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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권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확대된 게 뭐 있었나?"
"많지 않느냐."
"뭐가 있지?"
"가령, 인적청산, 지역주의 타파, 세대 교체, 보수공격……"
"과연 그런가?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대된 건 뭐가 있나?"
"정치관계법 같은 게 있지 않는가. 비례대표제, 정치자금법, 선거법……"
"정말 그런가? 그 외에는?"
"......"
노무현과 개혁세력이 말하는 '정치개혁'이 정말 민주주의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일까? 형식에서나 내용에서나 정말 과거와는 다른 '개혁적인' 민주주의라 볼 수 있는가? 현재 사태를 바라보는 해법은 이 질문의 답에서 찾아야 한다. 왜 그런가? 노무현정권 등장 이래 '보수'와 '개혁'간 크고 작은 마찰과 싸움들은 사실 하나같이 '정치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져왔기 때문이다.
명목과 내용을 따져보면 분명해진다. 네이스, 송두율 선생과 보안법, 파병, 새만금, 대북송금특검, 대선자금 문제 등 '보수'와 '개혁'이 대립해온 사안들의 공통분모를 끌어내보면 '정치개혁'으로 압축된다. 국회에서 '보수'가 대통령 탄핵을 감행함으로써 탄핵 국면으로 부풀려졌지만, 이 국면의 속사정도 따지고 보면 '정치개혁'을 둘러싼 대립의 성격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보수'와 '개혁'의 끊임없는 다툼, 그리고 '개혁'이 빼어든 정치개혁 카드는 오늘날 대중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품게 유도하였다. 오랜 세월 '보수'의 횡포에 시달려온 대중들은 '보수'가 공격당한다는 것 자체로 고무, 격앙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개혁패거리들은 보수를 공격하면 할수록 민주주의가 확대된다는 거짓 공식을 공공연하게 유포해왔다. 1987년 6월항쟁의 역사까지 들추어 가공함으로써 대중의 심리적, 정서적 상태에 편승한 주도면밀한 작전을 펼쳐왔다. 바야흐로 개혁패거리들이 만들어서 던져놓은 '탄핵무효, 민주수호'는 대중 여론 차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기에 이르렀다.
'탄핵'을 두고 반대냐, 찬성이냐의 의견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대중 여론 차원에서 보면 가려서 안 들린다. '민주수호'를 두고도 어떤 민주주의냐, 과연 민주주의냐 등의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대중 여론 차원에서 보면 가려서 안 보이는 이야기들이다. another0415 같은 데서나 설왕설래될 뿐 '탄핵무효, 민주수호'에 대적할만한 대중적 발언은 좀처럼 눈에 띠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조바심과 조급증에 걸린 운동세력의 일부는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장으로 뛰어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 개혁패거리들이 말하는 '정치개혁'은 민주주의와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수호해야 할 민주라는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보수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 내용상으로 꼽아보라면 '인적청산, 지역주의 타파, 세대 교체, 보수공격' 정도를 든다. 백번 양보해서 여기에 민주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치자. 그런다 하더라도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의 그것과 견주어볼 때 오십보 백보다. 형식 면에서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 정치관계법 같은 것을 꼽는다. 그러나 지난 달 마지막 국회에서 통과된 정치관계법은 '보수'와 '개혁'간 밥그릇을 둘러싼 끈질긴 힘겨루기의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막바지 지역구 의원 수와 비례대표 수 확정에서 보인 열린우리당의 태도는 개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개정된 정치관계법은 실질적인 민주주의 조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오히려 온오프 라인을 통한 사전 정치활동과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조항들로 가득하다. 가령 게시판실명제, 전자서명제, 통신자료제출요구권 등을 거론하는 것이나 옥외방송, 연설 제한 등 선거 시기 정치활동 일반에 대한 규제 따위가 그러하다. 게다가 개정 집시법의 적용은 선거 공간 뿐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일상적인 정치활동 전반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그저께 최옥란열사추모 2주기 집회에서 보인 경찰의 태도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말하는 정치개혁이 민주주의적 조치로 보여지고, '보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따라서 '개혁'에 대한 공격에 앞서 '보수' 공격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장악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탄핵반대 민주수호'의 깃발을 내건 개혁패거리들의 동원전략은 그렇다고 치자. '보수'를 공격해서 시민혁명을 완수하겠다는 신자유주의 개혁패거리들의 정치전략도 그렇다고 치자. 그리고 그동안 2중대로 편재되어 개혁패거리를 지원해온 잡다한 시민운동 세력들까지도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 판에 끼어든 민족주의 우파들,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들, 그리고 일부 부하뇌동하는 좌파 운동 세력의 행동거지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다시 결론을 말한다. '반자본 대중행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는 자들이 문제다. 중심에 반자본을 두지 않고, 반개혁이니, 반민주니, 반통일세력이니 따위의 허접한 생각들을 두다 보니, 일을 벌이고도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것이다. 여기서 반자본 대중행동을 얼마나 잘 하나 못하나를 따지는 것은 일단 차치하자.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감추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간하는 것과, 얼마나 잘 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오늘날 이 땅의 자본운동의 기획, 연출, 실행은 누가 중심이 되어 전개하고 있는가. 정확하게 말하자. '보수'가 아니다. '개혁'이다. 동북아경제중심추진이 그러하고, 경제자유구역 시행이 그러하고, 한-칠레, 한-일,한-싱가폴 자유무역협정 추진이 그러하고, 노동유연화와 비정규직의 확산이 그러하고, 시장개혁로드맵에 노사관계로드맵 같은 재벌개혁, 노사개혁 추진이 그러하다. '신자유주의개혁'이 노동자 민중 다 죽이는 자본 전략이고, '개혁패거리'들이 노동자 민중 다 죽이는 자본의 하수인들이다. 이들이 지금 '정치개혁'을 말한다. 중언부언하지 말라. 이게 핵심이다.
이렇게 뻔히 아는 사실, 입만 뻥긋하면 들먹였던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죄다 탄핵 정국에 휩쓸린 듯 하다. 탄핵 정국이랍시고, 대중들이 몰려다닌다고, 광화문 네거리가 열렸다고, 앞뒤도 분간하지 못하고 시류에 편승한 조악한 운동세력들은 '개혁' 포로가 되어, 결국 자본의 전략에 포섭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에 홀렸던 눈을 돌려 현실을 살펴야 한다. 승기를 잡고 희희낙락해대는 건 '개혁'만이 아니다.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평정이라도 한 듯 득의에 찬 미소를 띤 자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 이제 냉정을 찾고, 개혁패거리들과 그 배후를 하나씩 하나씩 가려내는 데 온 힘과 지혜를 집중해야 한다.
지금은 탄핵 국면을 넘고, 총선을 관통함으로써 노동자 민중이 걸어가야 할 반자본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나누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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