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잠을 자야 할 그 귀한 시간에 노무현 탄핵에 대해 말을 하게끔 만든 사람들이 밉다. 나는 평소 대통령 '따위'가 없는 세상을 많이 상상해왔기 때문에 '대통령 따위야 영원히 없어져도 상관없잖아. 호들갑 좀 그만 떨어' 하고 시큰둥해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권력자가 이 지구상에 영원히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이 큰 사건으로 비화하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의도에도, 광화문에도 몰려가지 않는다. 그럼 어디로 가냐고? 어디로 가는지는 뒤에서 말하겠다.
우선, 현 탄핵 사태에 대한 사회적 조작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먼저 대통령 탄핵에 대해 '수구반동 세력의 반혁명'으로 바라보는 명백한 조작이 있다. 수구반동세력이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게다가 반혁명이라니! 언제 어디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무슨 혁명이 이미 벌어지기나 했던 것일까? 이 모든 의심스러운 발언들은 다음 두 가지를 겨냥하고 있다. 우선 '수구반동세력'이 누구인지에 대한 사회적 조작, 그리고 둘째 '혁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조작. 대통령 탄핵이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역행하는 반동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데에는 바로 작금의 민주주의의 과제를 협소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민주주의 과제는 고작해야 '반조선일보'와 같은 것 혹은 정치적 부패청산과 같은 것으로 축소된다. 따라서 혁명도 축소된다. 탄핵을 앞두고 여의도에서 노무현을 사수하자고 외쳤던 영화배우 문성근의 연설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지난 민주주의 투쟁과 민중운동 속에서 숨졌던 열사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그 이름은 그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거의 1987년의 시점에서 멈춘다. 말하자면 그가 말하는 민주주의 역사는 거기까지다. 그는 그가 사수하고자 하는 노무현 정부 하에서 죽어간 이름들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분명하게 의식하지 않는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노무현이 탄핵되던 날 여의도와 그리고 이어졌던 광화문에서 존재했던 민주주의는 바로 그 민주주의에 의해 압살 당한 것에 대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다른 많은 억압과 민주주의를 가린다. 한걸음 더 나아가 '수구반동세력'과 '혁명'에 대한 이와 같은 사회적 조작이야말로 사실은 '반혁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숨긴다.
그런 사회적 조작은 다중의 열망이 그들 지배계급과 정치계급이 규정한 민주주의(정치적 부패청산) 이상으로 폭발하려는 것에 대한 '반혁명'이다. 그들 정치세력들은 그럴듯한 '적'을 불만에 가득한 대중들-'적'을 찾지 못해 헐떡이던 대중들에게-앞에 먹이로 제공함으로써 현실을 잊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 달콤한 승리도 제공될 것이다. 설혹 승리를 제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달콤한 패배로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치주의자들과 같은 정치세력들의 전형적인 수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조작의 반대편에서 마치 서로 적대적인 것처럼 작동하는 사회적 조작이 있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을 다시 뽑으면 (이 나라가) 잘 살 수 있다'는 유언비어를 역시 불만에 싸여 왜곡되어진 대중들에게 퍼뜨린다. 이것은 사회의 운명이 대통령, 국회 등 그 모든 국가-권력에 달려 있다는 신화를 강화한다. 그러나 탄핵을 둘러싼 이 모든 사회적 조작들 사이의 차이를 구별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 조작들의 공통적인 이해는 바로 국가-권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향해 작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잊게 만들고 권력에 파열구가 나지 않도록 신화를 통해 봉합하고자 하는 사회적 조작, 이것이 이번 탄핵을 둘러싼 요란스러움이다. 탄핵을 둘러싼 어떤 정치적 발언도 현실을 재현하지 않는다. 그 발언들은 모두 시뮬라시옹(권력의 재생산)이다. * 어떤 사람들은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을 '다수의 횡포'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 비난은 마치 권력이 원래 다수의 횡포가 아니라는 듯이 여긴다. 이런 발언의 이데올로기는 현재의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다수의 횡포'임을 숨기고 있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그것은 다수의 횡포인 선거 속에서 탄생한다.
그 시뮬라시옹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마도 보드리야르가 제안한 바대로 그 시뮬라시옹이 내파하도록 내버려두는 '차가운 침묵'일지도 모르겠다. 침묵에 의한 공격! 제발 관심을 가져달라는, 탄핵을 둘러싼 그 모든 사회적 조작에 대한 수동성의 복수! 그러나 나는 조금 더 나아가길 원한다. 탄핵을 둘러싼 그 모든 뜨거운 발언들이 감추고 있는 '이름 없는 것', 명명되지 않은 것, 영화배우 문성근이 무의식 중에라도 거론할 수 없었던 이름들, 바로 탄핵 사건이 기만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것들, 권력의 재생산과 상관없이 일탈해있는 치명적인 그 외부성들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여의도에도, 광화문에도 가지 않는 제3의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명동성당에는 현재 120일이 넘게 농성하며 투쟁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규가 있다. 탄핵을 둘러싼 그 '뜨거운' 사회적 조작은 결코 이 투쟁을 봉합하지 못한다. 이것이 이번 탄핵 사건 속에 드러난 유일한 진실이자, 사회적 조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는 '차가운 침묵'이다. 이 진실에 이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 그것이 내가 여의도에도 광화문에도 가지 않는 이유이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탄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지배자 없이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이나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명동성당 이주노동자 농성장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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