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탄핵국면과 더불어 선거의 계절이다. 노점상 이외의 문제에 문외한인 나에게 위를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는 언론의 보도를 접하고도 그런가보다 했다. 이 문제로 새벽 비상회의에 참석하라고 핸드폰이 연신 울려도 자느라 바빴다.

우선 나는 '전국노점상연합'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하나는 '2004 국제노점상 서울대회'를 준비하느라 눈 코 뜰 새가 없었고, 이런 와중에 전노련(전국노점상연합) 공동의장 한 분이 구속되는 사태가 겹쳐 더욱 그랬다. 주변에서 탄핵정국 사태에 어떻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호들갑을 떨거나 뭔가를 조직하자고 압력이 들어와도 그런가보다 했다.

신문을 훑어 봐도 우리 노점상 기사가 잘 나왔나 관심이 있었지 탄핵으로 몇 십만이 광화문에 모였다느니, 한나라당 민주당이 어쨌다니 해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나란 놈은 어떻게 된 건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하여 깊이 있는 고민이 되지 않았으며 생각이 꽂히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좌파라는 코드로 십수년을 활동해오면서 부르조아 정치판에 대한 관심 없음이 그렇게 외화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의 이런 변명이 내가 일하고 있는 이 도시빈민운동 판 안에서도 결단을 내려야 하는 지점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최근 들어 주변에서 원고를 요청 받게 되니 더욱 그렇다.

나는 우선 이 시점에 한나라당이 어떻다는 둥 주절거리고 싶지 않다. 논할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정권 들어 최소한 도시빈민의 삶이 어땠는지 언급을 하고자 한다.

일단 자고 일어나 펼치는 신문지상에는 생계형 자살자에 대한 기사와 엽기적인 사건들이 줄을 잇는다. 단적으로 우리네 인생살이가 팍팍 하다보니 사람들은 삶의 시름을 달래고자 주기 당차게 술을 마셔댄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99년도에는 한번에 소주 1병 이상 마시는 음주자가 10명 중 3명 꼴로 31.3%이었다가 지난 2003년에는 4명 꼴로 40.5%로 증가했다고 한다. 맺힌 한과 삶의 고통을 술로 풀어보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빈곤인구가 800만에 이른다는 주장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 주변에는 400만의 신용불량자가 들끓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예기치 못한 일로 약간의 돈을 꿀라치면 유독 내 주변에는 무슨 놈의 신용불량자가 그리도 많은지…… 더 이상 빈곤의 문제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이모든 빈곤의 일차적인 문제는 급속한 세계화의 진전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노동시장의 유연화다. 그 정점에 개혁이라는 기치를 들고 있는 노무현정권이 있다. 그래서 소위 수구반동 대 개혁이라는 구도는 기본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정규적인 일자리를 축소시키고, 비정규적인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으며, 그 숫자도 50%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들은 불안정 고용상태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노점상이나 철거민들의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궁극적으로 위와 같은 문제에서 파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탄핵반대라는 슬로건이 갖고 있는 한계는 그렇다 치고 다음은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국민발의, 국민소환' 문제를 좀 보자. 나는 사실 이게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주변에 동지들에게 물어보니 '국민소환권'은 소위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그나마 이러한 권리가 보장되는 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는 스위스에서 실시되고 있다는 것 정도이다.

어쨌든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 지지로 귀결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내세운 주장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역시도 새로울 것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의회주의에 국한되어 있거나 자본주의 제도적인 틀에서 벗어 날 수 없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의 생각은 그렇다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국민발의와 국민소환'과 같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하여 좀더 자료를 찾아보고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거나 잘못된 제도와 법률이 통과되더라도 대중들 스스로 이를 거부할 수 없음은 물론, 소위 우리들의 손으로 뽑은 저들이 당선이 된 후 통제되지 못한 현실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구인가를 주변의 노점상들과 이야기 하고자 한다.

'탄핵반대' 여론도 이번 주를 고비로 차차 수그러들 것 같다. 일단은 집시법과 선거법에 위반이 될 뿐더러, 무엇보다도 노무현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은 광화문에 밝혀진 촛불을 총선에서 심판하자는 구호로 비벼 끌 것이 뻔하며, 소위 불특정 다수에 의해 올려진 거품은 걷히기 시작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과 같이 수그러지는 촛불에 기름을 다시 부어야 한다. 나아가 총선에만 국한되는 싸움을 넘어서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수구세력과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벌려놓은 잔칫상에 기웃거리는 꼴인 것이다.

지금부터 제대로 된 싸움을 전개야 한다. 탄핵 반대냐 아니냐의 문제는 대중투쟁을 촉발시킨 하나의 계기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오늘 광화문에서 폭력경찰의 방해로 충돌이 벌어진 최옥란열사 추모제 및 장애인차별철폐 촉구 촛불문화제와 같은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같은 날 노점상들의 시흥지역 용역반 해체, 빈민생존권 쟁취 투쟁과 최근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 철폐투쟁과 같은 것 등등…… 각자가 처해진 조건 속에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이슈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을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 전선을 복구하고 궁극적인 해방으로 나가는 싸움을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벌여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이 우리사회의 구심과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위와 비슷한 국면이 재현된다 하더라도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려 좌충우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과물이 노동자계급 자신의 것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모든 투쟁은 더디지만 돌을 갈아 초석을 마련한다는 바램으로 운동에 복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