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노숙농성 4일차, 가장 우리다운 투쟁을 할 뿐이다.
- 오직 현장돌파, 비타협주의는 선택사항이 될 수 없어
남화선 (참세상방송국) 읽음: 4162
작성일: 2004년03월31일 21시10분15초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은 26일 벌어진 무차별 연행에 항의하며 종로경찰서 항의 방문을 진행했다.

"도로점거를 했습니까? 그렇다고 통행방해를 했습니까? 야간집회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추모문화제를 한 것이지 않습니까? 1∼2 시간이면 끝날텐데, 도로 위에서 하는 10만이 넘는 촛불문화제는 보호를 하면서.. 도대체 어떤 형평이나 균형도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어요."

3월 29일 2시 종로경찰서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종로경찰서를 항의방문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이하 공동기획단)의 말이다. 이들은 최옥란열사 2주기 추모문화제가 경찰의 무력으로 무산되고 참가자 82명이 연행되었다 풀려난 다음날인 이날 종로경찰서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문틈으로 보인 책임 지휘자인 정보과장은 어느새 자리를 떴으며 서장을 대신해 나온 경무과장과 수사과장은 자신들은 책임자인 서장이 아니라 어떤 답변도 할 수 없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내용을 서한으로 제출하라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공동기획단의 계속되는 추궁에 뒤늦게 정보과장과 연락을 취한 뒤 나온 이야기는 아직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으니 4월 2일에 정보과장과 면담을 하자는 것이었다.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때는 아무 입장도 무엇도 없이 100여개의 장애인단체가 함께 준비한 추모문화제를 폭력적으로 무산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연행해갔단 말인가? 경찰측은 시종 변명조차 하지 못했다. 변명도 늘어놓을 수 없는 일을, 그것도 경찰이 도심의 노상 대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변명조차 못하는 정보과장 만나는 길, 다시 범법밖에 없다

참여정부의 집시법에 따르면 문화제 행사라도 발언 등이 포함되면 집회로 규정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감추고 숨길 것을 만드는 사회. 그러니 남은 길은 범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길인 듯 하다.

"정보과장, 경찰서장 못나온다고요? 지하철 타러 탑시다. 휠체어 장애인 한 열명만 한꺼번에 준법적으로 지하철 타러 갑시다. 지하철 좀 늦어지지요? 그럼 우리 잡으러 정보과장 바로 튀어 나올겁니다."

수사과장의 장애인 보호와 장애인인권 운운하는 발언 뒤에 바로 나온 박경석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보호? 통제의 현대사회적 명명일 뿐이다. 수많은 금지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범법자들이 경찰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이동했다. 오늘도 황사는 왔다. 8차선 도로로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길을 걷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자동차는 창문을 닫고 달리면 나른한 봄날이면 더욱 짙어지는 자욱한 매연과 미세먼지를 외면할 수 있다. 그러나 휠체어가 발인 장애인들은 이동하기 위해 맨몸으로 도로 위로 내려섰다. 턱이 높은 인도는 장애인들에게 인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존재 그 자체가 범법이다.

"총선이 4월 15일인데 4월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노숙투쟁 하겠다니 여론을 모으지 못할것이 뻔한데 미쳤다는 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수가 없었습니다. 여태까지의 우리의 행동이 그런 적도 없었구요. 이것 저것 쟀다면 노숙투쟁 시작할 수 있었겠습니까?"

4월 20일 장애차별철폐날까지 광화문 노숙투쟁에 돌입한 공동기획단의 집행부이자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사무국장인 박현 씨의 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기에 이들은 어떤 단위도 생각할 수 없는 투쟁방법을 택한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그저 온 몸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

선거국면이 두렵지 않은 이유

"수많은 장애인들이 이동을 하기 위해 죽었고, 그래서 지난 4년 끈질기게 장애인이
▲26일 세정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차별철폐투쟁 선포식[자료사진]
동권보장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차원의 대책은 마련된 적 없었어요. " 서울시 한복판에서의 노숙 그리고 눈과 귀를 온통 잡아먹는 선거국면이 두렵지 않은 이유다.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와야 하는데 더 이상 무엇을 재겠는가.

지난 해 장애인이동권에 관한 법률이 상정되려 한 적이 있으나 당초 예상했던 법률보다 현저히 후퇴한 법률안으로 되돌아 왔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출범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를 비롯한 다섯가지 차별금지법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강제력을 지닌 시정명령, 징벌적손해배상, 독립적인 장애인권위원회의 설치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장애인의 노동권이 장애인고용법으로 흡수되었지만 경제특구에는 해당되지 않는 법입니다. 고용장려금은 오히려 깎였고요. 경제를 살리겠다고요? 그런데 그 경제는 항상 왜 나의 빈곤을 더 심화시키기만 하는지... 우리는 피부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거리로 나올 겁니다."

한 두가지의 법으로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숙투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노숙을 위한 기물은 이미 다 빼앗겨 버렸다. 노숙농성 4일 차. 이들은 지난 3일간 세종문화회관 근처 어딘가에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새우잠을 자왔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치긴 했지만, 칠 꺼라는 건 이미 다 예상했지요."

이들이 말하는 비타협주의가 이것인가. 오직 현장 돌파. 가난한 형편에 피눈물과 같았을 기물들을 칠 줄 알았지만 다 가지고 나왔다는 것이다. 2001년 뙤약볕 아래 한달간 서울역 천막농성을 일군 저력답다. 그러나 박현 국장은 개인적으로 서울역 농성 이후 석달 간 방황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천대가 그렇게 깊은 것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한 달 내내 맞고 터지고 탄압을 받았지만 정부 관료는 단 한명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장애인계 100여 단체가 장애인의 날 장애철폐의 날로 받아들여

그러나 박현 국장은 1달을 이어가야 하는 이번 투쟁의 시작이 그리 나쁘지만은
▲장애인이동권 연대 박현 사무국장
않다고 전한다. 장애인문제관련 기자회견이나 행사 등이 계획되면 30분, 1시간씩 일정이 늦어질 때가 태반이다. 이동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으니 약속시간을 제대로 점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달을 이어가야 하는 노숙투쟁인데 아직까지 참가단위 중 아무도 일정을 늦추지 않고 있고 참가단체 또한 전국의 100여 단체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 전국의 단체들이 26일 행사의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해 속속 성명을 밝히며 연대의지를 밝혀오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계 안에서 4월 20일은 더 이상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차별철폐의 날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현 국장과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자본주의 사회는 효율이 최고다. 10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9의 노동도, 1의 노동도 모두 0의 노동이 되는 것이 지금 체제다. 이런 논리 안에서 생산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일. 그는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는 대뜸 운동은 어느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운동은 다른 것이 아니라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2001년 천막농성 후 긴 방황을 접고 시작한 것이 운동의 색채가 약한 중증장애인 단체 활동이었다. 사람들을 조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30년 방구석에 쳐박혀 지내온 세월 못지 않게 집밖을 벗어난다해도 그동안 전문가라 지칭되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관리되어온 장애인의 삶이 뼈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이제 막 자신들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경석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 때 집회현장에서조차 차별받는 장애인의 분노와 장애인의 설움을 투쟁의 힘으로 옮겨 붓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들은 기물을 모두 빼앗긴 상황에서도 주섬주섬 자리를 잡고 세종문화회관의 거대한 석조건물 앞에서 가로세로 2미터가 될까말까한 조그만 화면을 거리 한복판에 걸었다. 에바다 영화상영으로 4일차 노숙투쟁의 막을 올리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가장 화려한 곳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외소하고 뒤틀리고 잘려진 몸뚱어리로 그 거대함의 시선을 고스란히 다 받으며 선선히 자리를 잡는다.

집회현장에서 접하는 이들의 언어는 처절함을 닮아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그 처절함은 당당함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10의 세계에서 9와 1을 당당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토록 처절할 수 있을까. 10의 세계에서 10의 언어를 숭배하지 않겠다는 일. 장애인과 자본의 논리는 영원히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삶으로 직감하고 있다. 거기에서 나온 처절함은 가식과 포즈를 취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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