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 탄핵국면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노무현에 대한 탄핵안 가결은 즉각 전국을 민주 대 반민주, 친노 대 반노의 대립구도로 갈라놓았다. 여기에는 민주노조운동진영도 다를 바 없었다. 민주노총은 탄핵 가결 직후 “부패한 정치집단의 쿠데타에 의한 탄핵은 무효”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가 수 시간만에 ‘노무현을 지지하는거냐’라는 내부반발에 성명서를 새로 써서 내보내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무현 비판적 지지에 한발을 담그고 있는 듯한 애매한 태도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사회당, ‘다함께’ 등 대부분의 정치조직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역시 탄핵가결과 동시에 일제히 탄핵무효, 민주주의 수호라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들은 그 세력적 스펙트럼과 무관하게 현 정세를 민주주의의 위기로 과대포장하면서 노동자계급을 노무현의 2중대로 전락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탄핵사태의 배경
이러한 주장 속에는 이번 탄핵 사태가 수구반동의 치밀한 음모에 의한 권력탈취이며, 민주주의를 파괴한 쿠데타라는 인식이 깔려져 있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역사적 비교들 - 테르미도르 반동, 코르닐로프 반혁명, 파시즘의 등장 - 은 위기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저러한 역사적 사건들과 달리 2004년 남한에서의 대통령 탄핵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전혀 위협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권력구도 재편을 통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의 제도적 안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은 IMF와 구조조정 이후 몰락하는 소부르주아와 노동자들의 희망과 기대를 업고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체제 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노무현의 약점은 집권 초반부터 거대야당의 공세뿐만 아니라 행정 ․ 사법부에 포진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사보타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집권 이후 북핵사태, 이라크 전쟁, 경제위기 등 일련의 상황은 노무현 정권의 우선회를 가져왔고 이는 지지기반의 이반으로 나타났다.
이라크 파병결정, FTA 추진, 작년 6월경부터 본격화된 노동운동탄압, 노사관계 로드맵 등의 정책은 노사모를 비롯한 노무현 지지세력을 분열시켰다. 작년 10, 11월 격렬하게 터져나온 노동자, 농민의 반정부 투쟁은 노무현에 대한 이들의 실망감이 얼마나 큰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던진 승부수가 작년 10월 10일의 ‘재신임’ 선언이었다. 재신임 카드를 통해 노무현은 흩어진 지지 세력의 재결집을 꾀하며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개혁을 앞세워 ‘수구 대 개혁’이라는 전선을 다시 전면화 시켰다. 재신임 이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오히려 분열 이반 상황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정국의 주도권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갔다.
민주당은 분당 이후 당내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한나라당 또한 연달아 비리문제가 터지면서 총선을 앞두고 당내 소장파의 개혁 압력에 당권파의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당내 분열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꾸준히 상승했다. 열린우리당의 약진으로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있던 민주당은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탄핵’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내부 분쟁에 시달리고 있던 최병렬, 홍사덕 등 한나라당내 당권파는 탄핵안 추진을 통해 내부를 추스르고 당내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물러서면 죽는다고 판단한 노무현 또한 버티기로 나갔다.
지배분파 중 누구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총선을 앞두고 심화된 위기의식과 생존욕구가 누구도 감히 예상치 못했던 탄핵인 가결이라는 사태로 치닫게 했던 것이다. 그 결과 탄핵은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들을 최대 수혜자로 만들었다. 탄핵사태는 정세를 급속하게 총선을 중심으로 재배열시켰다. 재신임 문제는 탄핵안 가결과 동시에 노무현이 바라던 대로 총선과 자동적으로 연결되었다.
부르주아 체제의 위기?
의회 내의 극도의 분열과 투쟁양상과는 별개로 탄핵 이후 행정력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해외평가기관들은 남한 경제에 대해 여전히 확고한 신뢰의 보내주었으며, 잠깐 떨어졌던 주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상을 되찾았다. 이것은 대통령 탄핵국면이 불러온 부르주아 내부의 분열상이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체제의 위기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현재의 탄핵사태는 87년 이후 등장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의 제도적 안착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의회민주주의 공간이 열린 이후 각 부르주아 분파들은 지역적으로 다른 지지기반과 미묘한 정치성향의 차이를 두고 분열과 대립, 이합집산을 거듭해 왔다. 87년에 형성된 여소야대 국면을 3당 합당으로 극복한 민자당의 출현,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 색채를 가지고 있었던 김대중의 당선과 이로부터 시작한 여야 간의 팽팽한 대립구도, 노무현의 당선과 새로운 여소야대 국면의 도래에 이르기 까지 내각제, 이원집정제, 중임제 등 지배계급 내에서의 다양한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제기되어 왔다. 특히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관통하는 의회질서의 상황은 대통령 집권으로 행정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의회에서는 확고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투쟁과 반목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탄핵국면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탄핵사태와 17대 총선은 ‘보수 양당제’로 지배분파 내 세력관계를 재구조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새롭게 형성된 지역구도 하에서 영남권으로 세력범위가 축소된 보수 우익세력과 상대적으로 중도개혁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자유주의 세력, 이 양대 세력이 의회정치를 분할독식하는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이번 탄핵사태와 뒤이은 총선은 87년 이후 현재까지 지배계급 내 정치분파간 이합집산, 분열과 반목을 거듭해온 남한 민주주의 형태가 ‘미국식 양당제’(보수-보수구도)로 완성될 것임을 보여줄 것이다. 민주당과 자민련 등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여 존립자체가 위태로운 상태에 놓일 것임이 분명하다. 민주노동당 또한 탄핵국면 이후의 반보수, 수구척결의 대중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부르주아 제도권내 진입과 부르주아 개혁정당으로 제도화되겠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당구도 하에서 군소정당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이데올로그인 장상환 교수는 탄핵사태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라는 새로운 보-진 구도의 형성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이다. 보수 양당제 구도 하에서 민주노동당의 군소정당화는 그들이 표명하고 있는 변혁의 목표(제3의 길류의 우익적 사민주의)와 매 선거 때마다 부르짖는 중간층 정책이 부르주아 분파 내 개혁세력인 열린우리당의 중간층 정책과 어떠한 차별성도 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탄핵국면에서 보수반대 국민행동이 만들어준 반사이익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는 민주노동당의 계급성이 앞으로 더욱 희석화 될 것을 예고한다. 비록 실현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최근 열린우리당에서 나오고 있는 ‘분당론’과 함께 민주노동당의 탈계급화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새로운 정계개편 논의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노동당의 정치를 더욱 오른쪽으로 이끄는 요소로서 작용할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탄핵 반대에 결집한 불만을 가진 대중들은 특정한 계급이익을 옹호하는 집단, 대표적으로 수구보수 세력으로 지칭되는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으로 자신의 분노를 한정시키고 있다. 서울에서만 20만을 육박하는 대중이 결집했음에도 불구하고 87년 6월 항쟁과 같은 공권력과의 물리적 충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은 이번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다분히 체제내적 항의시위의 성격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에게 기인하는 것이다. 탄핵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참가한 세력과 대중들의 의도가 어떤 것이든 ‘탄핵반대 민주수호’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판적지지 이상의 정치적 귀결을 낳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촛불집회에 참가한 민주시민들은 어째서 자신의 직접행동을 지배계급 전체에 대한 반대와 타도로 향하지 못했는가?
탄핵국면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가 부르주아 의회전반에 대한 불신,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극도의 염증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친여권성향의 체제내적 항의시위로 변질된 원인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들의 환상과 이러한 체제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는 지배분파들의 정치적 노련함에 있다.S
집회를 주도한 거의 모든 세력들이 합의한 ‘민주수호, 탄핵반대, 수구척결’이라는 슬로건이 대중적 정서를 반영함과 동시에 대중들이 가진 정치조건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열망을 가장 부르주아적이고 소극적인 형태로 제한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대중들은 이번 총선에서 기존 의회의 다수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제2당으로 물러나는 것으로부터 근본적 변화에 대한 환상을 품게되었다.
그러나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예상대로 원내 1당이 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이라크 파병과 FTA국회통과(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정책적 공조)를 반추하지 않더라도 이번 총선에서 각 당의 공약을 놓고 어떤 것이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의 것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탄핵에 반대했던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미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의회질서를 거부할 수 없다는 의식상의 한계가 대중들의 반대행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 내에 한정시키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이미 발생하면서부터 이러한 환상을 대중들에게 심어주었으며 결정적인 국면마다 선거나 제도변화를 통해 대중들의 불만을 의회질서 내로 흡수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냈다.
그래서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을 때마다 ‘오늘은 권력을 이 손으로 내일은 저 손으로’ 옮겨가면서 자본가 권력이라는 지배적 위치를 영속화하고 있다. 현재의 탄핵국면에서 보여지는 열린우리당의 모습 또한 대중의 불만을 자신의 지지행위로 조직하는 놀라운 능력으로 표출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어떠한 대안과 정책, 어떠한 대중행동일지라도 결국 지배계급의 이해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꽁무니주의의 준동
‘다함께’ 류가 주장하는 ‘비판적 지지론’이나 상당수 좌파가 동의하는 ‘국민(민중)소환제/국민(민중)발의제’의 근본적인 기회주의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확인된다. 두 입장은 상대적으로 전투성의 정도와 투쟁의 방향성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부르주아 체제질서를 실천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과 그로부터 계급대중에게 끊임없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진보’의 가면을 뒤집어 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좌익적 이중대’에 불과하다. ‘다함께’는 이번 탄핵국면에서도 황당한 ‘위기론’으로 치장된 ‘탄핵판 비판적 지지론’을 부활시켰다. 한편 ‘국민(민중)소환제/국민(민중)발의제’ 지지자들은 ‘국가기구의 민주화, 민주주의의 무한 확장을 통한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이행’이라는 전형적인 유로코뮤니즘으로 자신의 생사활로를 찾고자 한다.
이들은 노동자 계급이 현재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을 깨고 스스로 권력의 주체로 서는 문제를 ‘단계론’과 '부르주아 체제의 점진적 개혁'으로 변질시켜 버렸다. 이들에게 노동자 권력과 대중의 혁명적 전진은 언제나 과도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들의 입장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언제나 불충분하고 언제나 미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권력은 언제쯤 가능한가?
100년이든 1000년이든 가다 보면 언젠가는 될 것이다. 대중투쟁이 급진적이든 체제내적이든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대중 의식보다 조금 왼쪽에 있는 전술을 제시”해주면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입장은 권력쟁취를 위한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정신을 거세하고 혁명의 문제를 먼 미래의 신기루로 돌리는 ‘대기주의’, 계급운동을 부르주아 운동의 ‘꽁무니’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탄핵국면이 노동자계급에게 일러준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스스로 걷어 버리지 않고서는, 그래서 지배계급과 여타의 기회주의적 소부르주아 세력으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권력투쟁을 수행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변화의 단 첫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다는 점이다.
2004년 4월 14일
새로운 계급주체의 네트워크 <사회주의노동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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