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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집회의 주제가가 된 '너흰 아니야'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노동자 농민은 죽음으로 외치고
서민은 카드 빚 때문에 목을 매는
이 개같은 세상 거꾸로 된 이 나라
누군가는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너흰 아니야 (왈왈왈) 너흰 아니야
너흰 나라를 걱정할 자격 없어..."
이 노래는 촛불집회 내내 시도 때도 없이 불린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봐도 '너흰 아니야'에서 도대체 '너희'가 누구길래 이런 가사를 붙였나 싶다. 노동법 개악, 비정규직 확산, 손배가압류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너희'가 누구일까?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농가부채 증가로 농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너희'가 누구일까? 이 노래는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꼭 집어 답하지 않는다. 다만, '너희 둘은 손잡고 나가 있어'라고 마무리 할뿐이다. 결국 너희 둘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것인데...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대로, 전투병 파병이 국익일지도 몰라'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악' 소리마저 튀어나온다.
3월 20일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전세계 50여개국에서 수천만의 사람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했다. 한국에서 반전시위를 한다는 것은 이라크 민중을 학살하는 명분 없는 전쟁에 동원되지 않겠다는 전세계 민중의 뜻과 의지를 드높이는 일이기도 했다. 한국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가장 많은 군대를 파병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날은 무척 황당한 날이 되어 버렸다.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고 한국군 파병에 반대한다던 사람들이 파병의 주역인 노무현 대통령을 살리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집회장소 문제며, 행진코스 문제 때문에 말이 많았다. 문제가 된 것은 두 집회의 기조가 명백히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라크에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에 대해 규탄하는 집회이고, 다른 하나는 탄핵소추 된 노무현을 구하기 위한 집회이다. 그래서 도심에서 집회를 할 것인지, 시 외곽에서 할 것인지, 행진을 광화문 쪽으로 할 것인지, 각 단체별로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논란 끝에 대학로에서 집회를 하고 광화문으로 행진하게 되었지만 그 어이없음이란...
한번 생각해보자. 영국에서 보수당이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선거법 위반으로 탄핵안을 발의하여 노동당 지지자들이 '민주수호'를 외치면서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고 해 보자. 그런데 런던에서 수 십 만명의 반전시위대들이 반전집회가 끝나고 이 촛불시위에 합류했다고 한다면 이 골 때리는 현상을 뭐라고 얘기할 것인가?
행진 내내 뒤통수에서 한총련 학생들은 '저희는 탄핵무효-민주수호를 위해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가는 학생들입니다'고 마이크로 시종일관 떠들었다. 아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고 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한 노무현 정권을 규탄하는 행진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리고 '다함께'와 몇몇 단체는 행진을 마치자마자 파병반대 피켓을 전부 수거하더니만 탄핵무효로 바꾸어 달았다. 운동진영이 그렇게 줏대도 자존심도 없어서 무얼 어쩌잔 말인가.
지난 2003년 10월 20일자 한겨레 신문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파병에 관한 의견을 수렴한 뒤 이튿날 아침 전격적으로 파병 방침을 발표하자,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 진영은 강한 불만과 배신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이처럼 파병 결정 과정에서 노무현은 줄 곧 배신 때리고 기만하면서 단체들을 갖고 놀았다. 그러다가 뒤통수치듯이 파병을 결정하고 밀어붙였다. 그래서 '이제 노무현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고 한 것도 시민단체들이었고, 파병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도 시민단체였다. 그런데 그런 시민단체들이 헌법을 위반했다는 대통령을 나서서 구해 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사실, 파병문제 만큼이나 대통령이 탄핵을 받아야 할 사안은 없다. 그런데도 파병문제로는 노무현을 반대하고, 탄핵문제로는 노무현을 살려야 한다는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면 한국 운동진영은 전세계에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찬탄-반탄 논란 속에서 파병을 막지 못하고 휘둘린다면 스페인 참사와 같은 파병에 따른 책임이 운동진영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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