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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정국'을 가로지르기, 투쟁의 횡단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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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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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7일 03시 04분 25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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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건설 일용직 노동자 결의대회 리뷰
'탄핵정국'이 모든 사회적 이슈를 잠재우고 뜨거운 핫 이슈로 떠오르면서(순전히 기만적인 사회적 조작에 의해), 과연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규가 제대로 전달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서울역 앞에 모인 노동자들은 '탄핵정국'에 대해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정국'이라고 맞받아 쳤다. 서울역 앞으로 가기 전에 나는 쟝 보드리야르의 <토탈스크린>의 뒷면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거기에는 정말 우연히도 현 '탄핵정국'과 맞아떨어지는 글귀가 있었다.
"우리는 사건을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개념들을 선택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선택, 즉 개념들의 선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건들이 우리에게 정보를 통해 그들의 연출과 이데올로기적 형태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어떤 사건이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사건은 제각기 어떤 순간에 그저 사건의 기만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 전체를 내포한다. 우리는 사건의 이 기만과 싸워야 하며, 사건을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즉 정치적인 것과 역사에 대한 모든 해석, 모든 관례적인 견해를 넘어서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분석이 자신의 목적에 따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분석에 저항하는 것, 우리에게 숨겨진 것, 사건을 통해서 곁눈질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투명성과 유감이 그 이면에서 작용하는 이 토탈 스크린을 제거해야 하며, 고통을 주는 문제를 찾아내야 한다."
'투명성과 유감이 그 이면에서 작용하는 이 토탈 스크린', 이것만큼 현 '탄핵정국'으로 개념화된 사회적 조작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을 찾을 수 없는 듯 하다. 이 토탈 스크린을 제거하고, '모든 관례적인 견해를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내가 찾아낸 것은 바로 이 집회였다. 이 집회의 1부는 이주노동자들이 포문을 열었다. 이주노동자들이 터를 잡고 있을 때 서울역 주변에서 터를 잡고 있던 노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적대를 드러냈다. '이주노동자들이 내 일자를 빼앗아갔다'는 항변이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경찰들은 무전기에다 대고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적대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곧바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주위에 모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용직 노동자들이 물리적으로 노숙자들을 몰아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라면 이주노동자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서먹하기도 하거니와 때로는 노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적대'적으로 표출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러한 적대는 자본이 만들어놓은 그 게임에 전적으로 순응할 때만이 표출될 수 있다. 고통에 대해, '자본의 게임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으로 접근해 들어갈 때는 '연대'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나 둘 연대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주위에 모일 때에야 적대가 힘을 못쓰고 사라진 것이다.
이주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들의 집회라, 그래도 여전히 서먹해하며 그 중에는 연대를 머뭇거리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서로의 문제를 잘 모르고 아직 소통은 부족하였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많은 노동자들이 그런 소통을 위해 서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몇 백 명이 모인 집회이지만 활기가 가득할 수 있었던 것은 소통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나는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준비한 홍보물을 시민들과 그리고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 모임에 함께 한 사람들과 나는 홍보물을 아끼며 시민과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마 이 집회에서 뿌려진 홍보물 가운데 가장 글이 빼곡이 들어찼을 그 종이를 그 분들은 열심히 읽어주었다. 시민들 중에는 이 집회가 '탄핵'과 관련된 집회일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오히려 관심을 갖는 분들도 있었다. 서울역에서 명동까지 행진하던 중에도 사정은 비슷했다. 시민들은 '탄핵정국' 때문에 정치적 이슈에 민감해 있었다. 그래서 이 행진이 '탄핵'과 상관없는 말하자면, 탄핵에 대한 '관례적인 견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홍보물을 받아들고 읽었다. 그 시민들이 돌아서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관심은 행진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집회에서 내 관심꺼리는 두 가지였다. 이주노동자와 일용직 노동자가 얼마나 소통할 수 있으며, 어떤 과정에 의해 공통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매우 작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또 하나의 관심사항은 '탄핵정국'이라는 '토탈 스크린'(아마 이와 같은 토탈 스크린은 앞으로의 현실에서도 내내 문제화될 것이다)에서 벗어나 다중의 자율적 조직화가 가능한 방법들 중의 하나를 찾아 내보는 것이었다. 이런 두 가지 관심사항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많은 부분 나는 이미 가지고 있던 내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거나 그것을 정교화하게 되었다. 좀 더 시간이 나면 나는 이주노동자 투쟁에 있어 나의 경험들을 정리하는 글을 쓸 생각이다. 내 속에 들어있는 좀 더 내밀한 생각들을 일단 접고, '탄핵정국'이라는 상황 앞에 놓인 다중 투쟁의 자율적 조직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다음 두 가지 방향에서 다중 투쟁의 자율적 조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런 '탄핵정국'속에서 소극적 입장이나 방향을 잡지 못한(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선거에 빠져있던) '노동, 여성, 생태' 등등에서 서로간의 소통을 강화하는 방향이 모색되어야 한다. 3월 20일 반전대회가 어떻게 치뤄지게 될지는 이런 노력의 결과에 달려있으며, 그 대회 자체가 그런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행동 또한 필요하다. 또 하나는 '탄핵정국'의 중심이 된 여의도나 광화문과 같은 정국의 중심부가 아니라, 그 외곽에서 다양한 이슈를 가지고 소규모의 집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집회에서 그것이 다중들의 자율적 조직화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광장이 중심을 만들고 토탈 스크린을 동원할 때 그 외곽에서 그와 전혀 다른 이질적인 소통의 장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그 만큼 커진다는 것이다(많은 현대 도시건축가들의 말대로). 투쟁은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점점 더 '소수자들의 연대'로 나아가고 있고, 다수자들을 소수자들에게로 탈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광장의 중심으로부터 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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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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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
-0001.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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