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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제목으로 낙천낙선운동을 비판하면, 이 운동의 지지자들은 100이면 100 모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음모적 시각이라고 흥분한다. 더구나 이런 비판이 좌파 진영에서 나온 것이라 하면, 이들은 흥분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운 분노를 한다.
좌파란 자들이 조선일보-한나라당과 똑 같다느니, 이런 비판은 조선일보-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이라느니, 조금이라도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조선일보-한나라당과 싸우라느니, 이런 비난과 분노에 나는 이제 상당히 익숙해졌다. 멀리는 민간정권의 출범 이래로, 가까이는 2000년 총선 이래로.
그 때보다도 더 강해진 시민운동이지만, 지금도 나는 이들의 비난과 분노 앞에서 물러서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안티조선'을 비판하지만, 어떤 경우도 조선일보-한나라당과 같은 적이 없었으니까, 또 나는 지금까지 자신의 역사 속에서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 나름대로 저항해 왔으니까. 군사정권에 대한 정치적, 정신적 저항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니까.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도 낙천낙선운동과 열린우리당의 커넥션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런 말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명백한 사실이니까. 조선일보-한나라당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니까.
한나라-조선일보는 보수적 또는 극우적 관점에서 정파적 이해를 위해 이를 선전하지만, 좌파는 진보적 관점에서 민중의 이해를 위해 이를 비판한다. 그런데 어떤 목적에 관계없이 비판의 대상만 같으면 같은 부류다라는 이들의 비난은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라크 파병에 대해,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대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대해, 비정규직의 확산에 대해, 민중생활의 파탄에 대해, 이런 것들 때문에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는데, 한나라-조선일보는 이 모든 것을 추구하면서 그들의 기득권과 보수적 질서를 유지하고자 열린우리당과 투쟁한다.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고 민주주의의 실제적인 진전을 위해 투쟁하는 좌파와 민중의 이익을 억압하고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한나라-조선일보가 똑같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똑같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므로? 이런 유치하고 단순한 문제설정에서 활동하는 자, 이들이 바로 한국의 시민운동이고 '안티조선'운동이다.
낙천낙선운동과 열린우리당의 커넥션, 이는 우선 이데올로기 면에서 진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공유하므로! 이들은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질서를 기본이념으로 추구한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이 질서의 틀 안으로 가두고 이를 넘어가는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낙천낙선운동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추구하지만, 이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의해 제한되는 한에서 그럴 뿐이다. 그런데 경제적 자유주의는 경제의 민주화를 자산계급의 민주주주의로 간주하기 때문에, 경제적 민주주의도, 또 정치적 민주주의도 근본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운동이 소액주주운동이다.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하는 참여연대는 이번에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소액주주운동은 경제의 민주화를 주주의 민주화, 자본가의 민주화로 한정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싶으면 먼저 주주, 자본가가 될 것을 요구한다. 무산계급이 자본이 없더라도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기업을 통제할 권리를 이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어떤 민주주의라 해도 기업에서의 이윤원리와 자본가 지배를 침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민주주의 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내가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또 내가 민주주의 투쟁의 의의를 폄하하고 좌파의 순결한 원칙을 현실정치에서 주장하기 때문에 이들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도 현실에서는 민주주의 투쟁을 하는데, 이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갇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바로 이들과 우리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혹자는 이런 반론을 제기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가 보다 근본적이더라도 지금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정착하는 문제가 중요하니까 지금 국면에서는 이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이번에 대통령 탄핵에서 비롯된 탄핵반대 운동에서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탄핵반대 운동도 비판하였는데, 이런 반론도 비판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민주주의의 발전이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그 다음에는 민중적 민주주의로 계단을 밟아 진행되는 게 아니라 이미 두 개의 과제가 중첩되어 진행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계의 투쟁을 위해 다음 단계의 투쟁의 문제를 포기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시민운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주의 운동을 넘어 민중운동으로 넘어갈 전망을 갖고만 있다면, 우리도 이런 반론에 귀를 기울이고 협력할 여지가 있을 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시민운동은 단호하게 이런 전망을 부정한다. 우리도 따라서 그런 여지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낙천낙선운동과 열린우리당의 커넥션, 이는 정치적 효과 면에서도 진실이다. 낙천낙선운동은 부정부패와 반인권, 철새정치와 헌정유린 등을 객관적으로 심판한다고 하였지만, 그 효과는 보수정치가에 대한 공격과 자유주의 정치가에 대한 지원으로,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나라-민주당에 대한 공격과 열린우리당의 지원으로 나타났다.
탄핵국면을 배경으로 반유권자적 헌정유린이라고 하면서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한나라-민주당의 전체 의원을 낙선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그 대미를 장식한 것이었다. 이 커넥션은 그만큼 노골화된 셈이고, 낙천낙선운동의 동기도 충분히 의심받을 이유가 있게 된 것이다.
이라크의 정치상황이 급속하게 악화되어 한국군의 파병결정을 재고하는 것이 긴급하게 요청되고 있는데도, 이들은 이 문제가 낙천낙선운동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 이 기준을 들이대면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낙선대상으로 가져와야 하므로!
이는 너무도 명확한 계산이다. 그런데도 파병 결정 같은 것은 정책적 결정이므로 낙선운동의 대상으로 가져올 수 없다는 이들의 설명은 구차스럽기 짝이 없다. 그러면 탄핵소추 결정은 정책적인 결정이 아닌가? 이를 정치적 결정이라고 변명한다면, 파병은 정치적 결정이 아닌가?
시민단체들은 자유주의 정당, 구체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정치운동과 분업적 관계에서 자유주의 질서를 창출하고자 노력하고 또 이 질서를 변호한다. 시민의 대표조직도 아니면서, 또 시민의 대중적 토대를 가진 것도 아니면서 각종 시민단체들이 시민의 이름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이들이 직접 정치운동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시민의 이름으로 사회운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추구하는 자유주의 질서를 시민들의 보편적인 요구로 포장할 수 있고,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초월한 것처럼 시민들의 보편적 지향으로서 열린우리당 지원을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얼마나 간교한 정치적 행동인가, 나도 감탄스럽다. 탄핵을 반대하는 '범국민행동'이 노사모와 열린우리당 등을 배제하고 국민의 행동인 것처럼 포장한 것도 이러한 간교함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진보운동을 한다면서 이를 근거로 해서 '범국민행동'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운동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논자들이 있다면, 이는 순수한 게 아니라 멍청한 것이고, 아니면 진보진영에서 (신)자유주의에 경사되어 있는 자들의 교활한 술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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