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국민행동'과 광화문의 대규모 탄핵반대 집회, 대중들로부터 고립된 좌파, 들어주는 사람 없는 민중탄핵 목소리... 좌파단체들의 마음이 얼마나 갑갑할까는 불문가지다.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또는 어디에서 잘못 되었을까? 이를 어떻게 돌파할까? 이런 질문들이 머리를 짓누른다. 명확하다고 생각하는 관계부터 검토해 보도록 한다.
우선 좌파의 정세평가와 전술이 잘못되었나 하고 뒤돌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잘못이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들이 설정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 또는 수구 대 개혁의 구도는 노무현의 재신임을 위한 구도라는 것, 이는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민중전선을 교란시키고 민중운동을 신자유주의로 포섭하여 그 세력을 강화시킨다는 것, 따라서 민중운동은 자유주의 개혁전선을 비판하고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복원, 강화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잘못된 주장은 없다.
오류는 오히려 이를 비판하는 논자들에게 있다. 남구현·이해영·최형익 세 사람의 이름으로 민중탄핵론 비판이 제출되었는데, 그 주장인즉 국회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의한 대통령 탄핵소추 결정은 의회쿠데타이고 테르미도르의 반동에 비교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들이 어떻게 정치학 전공자, 그것도 맑스주의 정치학 전공자인가 의심스럽다.
형식적으로도 그렇고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한나라-민주당 대 열린우리당의 탄핵대결이 어떻게 헌법질서를 위협하는 문제인가? 또 어떻게 이 문제가 자유주의질서로부터 파시즘과 극우반동으로의 회귀여하가 걸려있는 문제인가? 이 세 개의 당은 노무현 정권 이전에도 동일한 헌법 하에서 한국정치를 지배하였었고, 지배적인 정당은 김영삼의 한나라당(당시 신한국당), 김대중의 민주당이었으며, 지금은 그 뿌리를 같이 하는 노무현의 열린우리당이다. 김영삼의 한나라당 대 김대중의 민주당간의 대결, 그리고 이회창의 한나라당 대 노무현의 민주당간의 대결이 극우반동과 민주주의의 대결이었나?
위의 세 사람은 이런 정세평가에 근거해서 어이없게도 반파시즘 전술제안까지 하고 있다. 즉 파시즘에 대항하는 통일전선, 인민전선의 의의를 환기시키고 좌파들이 극우반동 대 민주주의라는 투쟁에서 노무현-열린우리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현재의 민주주의 운동에서 좌파가 고립된 것은 극우보수파에 대한 전선에서 중간계급과 자유주의 정파를 함께 무차별하게 공격하거나 심지어 주적을 자유주의 정파로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좌파의 전술을 비판한다. 좌파가 이른바 사회파시즘론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정치학 전공자들의 이런 정세인식과 전술제안은 채만수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아는 게 병"인 셈이고 나대로 말한다면 "모르는 게 약"이다.
이들의 논리를 따른다면, 1997년의 이회창 대 김대중의 대선경쟁은 극우반동의 유지인가 아니면 자유주의로의 진보인가를, 2002년의 이회창 대 노무현의 대선 경쟁은 자유주의의 유지인가 아니면 극우반동으로의 회귀인가를 결정하는 중대한 투쟁인 셈인데,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좌파들은 이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독자적인 좌파후보를 내세웠으니 중대한 전술적 오류를 범한 셈이다.
1997년 대선에서 나를 포함하여 좌파 지식인들은 국민승리 21의 권영길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하였는데, 내가 알기에 세 사람 중 한 사람(남구현 교수)은 권영길 후보의 우파적 성향을 비판하면서 보다 좌파적 입장을 제출하지 않으면 계속 지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자유주의 정치와도 연대해야 한다고 선전하는 사람이 진보진영의 후보가 우파성향이라서 지지하기 어렵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들의 주장을 따른다면, 극우반동이냐 자유주의냐 하는 중대한 싸움에서 사회파시즘론에 빠져있던 것은 요컨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들 자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여전히 극우반동의 문제가 지배한 2002년 대선에서 이들은 누구를 지지하였나? 극우반동으로의 회귀를 막기 위해 노무현을 지지하였나? 아니면 사회파시즘론에 입각해 사회당 후보를 지지하였나? 나는 이들이 다른 좌파들을 문제삼을 게 아니라 자기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자기비판도 정세평가의 오류 때문에 제대로 될 수도 없다.
이들을 따라 극우반동 대 자유주의라는 전선설정을 수용한다면,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좌파는 모두 자유주의 정파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선언했어야만 했다. 결국 이들은 지금 2004년에도 비판적 지지론을 들고 나왔다. 왜 비판적 지지인가? 이들은 말한다. 노무현의 집권 하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져왔는 바, 이에 대해 수구반동들의 위기감이 고조하고 저항이 매우 날카로워져서 극우반동 대 자유주의의 대립이 지배하는 정세가 되었었고, 이런 위기정세가 국회에서 한나라-민주당의 대통령 탄핵을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이런 정세 평가가 역사 현실과 어긋난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극우반동 대 자유주의의 대립은 현재가 아니라 오히려 2002년, 1997년으로 거슬러갈수록 더욱 더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이전과 이후 전선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그 민주주의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들에 따르면 그것은 한국정치를 지배했던 사당정치, 보스정치, 지역주의의 청산 등 정치개혁과 언론개혁에 있다. 그런데 이런 개혁이 파시즘-극우반동과 의회민주주의를 차별하게 하는 척도란 말인가? 파시즘과 극우반동의 본질은 의회민주주의의 후진국적 형태나 그 왜곡의 문제가 아니라 형식적이든 실제적이든 의회민주주의 자체의 부정에 있는 것이라면, 의회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게 아니라 이를 선진화시키려는 성격의 자유주의 개혁은 당연히 극우반동-파시즘과 대항하는 개혁이 아니다.
자유주의 전통의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조차도 5공화국의 극우적 뿌리를 가지고 있어도 또 6공화국에서 노태우 정권의 유산을 가지고 있어도 그 동안 이합집산의 변화를 통해 그 극우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탈각하고 보수적 정당으로 변신을 꾀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탄핵문제는 자유주의 대 극우반동의 대결이거나 현행 헌법질서의 붕괴 문제가 아니고 다만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간의 정파적 다툼일 뿐이다. 대통령이 탄핵되면, 현 헌법질서 하에서 대통령을 다시 뽑으면 되는 것이고 새 대통령이 자유주의자이든 보수주의자이든 기존의 헌법질서 하에서는 부차적인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맑스주의자 3인의 주장은 사실 자유주의자들이 하는 주장과 동일하다. 유시민은 탄핵국면 이전부터 공화국의 위기를 운운했었고, 열린우리당은 탄핵을 의회쿠데타라 규정했다.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과의 권력투쟁을 이렇게 헌법질서의 위기로 과대포장하고 선전해서 대중들을 자유주의 지지로 끌어모으려 하였고 또 열린우리당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도에서 보는 바처럼 생각했던 것 훨씬 이상으로 이에 성공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선전과는 달리 본심으로는 현재의 탄핵국면을 결코 헌정질서의 전복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또 광화문에 몰려간 그 대중들도 지금의 정세가 파시즘으로 회귀하는 공화국의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광화문에서도, 우리 사회의 어떤 영역에서도 그러한 위기의식과, 정치적, 사회적, 계급적 긴장과 충돌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평화 현상이야말로 현 정세가 공화국의 위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런데 맑스주의자로 자처하는 인물들이 헌법질서의 위기라고 떠들어대면서 대중들에게 자유주의자들을 지키라고 선전하는 것이다.
탄핵정국의 추이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또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압도적인 승리 전망을 직시하는 사람이라면, 탄핵문제에서 자유주의자에 대한 공격이 주요한 측면이고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부차적이라는 것,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아니라 자유주의에 대항해 자립적인 진보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이 좌파의 올바른 대응방향이었음을 이해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열린우리당을 이런 관점에서 공격하고 민중의 힘으로 노무현을 탄핵하자는 좌파진영의 입장을 양비론이니 한나라당과 합작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하는 논자들에 대해서는 가소로울 뿐이다. 이는 우리사회를 기껏해야 조중동-한나라 대 한겨레-열린우리당의 대결이라는 편협한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안티조선의 부르주아 시각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위 3인의 의견은 단순하게 좌파의 논쟁을 활성화하고 단지 논쟁의 흥행을 가져온다고 좋게 생각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논쟁의 흥행이 아니라 논쟁의 해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처음의 질문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정세평가와 전술에서 근본적으로 오류가 없었다면, 왜 좌파는 대중들로부터 고립되고 궁색하게 되었는가? 강내희 교수는 최근의 글에서 이런 고민을 좌파의 무능력, 실력부족이라 했다. 이런 평가는 틀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좌파의 이 무능력과 실력부족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왜 좌파가 대중들과 함께 가지 못하고 대중들로부터 오히려 소외되었을까? 위 3인의 비판처럼 좌파가 이념적이고 계급적인 요구만을 제출하고 민주주의 투쟁을 거부했기 때문인가? 좌파가 이념적, 정치적 순결성을 위해 대중들로부터 선을 긋고 스스로를 폐쇄했던 것인가? 대중들과 대중운동 그리고 좌파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탄핵과 총선이라는 특정한 국면에서 전개된 대중들의 운동과 좌파의 개입이라는 문제를 검토해 보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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