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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부안에서 시작한 삼보일배가 벌써 첫돌이 되었다. 장장 8개월 간 핵폐기장 백지화 투쟁이 있었던 터라 핵폐기장 투쟁으로만 인식되었던 부안도 탄핵과 반핵의 소용돌이가 이는 듯 했다. 하지만 삼보일배의 첫돌을 맞아 이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지난 해 사람들이 봄소식을 나른하게 접할 때쯤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요구하면서 몇몇 성직자들은 '온 세상의 생명평화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 그 거룩한 여정을 시작했다. 부안 해창 갯벌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무려 305km, 장장 65일 동안이었다. 삼보 일배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곱씹게 했고, 새만금 논쟁을 떠나 생명과 평화에 대해 스스로를 성찰하게 했다. 삼보일배 과정에서 가는 곳마다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
어찌나 힘든 고난의 행군이었던가! 국민의 여론도 세계 최대 갯벌중 하나인 새만금을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몇 명이 시작한 삼보일배는 급기야 서울에 이르러서는 삼보일배의 행렬을 만들어 내었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고,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고 그러다가 쓰러지는 동료들을 안고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마을에 한번 도착할 때마다 눈물과 웃음이 뒤범벅이 된 삼보일배의 절박함! 그것은 우리 운동사에서 기록될만한 충격 그 자체였다.
당시의 많은 교훈을 안고서, 우리 노동자와 민중은 지난 일년 동안 부안 주민항쟁, 노동열사투쟁, 파병·FTA 비준 저지 투쟁 등 '절박한' 투쟁을 계속해야 했다. 이 모두가 '제국주의 세계화'와 '동북아중심 구상'이라는 현 정권의 구조적 문제에서 촉발된 투쟁이었으며, 절박한 민중 생존권 그 자체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성과와 한계가 공존하였지만 민중이 단결할 수 있는 정치는 '투쟁' 밖에 없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까지 타협 없는 투쟁 말이다.
3월12일 의회 구데타로 인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일거에 민주주의는 무너졌다!" 500여 단체는 비장한 각오로 조직을 결성하고 촛불행사를 진행하였다. 노무현도 잘못이지만 수구세력의 반민주 폭거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대세인 듯 하였다. 그러나 이 거창한 조직과 민주주의 운동은 보름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관심 밖에서 시작하였던 새만금 갯벌 살리기 삼보일배가 60여일 지속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4.15총선에서 심판하자며, 우리의 민주주의의 수준을 의회 내 표결 수준으로 한정시켜버린 결론은 무척 초라해 보인다.
헌정파괴에 따른 민주수호가 그토록 절박해서 촛불을 들었으면서, 정부의 촛불시위 금지 방침이라는 반민주적 작태에 대해 금새 꼬리를 내리고 만 것은 참으로 굴욕적이다. 촛불시위 금지는 국민에 대한 기본권 침해이다. 오히려 더욱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행위가 아닌가?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과 지배세력의 진검승부인 듯 비분강개하던 500여 개 시민단체들의 분노는 보름만에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대중적 인기에 영합해 이벤트 몇 번하고 해산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수의 절박함이었던가? 결국 촛불시위는 군중의 축제였는지는 몰라도 민주주의 사수를 위한 절박한 투쟁은 아니었다.
최옥란 열사,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대한 박일수 동지의 처절한 외침, 폭설 피해로 자살한 양돈 농민들, 이들의 투쟁이 진정 절박한 투쟁이다. 하지만 세상은 진정 절박한 사람들에게는 인색하다. '절박함'에 인색한 것은 그 절박함 속에 항상 자본과 권력의 첨예한 대립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눈앞의 성과가 만족할 수 없는 최후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극단까지 가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삼보일배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중단을 호소하는 삼보일배의 '절박함'은 개발이라는 권력의 논리를 잠재우며 진행되었다. 가는 곳마다 커다란 이벤트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아래에서부터 실천하였다. 자기반성을 거듭하며 큰 물줄기를 만들어 내었다. 소수라고 해도 기죽지 말자고 자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4.15 정치판과 운동내부의 인기 영합주의가 생존의 '절박함'앞에 무릎꿇기를 바랄 뿐이다. "생명이 죽어간다는 절박함을 함께 하고 삼보일배의 눈물처럼 모든 것을 다해 싸운다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노신부의 말은 보편적이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다시 한번 각인해야 하는 무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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