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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동지에게
정신없으시죠? 광화문은 탄핵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탄핵 문제만 빼고 나면 분위기가 오히려 평화로울 따름입니다. 탄핵이라는 메가톤급 폭탄이 다른 이슈들을 다 잡아먹어서일까요, 아니면 정말 다른 이슈들이 없어서일까요. 앞이라고 한다면 그 이슈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노력하면 될텐데, 뒤라고 한다면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촛불시위대가 등장하고, 집시법 이야기까지 거론되고... 그러나 이 소란의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무언가의 힘에 의해 매우 질서정연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됩니다. 촛불시위에 나선 대중들의 움직임에 자발적인 행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 뒷배경에 개혁패거리들의 대중동원전략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보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중이 있는 곳이어서 대중을 쫓아간다는 '신 대중추수주의'가 판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울산은 어떤지요? 탄핵 소음이 비단 서울의 이야기만은 아니겠지만 울산은 그래도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주말 노동자대회 때 내려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습니다만, 몸 움직이기가 만만치 않더군요. 갔다온 동지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탄핵과 415 총선으로 과잉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뭄바이 세계사회포럼 함께 갔다온 후 못 봤네요. 잊고 지내던 참에 노동자의힘 기관지에 투고한 글을 접했습니다. 반전에 대한 글이어서 뜻밖이었습니다. 작년 하반기 반전평화공동행동(준) 및 12.13국제반전공동행동 활동 등을 통해 반전운동을 고민했던 저로서는, 현장에서 반전운동을 일구어야 한다는 주장 그 자체로 가슴 뭉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년 한해, 2.15, 3월 국제반전 투쟁, 그리고 민주노총의 각종 반전 실천들, 가령 반전대표단 요르단 암만 파견, 파병저지를 위한 국회 앞 노숙철야농성, 1박2일 노동자 상경투쟁, 전교조 반전평화수업 등은 한국에서 반전운동을 뿌리 내리기 위한 소중한 실천들이었습니다. 하반기에는 추가 파병 논의 정세와 맞물려 더 큰 힘을 받기도 했습니다. 동지께서 지적했듯이 적어도 민주노총이 반제, 반전투쟁을 자신의 주요한 사업으로 인식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이제 3.20 국제반전공동행동이 곧 열립니다. 그동안 한국의 주요 단체들은 '3.20한국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 1주년을 규탄하는 실천을 준비해왔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이 지도부가 바뀌면서 작년에 비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동지께서 지적했듯이 "민주노총 차원의 3.20 투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는 조건에서 단위노조와 현장에서는 3.20 국제반전투쟁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해 현장에서 싹트기 시작한 반제, 반전투쟁의 소중한 시도와 고민들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실종되고 있다......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결의로 3.20 국제반전투쟁을 준비하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본격적인 현장 대중활동으로 발전시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는 속상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민주노총의 지침이 없더라도 단위노조와 현장조직 차원의 3.20 투쟁계획이 수립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늦었지만 4.15에 파묻혀 유실되어 가는 3.20을 살려내자. 우리가 '올인'해야 할 것은 4.15가 아니다" 라는 마지막 언급은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그런데 3.20한국조직위원회가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최근 집회 장소 변경을 둘러싼 일이 있었는데요, 참여연대가 시청으로 예정되어 있는 집회 장소를 대학로로 옮기자는 제안을 하고, 여기에 민주노총, 한총련, 통일연대 등이 덩달아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명분상에는 시청 앞 광장 조성 공사 관계로 경찰 측이 불허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여론이 불리하게 작동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고 합니다. 현 정부로서 부담스러운 반전 집회가 도심 한 가운데서 열리는 것에 대해 압력을 작용했다는 후문도 있었습니다. 반면, 시청을 사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신고된 집회인데다, 경찰 측이 제지한다면 집시법 반대를 포함한 반전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다수결로 대학로가 결정되는 해프닝이 벌어진거죠.
한편 대중들이 연일 광화문에 모여 촛불집회를 벌이자 3.20 대회의 기조를 바꾸어 반전에 탄핵 문제를 넣어 대응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좌파로 분류되고 반전 운동을 주도하다시피 해온 단위가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만, 결국 이 주장의 배경에도 대중 편승적 정치활동 경향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다가오는 3월 20일은 3월 한달 중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탄핵'에 동원되는 대중들이 아니라 현장에서부터 어렵게 어렵게 반전운동을 고민해온 사람, 침략전쟁을 일으킨 미 제국주의와 파병정권에 분노하며 참가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날입니다. 개혁패거리들의 참주선동, 그리고 동원된 대중에 편승하는 일부 진보운동 세력들로부터 구분해서 온전하게 반전을, 반제국주의를, 파병정권 반대를 외치는 실천의 장입니다. 그래서 3.20에 모이는 사람의 숫자가 광화문에 모이는 숫자의 1/10이 안 된다 해도 조금도 주눅들거나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렵지만 바른 소리 내며 묵묵하게 걸어가는 것이 우리의 길일 테니까요.
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경황이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 반전 이야기, 3.20 이야기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비단 현장이어서 만은 아닐 겁니다. 어려운 상황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니까요. 조만간 서울 올라오실 일 있으면 미리 전화를 주세요. 만나서 올해 반전 이야기, 반제-반세계화 이야기 더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그만 줄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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