 우리 나체를 훔쳐볼까 전전긍긍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그래서 드는 생각, 아니 의문인데, 오늘의 좌파는 얼마나 매력적일까요? 요즘 좌파가 매력적이라는 말을 별로 들을 수 없는 것 같아. 오세철, 김세균, 채만수, 손호철, 김성구, 이종회, 박장근 등 우리와 함께 남아있는 선배, 동지들은 분명 존경스럽지만 과연 충분히 매력적일까?
물론 개별적인 매력이야 있지. 하지만 좌파가 대중의 연호를 받으며 사랑을 받는 경우는 없거나 있더라도 소수한테서만 받는 것 같아. 우리의 더 큰 매력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우리의 매력적인 지도자는 어디에 있고, 또 어떻게 나타날까?
한국에서 좌파가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나'의 고민, '우리'의 내면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생각한다고 "내 죄로소이다" 식의 종교적 고백을 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야. 그래도 좌파가 아무런 정신적 갈등도 겪지 않고 사는 것 같아서야 매력이 생기겠어?
언제나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좌파, 입장과 각을 세우고 있는 좌파, 하지만 정열은 없어 보이는 좌파, 기왕의 답만 가지고 사태에 대응하는 좌파, 별 볼 일 없는 입장만 앞세우고, 쓰잘 데 없는 정세분석만 하는 민중진영 등등이 지금 우리 이미지 아냐?
이걸 단지 이미지의 굴레로만 생각해야 할까, 아님 그것도 중대한 물질성으로 간주하고 변형시켜야 하는 것일까? 그저께 회의(3/23)에서 만든 '신자유주의 개혁 심판 민중연대'의 조직 구성을 놓고 공동대표 선출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어요.
공동대표를 군더더기로, 불필요한 것으로 보는 입장이 표명되었는데, 처음에는 그 문제의식에 공감했지만, 좀더 생각해보니까 공동대표도 상징성의 문제인 것 같았어. 지금까지 좌파 운동에서 지도자로서의 상징성을 지닌 분들이 대표가 되곤 했잖아? 백기완, 김진균(지금 선생님이 없어서 얼마나 허전한지 몰라), 단병호 등이 우리의 지도자였고, 그래서 무슨 중요한 연대조직을 만들면 늘 그분들을 모시지 않았어?
이것은 우리 운동을 기존의 상징으로 표현하는 한 방법인데, 어제 공동대표단 구성에 반대하는 의견은 그런 상징의 정치에 더 이상 기대지 말자는 문제의식이겠지요. 최근 국면에서 진보진영은 개혁세력과 스스로 구분하기 위해서 국민발의, 국민소환 등의 직접민주주의 강화 슬로건을 내놓고 있는데, 공동대표 구성 반대도 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겠지요.
그런데 회의 중간에 생각이 바뀝디다. 아니 바뀌었다기보다는 더 복잡해집디다. 노동자의 힘, 사회주의 정치연합에서 나온 동지들이 공동대표의 상징성의 실질적 필요성을 지적했기 때문이에요. 공동대표를 두지 않고 운영위원회로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사건건 운영위원회가 모든 것을 의결하게 하여 실제 중요한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지적이었어요.
결론적으로는 당장은 판단을 유보하고 공동대표단을 구성하는 문제는 대표자회의에서 의논하기로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내가 얻은 수확은 '상징의 물질성'이라는 문제를 좀더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상징, 대의, 대변, 재현 등은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국회의 대의제, 의회민주주의 문제와 연결되는 개념들인데,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를 바로 직접민주주의로 교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후자에 의해서 발목잡힐 수도 있다는 거지요. 대의제를 바로 없애는 것이 당장 가능하지도 않고.
결국 나는 직접민주주의의 강화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면서도 아무런 매개 없이 그 쪽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듭디다. 아울러 대표를 만드는 방식이 관건이겠다는 생각도. 바라건대 현장에서 우리의 대표가 나왔으면 해요,
정말 바라건대. 다시 말해 운동 속에서 운동의 대표가 구성되는 방식. 그런 대표가 나오기 전에는 '상징적인' 공동대표가 필요할지 모르겠는데, 이건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잘 판단해야 할 것 같고... 공동대표를 기존의 상징성(주요 개인이든 주요 단체 대표든)을 참조하여 뽑으면 그때 상징성은 어떤 일관성, 습관, 관행을 의미하면서 때로는 운동의 족쇄가 될 수도 있겠고, 그렇다고 그런 상징적 물질성을 완전히 외면하면 그것 역시 관념에 빠진 꼴일 거야, 아마.
이 모든 것은 문제가 참 어렵다는 말이겠지? 직접민주주의가 올바른 길 같지만, 그것이 제기하는 문제점도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대의제, 의회제의 문제가 해소되는 것도 아니잖아? 직접민주주의가 행여 문제가 된다고 해서 바로 대의제를 지지할 수는 없잖아?
그렇다면 결국 핵심은 대의와 표현의 관계,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긴장관계인 것 같은데, 여기서 어려움이 생기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로서는 이 어려움에 대한 민감성, 감수성을 잃지 않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
좌파의 '꼬라지'를 말하려다가 이야기가 다른 데로 흐른 것 같은데, 그래도 연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녀요. 나는 좌파가 자기 '꼬라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봐. '좌파의 누드쇼'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우리 역시 몸으로 살고 있잖아? 꿈과 희망만 있는 게 아니라, 고민이 있고, 불안과 초조가 있고, 염원만이 아닌 좌절과 회한이 있잖아? 한잔 술로 맘을 달래야 하고, 캄캄한 하늘을 향해 소리라도 질러야 하고, 옷이라도 벗어 던져야 하잖아?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처럼 욕망과 욕정도 있잖아?
좌파의 누드쇼는 좌파의 음란행위, 실험일 것 같아요. 아름다음만을 추구하며 음란은 더럽고 혐오스럽다고 다 걷어내 버리면 우리 삶의 기획은 너무 선병질적인 빈약함으로 그칠 것 같아.
좌파도 정신분열을 겪을 필요가 있고, 또 그런 정신분열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사실 내 맘속에는 광화문집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과 분노가 금요일 좌파들이 가진 토론회에 대한 기대와 사랑과 답답함 등과 뒤섞여 있거든.
나의 사랑은 좌로 향하고 있지만, 원칙적인 좌를 보면 존경심도 생기지만 그래도 답답한 거라. 힘없는 좌는 보기 안쓰럽고, 반면에 광화문에 간 사람들의 정열과 힘은 사실 좀 부럽거든. 요런 내 모습을 누가 볼까 눈치 봐야 하나?
이상이 요즘 내 꼬라지랍니다.
강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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