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7일 수원역 광장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가야하네 우리 함께 어깨 걸고 억압과 착취 모두 깨부수러..' 아니 이게 웬 민중가요 소리인가? 하면서 그쪽을 바라보니 열린우리당의 선거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허긴 선거철만 되면 선거유세니, 선거송이니 하면서 개사를 해서 많이 불려지기는 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뭐라고! 열린우리당이 억압과 착취를 깨부수는 당이라고?!
막 현장노동자들을 만나고 문화를 얘기하고 나오던 그 순간에 권력을 잡겠다고 우리 노동자의 문화를 이용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만들고 투쟁하면서 불렀던 노래를 이제는 이렇게라도 하면서 자기들이 개혁세력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순간에 나는 가슴을 치면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겠다고 투쟁하는 현장노동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 다음날 나는 또 다른 현장을 찾았다. 다들 알고 있듯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 민주노동당이 이번 총선에 많은 후보를 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근데 이건 또 무슨 광경이래?
"저 민주노동당 무슨 후보인데 며칠 있으면 지역에서 선거유세가 있는데 여기 율동패가 유세 때 공연 좀 했으면 하는데요 어디 한번 봅시다. 시민들 정서와 맞는지 안 맞는지 한 번 보고요 그리고 너무 노동자 투쟁적인 거 말고 시민들이 거부감 안 느끼는 거, '바위처럼' 이런 거 율동 좀 했으면 하는데요. 빨랑 해봐요. 어디 한번 봅시다"
그래 현장노동자들은 민주노총에서 정치방침으로 내려진 지침 때문에 대부분이 민노당 당원이라는 건 이해하겠다. 그리고 그 유세 때 노동자문화로 선동할 수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건 무슨 태도란 말인가? 시민들한테 맞는 걸로 하라고?! 아니 정치권에 들어가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말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현장의 문화가 부담스러우니 시민적인 것으로 해달라는 주문은 뭔가 말이다.
예전에 머리띠 한번 묶고 투쟁 한 번 해본 걸 가지고 자기들이 개혁세력이라고 떠들면서 투쟁하며 만들고 투쟁하며 부른 우리의 노래를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는데 활용을 한다. 그런데 노동자의 정치를 위해서 노동자들 대변하겠다고 하는 민주노동당이 가장 시민적인 것을 찾는다. 과연 가장 시민적인 것인 무엇일까?
현장이 자본과 대립 전선에 서있다는 것은 누구다 다 알 것이다. 자기 목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해고가 되어도, 옆에 있는 동지가 산재로 죽어도, 비정규직으로 사는 게 서럽다고 분신을 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함께 투쟁하지 못한다. 민주노조를 만들겠다고 선배 노동자들이 투쟁하며 불렀던 그 노래를 배운다. 그리고 지친 어깨를 털기 위해 소주 한 잔하며 노래를 부른다. 현장을 돌다보면 노동자 문화가 왜 치열할 수밖에 없는지 피부로 실감하게 된다.
투쟁 때만 힘찬 문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투쟁 때? 정해진 시기에 있는 파업투쟁 때만? 현장은 늘 투쟁의 순간이다. 그리고 자본은 그 투쟁의 순간을 무디게 하기 위해 열린음악회니, 가족의 날이니, 노총각 짝짓기니…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자본의 문화를 퍼트리고 있는데 말이다.
너무 거부감이 생겨서 우리 표가 다른 곳을 찍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라면 곤란하다. 아니 곤란할 뿐 아니라 그 생각이 더 무서워진다. 그 유세를 듣는 많은 시민들도 대부분 같은 노동자이다. 물론 투쟁 경험이 없고 우리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세 공간에서 왜 노동자의 삶과 문화가 치열할 수밖에 없는지를 솔직하게 말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돌아오면서 몇 주 전 일이 생각이 났다. 명동성당에서 전혀 다른 노래가 들렀다. 130여 일을 훌쩍 넘긴 이주노동자들의 '임을 위한 행진곡'과 탄핵무효,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농성대오의 촛불집회에서 들린 '임을 위한 행진곡'
이주노동자들은 강제추방이 두려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같은 노동자를 생각하며 묵념을 했을 것이다. 한국의 5.18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정권에 죽어간 열사들을 생각하며 묵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잘 하지 못하는 한국말로 열심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다. 탄핵무효를 외치며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것일까.
그 당시 그렇게 피 흘리며 죽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던 민주가 탄핵정국에서 외치고 있는 민주주의일까? 민주주의를 위해 불렀던 우리의 노래는, 투쟁하며 불렀던 우리의 노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한쪽은 노무현정권을 박살내자고, 한국정부 박살내자며 투쟁을 한다. 한쪽에서는 한나라, 민주, 자민련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고 민주수호를 해야 한다고 한다. 거기에서 빠진 열린우리당은 저들과 다른가?
하지만 한국정권은 이주지부장 샤말동지를 강제추방 시켰다. 어쨌든 지금 있는 불법체류자들을 다 강제추방하고 올 상반기에 다시 7만여 명 이상의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에 들어오게 한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다르다고 하는 걸까?
그 자리에서 농성하던 한 이주노동자는 내게 "'파업가'를 부르면서 우리투쟁 힘내고, 파업가에 맞춰서 율동하면 힘이 나고, '바위처럼'에 맞춰 춤추면 신나요. '불나비'를 부르면 전태일 열사가 생각나요. 그리고 이런 문화가 참 재미있어요. 많이 배워서 노동비자 받고 우리나라 가면 거기 노동자들한테도 가르쳐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 말이 귀에 선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