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총선평가 에둘러 가기(1)
Meth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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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4월 23일 13시 57분 2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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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국면을 포함하여 총선전술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평가를 하는 것은 실천에 대한 냉정한 검토를 통해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교훈을 얻을 것은 배워서 이후 투쟁에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주체(내부주체든 외부주체든)간에 있었던 이론적 차이를 실천을 통해 극복하도록 하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평가의 과정과 그 논쟁의 과정은 대개가 자신이 주장했던 전술의 올바름을 강변하고 상대방 주장의 잘못을 반복적으로 지적함으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제 정당·정파·개인의 이해관계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각자가 근거하는 사상·이론적 차이, 정치적 경험·능력의 차이 등이 주요하게 작용한다.(에둘러 가자는 것도 이 이유에서이다.)

이 글은 일단은 이해관계를 사상한다. 또한 무엇인가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거나 획기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것들을 토대로 무엇을 제안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단지 레닌의 글을 주로 인용하는 것으로서 좌파진영에 하나의 문제제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그 유일한 목적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좌익공론은 절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나의 노력은 논쟁이 서로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는 요즘은 별 인기가 없는 것을 넘어 외면당하고 무시당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소위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비판과 비난이 있다.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이 '악의 근원(?)' 스탈린주의에서 그 왜곡과 잘못됨의 원인을 찾고 있으며 때로는 레닌주의가 스탈린주의의 뿌리 혹은 씨앗으로 주장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레닌의 글을 텍스트로 삼는 것 자체를 문제제기 할 수 있다. 하지만 레닌의 이론이 그 현실성을 아직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판단과 여기서 레닌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그의 권위를 빌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특히 이번 총선을 통해 "노동자 농민 빈민 중소상공인의 정당이며, 여성 청년 학생 진보적 지식인의 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국회등원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데 지금 인용하고자 하는 글은 이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포함한다는 의미에서 유의미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요약을 잘못해 인용이 반복되고 늘어져 읽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전적으로 무능한 나의 탓이다.(레닌의 글은 " "에 인용의 인용문은 [ ]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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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요하네스 베커, 요제프 디츠겐, 프리드리히 엥겔스, 칼 맑스 등이 프리드리히 조르게 등에게 보낸 편지』 러시아어 번역판에 부치는 서문」(레닌, 『레닌저작집』4-2, 전진, pp.423-439)은 1907년 4월에 쓰여진 글이다. 레닌은 맑스와 엥겔스가 "영국, 아메리카 및 독일 노동계급운동의 급박한 문제들을 가장 빈번하게 다룬" 이 편지들에서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에게 특히 흥미로운" "전투적 프롤레타리아트가, 거의 30여년(1867-95년)에 걸친 맑스와 엥겔스의 활동들의 개인적인 측면들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도출해야 하는 교훈들"을 배우기를 주장한다. 그렇다면 레닌이 도출한 교훈은 무엇인가?

"맑스와 엥겔스가 영국, 아메리카 및 독일의 노동계급운동에 관해 말한 것을 비교하는 것은 대단히 교훈적이다. 그런 비교는 우리가 한편으로는 독일,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과 아메리카 자본주의 발전의 상이한 단계들과 그 나라들의 정치 생활에 대한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부르조아지의 지배의 상이한 형태들을 대표한다는 것을 기억할 때, 더욱 더 큰 중요성을 획득한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기에서 유물론적 변증법의 모범, 상이한 정치적·경제적 조건들의 독특한 특징들에 적용된 문제의 다양한 사항들, 다양한 측면들을 전면에 내세워 강조하는 능력을 보게 된다. 노동자당의 실천적 정책과 전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기에서 『공산당 선언』의 창조자들이 상이한 나라들에서 민족적 노동계급운동의 상이한 단계들에 따라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들을 규정했던 방식의 모범을 보게된다."(같은 글, p.425)

러시아에서 이 편지들을 먼저 소개하고 "이것을 당면한 사회민주주의 전술의 [긴급한] 문제들과 결합"(같은 글, p.424)하려고 한 것은 플레하노프와 멘셰비키였다는 사실이나, 철저한 맑스주의자였던 레닌의 맑스와 엥겔스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을 감안하더라도 레닌이 이 편지들에 대해 이토록 찬사를 하는 것에서 이 편지들의 중요성은 증명된다.

3

"한편으로는 독일,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과 아메리카"에 대해 "모범"으로 찬양되는 맑스와 엥겔스의 주장은 무엇인가? 먼저 영국과 아메리카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자. 레닌은 이렇게 썼다.

"맑스와 엥겔스가 영국과 아메리카 사회주의에서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운동으로부터 그것의 고립이다. 영국 사회주의 연합과 아메리카 사회주의자들에 관한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비평들의 요지는 그들이 맑스주의를 도그마로, [완고한 정통]으로 환원시켜 버렸고, 또 그들이 맑스주의를 [행동의 지침이 아니라 신조]로 간주하며, 이론적으로는 절망적이지만 그들과 나란히 행군하고 있는 살아 있는 강력한 대중적 노동계급운동에 적용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1864년부터 1887년까지 우리가 단지 우리의 강령을 공개적으로 채택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것을 주장했다면, 오늘 우리가 어디에 있어야 하겠는가?]라고 엥겔스는 1887년 1월 27일 자신의 편지에서 외쳤다. 그리고 그에 앞선 편지(1886년 12월 28일)에서, 그는 아메리카 노동계급에 대한 헨리 조지의 사상의 영향력을 언급하면서 아래와 같이 썼다:

[다음 11월에 진실한 노동자당에 대한 100만 또는 200만명의 노동자들의 표가 원리적으로 완벽한 강령에 대한 10만표보다 현재 무한히 더 가치가 있다.]
…
그 인용문들을 취한 편지들이 언급하는 시기는 아메리카 노동자들이 선거에서 헨리 조지에게 표를 던졌던 때이다. 비슈네베츠키 부인-엥겔스 저작의 번역가인 한 러시아인과 결혼한-은 엥겔스의 답장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에게 헨리 조지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엥겔스는 그렇게 하기에는 시기가 아직 되지 않았으며,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순수한 강령을 토대로 하지 않더라도 노동자당이 스스로 조직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썼다.(1886년 12월 28일) 나중에, 노동자들은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들 자신의 오류에서 배우게 되겠지만], 그러나 [노동자당의 전국적인 공고화-어떤 강령을 토대로 하든-를 늦추거나 방해할지도 모르는 어떤 것이든, 나는 커다란 실수라고 생각한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엥겔스는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헨리 조지의 사상의 불합리성과 반동적 성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또 자주 이야기했다. 조르게의 서간에는 칼 맑스가 보낸 1881년 6월 20일자의 가장 흥미로운 편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맑스는 헨리 조지를 급진적 부르조아지의 이데올로그로 규정지었다. [이론적으로 그 사람은 완전히 후진적]이라고 맑스는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엥겔스는 대중들에게 [그들 자신의 실수들의 결과]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선거에서 이 반동적 사회주의자와 함께 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엥겔스, 1886년 11월 29일자 편지)."(같은 글, pp425-6)

레닌은 말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영국과 아메리카 노동계급운동의 근본적인 특징들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딪힐 어떤 커다란, 전국적인, 민주적인 과제들의 결여; 부르주아 정치가들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완전한 종속;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그룹들, 한줌의 사회주의자들의 분파주의적 고립; 선거에서 노동대중 가운데서의 최소한의 사회주의적 성공조차 없다는 것 등."(같은 글, p.427)

"만일 엥겔스가 이런 조건들 속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직들을 그토록 많이 강조했다면, 그것은 가장 확고하게 확립된 민주적 제도들이 논의되고 있었고, 또 그것들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순수하게 사회주의적인 임무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엥겔스는 아무리 빈약한 강령을 가지고 있더라도 독립적인 노동자당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과거에 노동자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암시조차 없었고 또 정치에서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부르주아지의 뒤에 끌려 다녔고 여전히 끌려다니는 나라들에 관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같은 글, p.427)

레닌은 위와 같은 내용을 <고전들은 사회민주주의의 지식인주의적 기회주의를 어떻게 평가했는가>라는 소제목하에 다시 한번 언급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엥겔스(와 맑스)의 권고, 지시, 교정, 경고 및 칭찬 가운데서 두 개의 노선을 분명하게 식별하게 된다. 영국과 아메리카 사회주의자들에게 보낸 그들의 호소 가운데 가장 일관된 것은 노동계급운동과 결합하여 그들의 조직들에서 편협하고 거만한 분파주의적 정신을 근절하라는 것이었다."(같은 글, p.433) (이것이 임무다.)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당도 없고, 사회민주주의적인 의원들도 없고, 선거나 신문 등에서 체계적이고 꾸준한 사회민주주의 정책이 없는 나라들 - 이런 나라들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모든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분파주의를 제거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정치적으로 뒤흔들어 놓기 위해서 노동계급운동과 결합하라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영국에서건 아메리카에서건 정치적 독립성을 거의 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들에서 - 즉 부르조아 민주주의적인 역사적 임무들이 거의 전적으로 현존하지 않았던 나라들에서 - 정치의 장은 노동자들을 속이고 부패시키고 매수하는 기술에서 세계에서 당할 자가 없는 승리한 자기 만족한 부르조아지에게 완전히 장악당했다."(같은 글, p.434) (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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