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직접 민주주의, 그 미명을 경계하며
赫
42 2136  /  1447
2004년 03월 17일 15시 24분 23초
- 54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인 대통령 탄핵안 통과 이 후의 분명한 대별적 상황을 보여주는
어느 신문 사진이 인상적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관객 천 만 돌파 이벤트를 참여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강남 어느 멀티플렉스 앞의 인산인해, 그리고 그 같은 날 밤에는
광화문 일대에 수 만 명이 모여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의 복원을 외치던 시민군의
행렬이 보인다. 미디어를 비롯한 여러 인터넷 정치사회 토론공간들은 실시간으로 각종
의견들이 담긴 글들이 올라오면서 그 열기를 더해가지만, 나의 집 주변의 재래시장과
상점들의 분위기는 일상과 그대로이다. 정치적 소요에 준한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
융, 수출, 증시 부분에서는 급속히 남한 부르주아지 시스템은 안정화를 이뤄내고 있다.
노무현보다는 든든한 전문적 행정 관료 고 건, 이헌재를 위시한 이들의 대응 수습의 노
회함에 대중은 든든해한다. 이제 남은 건 한국적 특수성에 기반한 이데올로기의 왜곡에
의해 형성된 이 이념 투쟁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교정시키는가를 두고 사활건 한 판 승부
를 걸고 있는 보수 부르주아지 분파들과 그들에의 맹종적 시민 계급의 연극쇼를 보는 일
인 듯 싶다.



탄핵 찬성이면 노무현의 급진성을 우려하는 보수 우익적 시민군이고, 탄핵 반대이면 노
무현 체제 하에서 진행된 부르주아지 일반 민주주의의 숙성을 기대하는 시민군이라는 단순
편리한 구도 속에서 진보 진영의 대응책은 아직 명확한 가닥을 잡지 못 하고 있다. 여기서 또
특유의 좌파적 분열성에 근거한 각 이견들이 제출되면서 내부 전선의 강고함은 커녕 정치적
분파들의 논쟁 형식으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국회에 대한 국민소환파면권 도입, 혹
은 총선 보이콧, 또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조건적 연대 투쟁 속에서의 일반 민주주의 외연 확
대를 위한 대중투쟁 등등 어지러운 대안 프로젝트들이 공허히 나부낀다.



그러나 그러한 난리굿판에도 관계없이 이번 17대 총선은 분명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며 열린
우리당이 얼마만큼의 의석 수를 확보할지는 장담 못 하지만 이들 세력이 상당한 승리를 거머
쥐리라는 예측은 어렵잖게 할 수 있다. 탄핵 가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이 총선 전
에 나오건 후에 나오건 어차피 판은 그렇게 굴러갈 것이며, 이미 보수 우익 부르주아지들에 의
해 '완전히' 장막이 쳐진 '노동자 민중의 정치'는 민주노동당의 몇 석의 원내 진출로 대략 정리
될 것이다. 이 탄핵 정국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사망을 목격한 시민군의 투쟁과 일반 대중의 환
멸이 수구 지역주의 야당 세력의 종말을 가져오리라는데서 그나마 위안은 가질 수 있겠다.



나는 탄핵 정국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겠다.
다만 의문이 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번 탄핵 정국을 보며 남한 지배 부르주아지 계급 분파의 마지막 발악을 목격하며
의회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집행되는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발견했다.
그래서 이제 국민소환권 도입과 같은 경미한 수준에서부터의 직접 민중정치,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난리굿판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자신의 생업에 복무할 따름이며,
속히 국가 통치 체제의 안정화를 바란다. 그 안정화를 바라는 이들이 광화문에 모이고 있으며
진보라는 레테르 하에서 발언한다.


이 어마어마한 현대 국가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이제 영구폐기된다.
대중의 오랜 습속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나 이것을 어떻게 깰 것인가.
고작 스위스처럼 국민소환제 도입하면 장땡인가?
국회 전격해산, 그 다음 대안은? 대중은 자신들의 생업을 포기하고 정치의 주체로 나서기보단
차라리 무능한 국회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야유를 택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직접 민주주의, 의회 민주주의의 대립 속에서
나는 결국 레닌의 당파성에 근거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의회를 택한다.
대의 민주주의, 민주집중제는 유효할 것이다.
노동자가 세계의 주체가 된 사회에서 여전히 삼권분립의 시스템과 의회라는 대의 기구는
존재해야 할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사회에서, 그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대중이 직접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다고?
난 아니라고 말한다. 깜으로 내기를 해 본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수준의 사회역사적 인식력을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그리고 정치적 개입의 부담이 줄어든 공산 사회에서라도
기타만 치고 살고 싶은 이, 그림만 그리고 살고픈 이는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다.


인류 역사는 앞으로 결코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으리라.
착각을 깨자. 탄핵 정국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부르주아지 당파성에 물든 의회를 해체하자는
것이지 무정부주의적인 국가 시스템에 대한 해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쓰기 목록 추천 수정 답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