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 이야기다. 나는 신용 불량자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신용 불량자다. 결혼한 내 여동생도 신용 불량자다. 공사판에서 전기 노가다를 뛰는 내 남동생도 신용 불량자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은 전부 성실하다. 그래도 우리는 전부 신용 불량자가 되었다.

내가 신용 불량자가 된 건 2년 전 겨울 기름땔 돈조차 없다는 어머니의 절규에 당장 약간의 돈을 빼 쓸 수 있는 카드 두 개를 만들어 주면서 였다. 이때부터 내 인생은 꼬였다. 하긴 추운 겨울에 기름조차 살 수 없는 부모님 위해 카드 몇 장 만들어 주는 게 큰돈 못 버는 내게는 큰 효도였다. 그리고 당장 먹을게 없다 해서 세 번째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난 당시에도 내 개인용 카드조차 없었다. 통장에는 돈도 없어 카드로 돈을 빼 봐야 얼마나 빼겠냐는 거였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위해 김대중 정부의 내수 진작 프로젝트에 기꺼히 제 살을 깎았다.

그리고 난 내가 한번도 써보지도 못한 카드로 인해 삶이 불량해졌다. 동생들도 나처럼 급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몇 달씩 조금씩 빼준 게 몇 백이 되고 몇 천이 되었다. 심지어 '내게 힘을 주는 나의 엘흐흐 카드'는 신용불량을 앞에 둔 상황인데도 나를 천 만원 짜리 대출 보증인으로 세우기도 했다. 우리가족 신용불량史는 이렇게 김대중정부의 철없는 경제정책과 신용자본의 겁대가리 없는 사업방식으로 만들어 졌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정말 열심히 산다. 시집간 여동생은 벌써 딸이 둘이지만 생계를 위해 조그만 공장에서 밤새 일하고 새벽에 돌아온다. 남동생은 지방에서 온몸을 다쳐가며 노가다를 뛴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우리는 집 하나 가진 것 없고 단돈 천 만원 짜리 전세방 구할 돈도 없는 게 현실이다.

난 매일 아침이면 상냥한 여성들에게서 모닝콜을 받는다. 정확히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 그녀들은 전화를 한다. 매우 상냥한 목소리로 나의 단잠을 깨운다. "고객님 엘흐흐 카드입니다." "고객님 삼흐흐 카드 어떻게 돈 좀 마련 하셨어요?" "고객님 자꾸 이런식으로 하면 건장한 남자들이 찾아갑니다."

여성들의 모닝콜 시기가 지나면 추심회사에서 제법 굵직한 목소리의 남성들이 직접 찾아오겠다든지 월급에 차압을 넣겠다든지 연락이 온다. 그래서 난 건장한 남자들이 찾아오지 못하도록 나의 거주지가 알려지지 않도록 산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건 정말이지 지겨운 노릇이다. 불행한 삶의 끝이 안 보이는 하루하루. 쥐꼬리만한 월급 받아봐야 빚 갚을 일은 한도 없고, 살아가는데 비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의 불만은 늘어 만가고 가끔은 카드 빚에 자살하는 사람들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하지만 이 엄청난 불만은 점점 처절한 절망의 끝으로만 간다.

가끔은 이 절망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고 분노를 폭발하고 싶지만 나는 분노하지 않는다. 도대체 나의 절망과 분노를 누가 관리하는 있단 말인가? 왜 나는 분노하지 못하는가? 의외로 나의 불만은 잘 관리되고 있다.

나의 분노는 일단 로또가 관리한다. 난 2주에 한번 정도 로또 2천 원어치를 산다. 나 같은 불량인생에게 로또는 정말 유일한 희망일 께다. 난 당연히 너무 성실해서 한번에 2천 원 어치만 산다. 그리고 2주 동안 행복한 꿈을 꾼다.

그리고 가끔 정부는 불만이 터질 만 하면 카드빚 갚는 기한을 연장해 준다. 혹은 개인파산 신청이라는 것도 있다. 당장 불만은 가라앉는다. 큰 기대는 없지만 요게 상당히 희망적인 마지막 보루로 느껴지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 견디게 하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난 언제든지 이 더러운 세상을 버릴 수도 있고 건장한 남자들이 찾아와도 두려울 것도 없다. 이런 거였다. 내 불만이 분노로 나오지 않고 조직된 힘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별거 아닌 것들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난 감히 주장한다. 전국의 신용 불량자들이여 절대 돈을 갚지 말자. 어떤 이유로 돈을 썼건 이건 명백하게 신용자본이 사업을 잘못한 것이다. 그들의 사업실패에 우리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단지 몇몇 카드 회사들이 사업에 실패한 것일 뿐이다.

정부는 그리고 모든 신용불량자들의 빚을 전부 탕감해라. 우리는 국가 경제가 살수 있도록 내수 진작을 위해 신용을 버렸기 때문이다.

더는 우리 불만을 관리할 생각 따윈 버려라. 우리의 요구를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길거리에서 죽기보다는 분노를 터뜨려 거리를 불 싸지를 지도 모른다.


->어느 신용불량자의 절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