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왜 반자본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가
유영주 (활동가) 읽음: 3226
작성일: 2004년03월29일 05시06분09초
"노무현정권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확대된 게 뭐 있었나?"
"많지 않느냐."
"뭐가 있지?"
"가령, 인적청산, 지역주의 타파, 세대 교체, 보수공격……"
"과연 그런가?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대된 건 뭐가 있나?"
"정치관계법 같은 게 있지 않는가. 비례대표제, 정치자금법, 선거법……"
"정말 그런가? 그 외에는?"
"......"

노무현과 개혁세력이 말하는 '정치개혁'이 정말 민주주의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일까? 형식에서나 내용에서나 정말 과거와는 다른 '개혁적인' 민주주의라 볼 수 있는가? 현재 사태를 바라보는 해법은 이 질문의 답에서 찾아야 한다. 왜 그런가? 노무현정권 등장 이래 '보수'와 '개혁'간 크고 작은 마찰과 싸움들은 사실 하나같이 '정치개혁'을 둘러싸고 벌어져왔기 때문이다.

명목과 내용을 따져보면 분명해진다. 네이스, 송두율 선생과 보안법, 파병, 새만금, 대북송금특검, 대선자금 문제 등 '보수'와 '개혁'이 대립해온 사안들의 공통분모를 끌어내보면 '정치개혁'으로 압축된다. 국회에서 '보수'가 대통령 탄핵을 감행함으로써 탄핵 국면으로 부풀려졌지만, 이 국면의 속사정도 따지고 보면 '정치개혁'을 둘러싼 대립의 성격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

'보수'와 '개혁'의 끊임없는 다툼, 그리고 '개혁'이 빼어든 정치개혁 카드는 오늘날 대중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품게 유도하였다. 오랜 세월 '보수'의 횡포에 시달려온 대중들은 '보수'가 공격당한다는 것 자체로 고무, 격앙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개혁패거리들은 보수를 공격하면 할수록 민주주의가 확대된다는 거짓 공식을 공공연하게 유포해왔다. 1987년 6월항쟁의 역사까지 들추어 가공함으로써 대중의 심리적, 정서적 상태에 편승한 주도면밀한 작전을 펼쳐왔다. 바야흐로 개혁패거리들이 만들어서 던져놓은 '탄핵무효, 민주수호'는 대중 여론 차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얻기에 이르렀다.

'탄핵'을 두고 반대냐, 찬성이냐의 의견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대중 여론 차원에서 보면 가려서 안 들린다. '민주수호'를 두고도 어떤 민주주의냐, 과연 민주주의냐 등의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대중 여론 차원에서 보면 가려서 안 보이는 이야기들이다. another0415 같은 데서나 설왕설래될 뿐 '탄핵무효, 민주수호'에 대적할만한 대중적 발언은 좀처럼 눈에 띠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조바심과 조급증에 걸린 운동세력의 일부는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장으로 뛰어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 개혁패거리들이 말하는 '정치개혁'은 민주주의와 눈꼽만큼도 관계없다. 수호해야 할 민주라는 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혹자는 보수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 내용상으로 꼽아보라면 '인적청산, 지역주의 타파, 세대 교체, 보수공격' 정도를 든다. 백번 양보해서 여기에 민주주의적 요소가 있다고 치자. 그런다 하더라도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보수'의 그것과 견주어볼 때 오십보 백보다. 형식 면에서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 정치관계법 같은 것을 꼽는다. 그러나 지난 달 마지막 국회에서 통과된 정치관계법은 '보수'와 '개혁'간 밥그릇을 둘러싼 끈질긴 힘겨루기의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막바지 지역구 의원 수와 비례대표 수 확정에서 보인 열린우리당의 태도는 개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개정된 정치관계법은 실질적인 민주주의 조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오히려 온오프 라인을 통한 사전 정치활동과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조항들로 가득하다. 가령 게시판실명제, 전자서명제, 통신자료제출요구권 등을 거론하는 것이나 옥외방송, 연설 제한 등 선거 시기 정치활동 일반에 대한 규제 따위가 그러하다. 게다가 개정 집시법의 적용은 선거 공간 뿐만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일상적인 정치활동 전반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그저께 최옥란열사추모 2주기 집회에서 보인 경찰의 태도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말하는 정치개혁이 민주주의적 조치로 보여지고, '보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따라서 '개혁'에 대한 공격에 앞서 '보수' 공격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장악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탄핵반대 민주수호'의 깃발을 내건 개혁패거리들의 동원전략은 그렇다고 치자. '보수'를 공격해서 시민혁명을 완수하겠다는 신자유주의 개혁패거리들의 정치전략도 그렇다고 치자. 그리고 그동안 2중대로 편재되어 개혁패거리를 지원해온 잡다한 시민운동 세력들까지도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이 판에 끼어든 민족주의 우파들,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들, 그리고 일부 부하뇌동하는 좌파 운동 세력의 행동거지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다시 결론을 말한다. '반자본 대중행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는 자들이 문제다. 중심에 반자본을 두지 않고, 반개혁이니, 반민주니, 반통일세력이니 따위의 허접한 생각들을 두다 보니, 일을 벌이고도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누구에게 해를 입히는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는 것이다. 여기서 반자본 대중행동을 얼마나 잘 하나 못하나를 따지는 것은 일단 차치하자.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감추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분간하는 것과, 얼마나 잘 하느냐를 따지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오늘날 이 땅의 자본운동의 기획, 연출, 실행은 누가 중심이 되어 전개하고 있는가. 정확하게 말하자. '보수'가 아니다. '개혁'이다. 동북아경제중심추진이 그러하고, 경제자유구역 시행이 그러하고, 한-칠레, 한-일,한-싱가폴 자유무역협정 추진이 그러하고, 노동유연화와 비정규직의 확산이 그러하고, 시장개혁로드맵에 노사관계로드맵 같은 재벌개혁, 노사개혁 추진이 그러하다. '신자유주의개혁'이 노동자 민중 다 죽이는 자본 전략이고, '개혁패거리'들이 노동자 민중 다 죽이는 자본의 하수인들이다. 이들이 지금 '정치개혁'을 말한다. 중언부언하지 말라. 이게 핵심이다.

이렇게 뻔히 아는 사실, 입만 뻥긋하면 들먹였던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죄다 탄핵 정국에 휩쓸린 듯 하다. 탄핵 정국이랍시고, 대중들이 몰려다닌다고, 광화문 네거리가 열렸다고, 앞뒤도 분간하지 못하고 시류에 편승한 조악한 운동세력들은 '개혁' 포로가 되어, 결국 자본의 전략에 포섭되는 비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에 홀렸던 눈을 돌려 현실을 살펴야 한다. 승기를 잡고 희희낙락해대는 건 '개혁'만이 아니다.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평정이라도 한 듯 득의에 찬 미소를 띤 자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 이제 냉정을 찾고, 개혁패거리들과 그 배후를 하나씩 하나씩 가려내는 데 온 힘과 지혜를 집중해야 한다.

지금은 탄핵 국면을 넘고, 총선을 관통함으로써 노동자 민중이 걸어가야 할 반자본의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나누어야 할 때다.
 
슝~~~ 딱! 정곡을 찌르다.

좌파는 대중 앞에서 무기력하다고 야그들 하면서 유기력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 수구 반동을 이 참에 죽여한다고 말씀하시는 여러 '훌륭한' 좌파 선생님들이 새겨들어야겠네요.

도대체 우리에게 대중은 무엇일까요? 현재 국면에서는 좌파가 저 광화문의 대중 앞에서 그 어떤 내용을 떠들든 간에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코드가 달라요, 절대 균열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으로 코드가 다르지요. 아무리 수구반동 몰아내자고 함께 외치면서 또 다른 좌파의 대안을 야그해봤자 소새끼 귓구녕에 트림하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따라서, 운동 영역에 있는 계급 대중을 향해 정확한 정치폭로를 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은 '반신자유주의, 반제 반세계화, 반자본'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4.15 이후 노무현 이수호 체제를 넘어 새로운 반격을 준비할 수 있겠지요.

그래야 계급대중을 노동귀족과 쁘띠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로부터 분리시켜내며, 이랬을 때 사회운동 영역의 친좌파적 성향의 세력들을 실제로 견인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백날 그들과 함께 한다고 해서 그래 우리 함께 하자고 따라오지 않는답니다. 아마도 이쪽에서 그쪽으로 건너가는 이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더 많은 민주주의 확보, 그리고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투사로서 노동계급은 항상 계급적 원칙에 충실한 가운데서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지의 글 잘 읽었습니다. 휘리릭~!
03/30 04:29
현 슝~~~님께 드립니다..
운동의 기본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그 길은 사회를 조금씩 민주화 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점진적 개혁을 의미하는 말은 아닙니다...혁명은 이런 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존재 할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신자, 반자본, 반세계화 다 해야되고 정세적인 이야기 들이지만..현재 국면을 정세에 끼워 맞춰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생각입니다..
남한내 좌파가 공통적으로 외치는 것은 국민 소환, 국민 발의 입니다...(노무현 하야까지 이야기 하는 세력이 있긴하지만...)
이것들을 가지고 우리는 대중과 충분히 소통하고 논쟁할수 있습니다..
어찌 대중은 광화문에 있는데 우리는 좌익소아병적 사고로 그들과 분리 되고자 하십니까...저의 몇년간의 운동속에서 이렇게 우리 내용이 대중들에게 먹혀 들어갈수 있었던 상황은 그닥 많지 않았습니다...
다들 탄핵뉴스만 바라보고 있는데....뜬금없이 계급이 어쩌고 자본이 어쩌고 한다고 해서 우리의 세력이 확장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님께서 쓰신 글은 유영주님의 글과도 약간의 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현 국면에서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국민발의, 국민소환이 반신자, 반세계화, 반자본에 있어서 한치도 어긋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단지 그것이 대중 추수적으로 내용을 잃어 가고 있는 일부 세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대표적으로 다함께가 아닐까요..)
수업 시간이 다되어 이만 글을 줄입니다....(원래 글을 이렇게 급하게 적지는 않는데...시간이 없어서...내용을 제대로 정리 하지 못했습니다..약간의 논리적 비약이나 비문등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03/30 11:45
김승만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반자본주의 전선 강화를 위한 이야기에 대해 동감하면서도 현 운동진영에 대한 진단을 하였을 때 찹찹한 마음이 듭니다.
반자본주의 전선은 늘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조직과 실천이라는 현실에 있어 현 운동진영은 무기력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두가지 이유를 들고 싶습니다.
조직활동가의 부재와 현장 활동가 재생산 시스템의 붕괴가 현 운동진영에 있어 심각할 정도의 위기로 치닫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을 들이고 싶습니다.

이라크 파병반대를 시작으로 2003년 투쟁, 테러방지법, 국가보안법, 경제자유구역법, 한칠레 FTA, 집시법 개악, 손배가압류를 통한 열사정국, 이주노동자 투쟁 등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자본주의 시장 민주주의를 구축을 위한 단계를 철저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투쟁에 대항하기엔 현 운동진영은 무기력했습니다. 정확히 말해 현 운동진영의 현장 장악력의 부재라 할 수 있습니다.

반자본주의 투쟁은 명확하게 전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지금 이시점에서도 명확합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전선에 있어 현 운동진영의 공동투쟁은 대응은 얼마나 미약합니까? 이주노동자 투쟁, 장애인 이동권 투쟁, 테러방지법, 집시법, 손배가압류 투쟁 등 굵직한 투쟁에 현 운동진영 연대투쟁의 기풍은 어디로 까먹었을까요. 그리고 투쟁의 책임성 또한 어디로 까먹었습니까? 전선을 이야기 하기 이전 운동의 전선을 명확히 세우고 투쟁을 지속하는 것이 더욱더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전선이 명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현 운동진영의 과거와의 단절(조직화 투쟁과 활동가 내적 재생산)이 가져온 산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래서 광화문 촛불시위를 보면서 개혁세력이라 통칭되는 그들의 활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투쟁이 자생적 굴종을 넘어 조직화 가도에서 해방감에 도취되어 1987년 6월 항쟁의 적자로서 그 지위를 자칭하며 목도하고 있는 그 자체에 경악을 금치 못하지만 그게 현상을 그냥 목도하고 있습니다.

현 운동진영은 과거 미덕이었던 연대투쟁의 기풍은 현장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지금은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양분되어 노노갈등이 노동계의 치부로 들어나고 있는 현실정에 현장 선진활동가 고전은 늘 마음아픈 소리로 메아리 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탄핵정국은 현 정세와 무관케 시민들의 해방구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자생적 굴종을 넘어 노사모라는 거대한 개혁을 열망하는 세력으로 자기발전을 해왔습니다. 노사모의 온-오프라인 활동은 거의 종교단체들의 광신적 맹신주의를 넘어 조직활동가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들을 면면을 보면 80년대 학생운동을 진두지휘하거나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이 더군요. 특히 안희정, 여택수들은 80년대 학생운동 출신들입니다. 또한 안티조선운동을 통해 서로간 일정정도 결속을 다진 이들입니다. 이에 저는 광화문 촛불시위를 자생적 굴종으로 보지 않고 철저히 온-오프라인이라는 매체를 골간으로 한 그들의 조직활동에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들은 98년 김대중 대선시기 반한나라당이라는 전선속에 김대중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고, 2002년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면서 개혁의 확신을 얻어 만들어낸 자발적 조직입니다.(그들의 생명력이 어디까지 인지는 의심이 들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맛보았습니다.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과거로부터 현 좌파운동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광화문 촛불시위를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복원이라 함은 현장투쟁과 실천활동에 대한 공동투쟁의 복원이 시급한 것 같습니다.

노무현 이후에 불어닥칠 광풍에 대한 준비와 투쟁의 예각화 시급한 것 같습니다.

유영주 동지의 글을 읽으면서 허접한 생각을 끌적여 보았습니다.
03/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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