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탄핵사태 이후 드는 몇 가지 생각
최용준 읽음: 5481
작성일: 2004년03월20일 19시01분36초
1. Another0415에 실린 송유나의 글은 "민중탄핵"을 주장한다. YS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관성 있게 계승한 노무현 정권을 민중의 이름으로 탄핵하자는 주장이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국회의 탄핵에 공분하고 있는 마당에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탄핵'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 것일까? "국회의 탄핵이 아니라 민중의 탄핵"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재치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민들에게 내어놓는 슬로건으로 적당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왜 진보운동은 지금까지 노무현 정권을 탄핵하자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으면서, 이제사 탄핵하자는 주장을 내거냐는 전성식의 주장이 일리있게 들린다.

2. 최원 씨의 글은 공부의 깊이 때문인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의 글을 천천히 따라서 생각하며 읽으면 속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철학도라서 그런가. 그가 이따금씩 따옴표 안에 묶어놓은 개념들은 너무 함축적이어서, 도대체 누구를 독자로 삼고 글을 쓰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쨌든 그가 말하는 국민발안, 국민소환은 귀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논리 싸움에 참여한다는 느낌 이상을 주지 않는다. 그는 분명 '전술'을 말하는 것일텐데, 그의 국민발안, 국민소환 주장은 주체역량을 고려한 주체의 계획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운동조직의 일원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조건 탓이겠지만. 아니, 그래서 그가 그토록 열심히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3. 전성식은 민의련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총선에 적극 참여하자고. 노동자 민중 진영의 공동후보를 내어 부르주아 의회정치의 기만성과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실상을 비판해야 한다고. 일리 있는 얘기로 들린다. 하지만, 역시 그게 "전술"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재작년 대선에서 노동자의 힘, 사회진보연대 같은 운동조직이 민주노동당에게 공투본을 구성하여 노동자 민중 후보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함께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민주노동당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경선이나 추대를 통해 총선후보를 꽤 뽑아 놓은 상태인데, 노동자 민중 진영의 "공동"후보라니. 어느모로 보나 주장으로 남을 뿐 전술로서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더라도, 논의의 수준에서는 문제를 달리 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더라도, 차라리 여러 운동조직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활동에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어제 Another0415의 토론회에 참석한 여러 운동단체들, 그렇게 이리저리 나뉘어 있는 운동조직들이 갑작스런 사태를 맞아 주체적으로 대응하기란 불가능하다.

 
송유나 답변이 늦어져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님(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요...)뿐만이 아니라 민중탄핵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합니다. 빨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님이 지적해주신 바는 일단 두 가지이신 것 같습니다.

먼저 국회의 탄핵에 광분하고 있는 마당에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탄핵이라는 말을 굳이 써야 하는가? 다음으로는 이제까지 탄핵하자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으면서 이제야 탄핵하자는 주장을 하는가?

탄핵이라는 주장, 탄핵투쟁은 일상적인 투쟁의 과제가 아닙니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까지 정권 퇴진, 정권 해체, 타도(사실 그 때는 탄핵도 아니었죠...)는 일상적인 슬로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퇴진, 타도의 슬로건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으며, 퇴진 및 타도의 슬로건은 끊임없이 운동하는 사람들 내부에서 민감한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정권에 대한 입장과 태도, 타도 혹은 퇴진을 외칠 수 있는 정세가 형성되었는가 여부, 이 양자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노무현 탄핵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움직일 수 있는 투쟁 과제라고 볼 수 없습니다. 광화문 나가서 외치면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정세를 무시하고 탄핵, 퇴진 투쟁을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족적인 발상입니다.

그런데도 왜 민중탄핵을 주장했는가? 의문이 드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탄핵을 기점으로 시작된 사람들의 광분, 그 이유와 성격, 의미를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주장하시듯이 사람들이 탄핵에 분노하는 것은, 광화문에 10만이 넘게 모이고 있는 것은, 노무현을 지지하고 옹립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탄핵이라는 사태를 저지른 보수 우익 세력에 대한 반발,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보수 우익 세력의 반동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러나 이 분노가 열린 우리당이나 노무현에 대한 지지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소위 '탄핵 정국'(으윽 식상한 표현이라 용서를 구합니다)을 이해해야 한다는 바램이었습니다.

즉 국민의 분노는 노무현 탄핵이 아니고, 보수에 대한 분노입니다. 이 점이 실종되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나아가 노무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망각되지 않고, 되살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탄핵을 당할 것이면 민중의 이름으로 해야 할 탄핵이지 않은가? 탄핵 반대가 아니라 국민을 도탄으로 내몬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욱 적극적으로 외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입니다.

또한 불능과 무능에 빠진 국회는 이미 대중 속에서 파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파병, FTA 등이 우리가 반대했는데도 자기들끼리 망치를 두드린 것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무효를 선언하고, 우리의 분노의 의미를 명확히 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이 주장의 핵심입니다.

제가 주장한 민중탄핵은 즉각적인 행동 전술이 아니라 현재의 사태에 대한 분석적 개념, 상징적 슬로건입니다. 물론 그렇다면 민중탄핵이 잠시 잊혀진 국민들의 분노를 담고 있는가? 다시 똑 같은 의문을 제기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이 점은 민중탄핵인가 아닌가를 넘어 과연 우리가,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점입니다.

부족한 답변입니다. 오히려 민중탄핵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겠습니다. 이 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기해 주십시오.


03/22 01:00
최용준 아... 송유나 씨. 답변을 잘 읽었습니다. 제가 유나 씨의 글을 비롯한 여러 글을 읽을 때도 대체로 그런 취지였을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또 답변을 통해서 그러하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민중 탄핵"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있고 답변 덕분에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바쁠텐데 답을 주어서 고맙습니다.

진보운동의 역량이 크지 않고 그나마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획"으로 이름 붙일 만한 무언가를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점에 비추어볼 때 Another0415는 비록 언터넷 상의 논의 수준이지만, 소중한 공간을 열어주어 필요한 논의들을 다양한 사람들이 공유하게끔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미 오마이뉴스나 서프라이즈가 그런 공간을 열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듯이 탄핵무효와 민주수호를 핵심구호로 삼은 민심의 흐름이 결과적으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지지와, 따라서 노무현 정권의 일방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채만수 소장님이 "신자유주의 개혁파시즘을 경계하자"고 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제도정치권 진출에서의 선택을 전제로 한 총선이라면.

오히려 다수의 행동을 이끌고 지지하려는 계획에 관한 한, 진보운동은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합니다. 민중탄핵이든, 국민발안과 국민소환이든, 이미 만들어진 논의구도에 성실하게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힘 잃지 말고 지금까지 해왔던 여러 일들을 꾸준하게 밀고 나가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현안만 제기되면 소위 진보운동이나 좌파운동이 무능력을 스스로 탓하는 것을 것을 보게 되는데, 대중들의 정치적 참여와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이 기회에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대통령선거, 효순·미선추모, 파병반대, 탄핵정국......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한숨 돌리면 진보운동의 정치적 발전 문제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들거나 현상유지의 논거를 제시하는 데 멈추거나 지나치게 편협하게 접근하거나...... 서너번 정도 기회를 놓쳤다면, 이제는 금방 성과를 거두기 힘들어도 참을성 있게 노력해보았으면 합니다.
03/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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