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혁명과 반정
홍석만 (활동가) 읽음: 4725
작성일: 2004년03월14일 17시19분46초
조선건국의 핵심참모 정도전이 뜨고 있다. 이 정도전이 누군가 하면 고려 말 부패한 정권을 타도하고 이성계를 도와 역성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이다. 도올 김용옥은 TV에 나와서 정도전의 부패정치 척결의 철학을 역설하고 있고, 정도전 관련 서적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전 이야기는 최근의 것이 아니다. 90년대 중반 이른바 운동권 386들이 제도정치권에 진출하면서 스스로의 정당성을 정도전에게서 찾은 바 있다. 지역정치와 부패정치로 찌든 기존 정치권을 개혁하기 위해 정도전과 같이 40대 이성계를 도와 정치개혁을 성공시겠다고 한 것이다. ‘386=정도전’론의 대표적인 주역이 바로 대선 정치자금 수수로 구속된 노무현의 참모 이광재, 안희정 등이다.
이들은 노무현을 이성계라고 생각했다. 타협하지 않고 지역주의에 도전했던 노무현에게 희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결국 시간이 흘러 한국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노무현이 대통령을 먹었으니 이들의 전략은 성공한 셈이다. 게다가 누가 보아도 노무현의 당선이 불가능해 보였던 상황에서 정몽준과의 극적인 후보단일화 그리고 투표전날 합의 파기까지. 이 상황은 노사모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노무현은 당선되었으니 이 얼마나 극적이었던가!
그러나 이것은 역성혁명의 과정이 아니라 단지 반정일 뿐이다. 혁명과 반정은 어떻게 다른가? 조선시대에도 인조반정, 중종반정 등 적자가 아닌 삼촌이나 사촌, 형제들끼리 아귀다툼을 하다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를 반정이라 불렀다. 하지만 개혁주의자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노무현은 왕족이 아니라 서민출신이라고. 그래 맞다. 노무현은 상고 나와서 고시패스하고 법관 하다가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런데 그런 과거 경력이 있다고 해서 노무현의 정치적 기반이 사라지는 것인가? 노무현은 김대중의 뒤를 이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으며,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방향을 그대로 계승했다. 결국 잘 쳐줘 봐야 노무현은 강화도 촌에서 비루하게 살다가 철종 임금이 되었던 강화도령일 뿐이다.
또한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신자유주의 왕족관계에 있다. 언제 국회와 청와대가 이라크 파병, FTA(자유무역협정), 집시법개악 문제 등에서 다른 의견으로 대립한 것이 있었던가? 게다가 합당과 분당, 젊은 피 수혈 등 서로 혼인과 이혼, 입양 등 복잡한 관계로 얽히면서 이제는 정치적인 뿌리조차 불분명하다. 다만 이들은 재산 상속을 놓고 천륜까지 저버리는 아주 사이 나쁜 친인척 사이일 뿐이다.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이 좋게 연합하다가 선거구 조정, 대선자금 수사 등 서로의 입지를 좁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목숨을 내놓고 대립하는 사이인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공세는 왕권찬탈을 위한 또 다른 반정 시도일 뿐이다. 500년 조선왕조의 역사만 보더라도 반정과 반정이 불러일으킨 혼란, 왕자의 난과 왕위찬탈 소용돌이에서 결국 죽어나갔던 것은 우리 민중이었다. 지금도 탄핵공방, 집권노름 속에서 죽어 가고 있는 것은 노동자 민중이다.
쌀밥의 다른 표현인 ‘이밥’은 ‘이성계가 내려준 밥’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모든 민중이 역성혁명과 더불어 쌀밥 즉 이밥을 먹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노무현은 노동자 민중에게 ‘이밥’은커녕 비정규직의 확산, 카드부채의 증가, 농촌경제의 파탄 등 노동자, 농민, 서민, 빈민의 삶의 기반을 박탈해 왔고 죽음으로 내 몰고 있다. 백보 양보해서 노무현과 386의 집권이 이성계와 정도전의 개혁정치를 위한 역성혁명과 같다하더라도 결국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이라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이다. 개혁정치의 결과, 사대부의 권리와 정치적 지위는 향상되었는지 몰라도 조선시대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사회 전반의 계급적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다.
정말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은 반정이 아니라 혁명이다. 노무현과 386, 그들이 이야기하는 개혁, 그들이 이야기하는 혁명은 반정이며, 새로운 혹정(酷政)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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