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자기 고백이라고 믿기에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나는 이론적인 문제등에 있어서는 원칙적이려고 애쓰지만, 구체적인 현실 문제로 가면 아주 타협적이거나 좋게 말해 '현실적'이 된다. 그래서 이 글은 진보진영의 시각에서 보면 아주 문제가 많은 게 될 것이다. 이런 걸 감수하면서도 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한번쯤 생각해봐 주시길 기대한다.
'다른 세상을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면서 뭔가 혼란스럽던 것이 많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대목이 있다. 보수진영뿐 아니라 노무현과 열린우리당도 함께 탄핵받아야 마땅하다는 결론 부분이다. 머리로는 이 결론을 구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한 달도 남지 않은 총선을 고려하면 이걸 진짜 구호로 내세울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라크파병,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부안 핵폐기장 사태,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을 부른 노동정책, 이 정도로도 노무현 정부는 탄핵이 마땅하다. 신자유주의와의 목숨 건 싸움 측면에서 봐도, 이 정권에는 일말의 미련도 없다.
그런데 이라크 파병, 자유무역협정, 노동정책 뒤에는 분명히 수구보수 기득권 세력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적지않은 힘을 발휘했다. 노 정부는 수구세력의 압력에 고민하는 척하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이런 이미지는 일정하게 작용했다.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지만, 정부가 신중한 검토 끝에 '국익'을 생각해 결정한 측면도 이해는 된다." 이런 반응이 분명 있다. 게다가 탄핵안의 국회 통과라는 '생방송 리얼 드라마'를 통해, 이들은 '꼴통 수구
보수세력에게 짓밟히는 힘없는 희생자'라는 이미지를 온나라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보여줬다.
또 한가지 신자유주의도 자유주의의 기본 특징을 지니기는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 특징이란 제 혼자 설 힘이 아주 약하다는 것이다. 남한이라는 이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일상적인 국면에서 그들은 보수세력 쪽으로 기울며, 이라크파병 등 중요한 정책결정은 이런 보수화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거국면이 오면 그들은 보수세력과 대립각을 설정함으로써 생존을 시도한다. 지금 국면이 전적으로 그렇다고 본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신자유주의 세력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키는 한가지 방법은 그들의 이중적인 생존기반인 보수세력의 힘을 무너뜨리는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 세력과 정면 대결을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지금의 탄핵 정국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진보진영의 현실적 구호가 그리 쉽게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내게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유의할 지점은 있지 않을까 싶다.
1. 수구보수세력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결코 늦춰서는 안 된다.
2. 집권 신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이 아닌) '국민' 또는 '시민'과의 거리를 벌일 방안으로 1)'국민', '국가', '대한민국', '시민'의 허구성을 강하게 폭로한다. 2)'국민'이 아닌 이들, '국가'를 빼앗긴 이들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이를 한마디로 풀어본다면, 피눈물 흘리는 '민중'이 아니라(요즘 유행 한가지는 '민중'을 '공화국 시민'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피눈물을 흘리는 '여성' '비정규직' '장애인' '농민' '현장 노동자' '동성애자' '이주노동자'의 발언권을 요구하자는 것이다.
여성, 비정규직, 장애인, 농민, 현장 노동자, 동성애자, 이주노동자의 발언권을.
혹시 이것이 우리의 구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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