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나. 누가 ‘의회 민주주의 승리’라고 했나. 누가 ‘정의로운 힘’의 승리라고 했나.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 대통령권한을 정지시킨 ‘국회의 지배자’ 야당이다. 승자는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쓴다. 그들은 자신의 승리를 그렇게 기록하고 싶은가. 좋다. ‘당신들은 이기고 국민들은 졌다.’ 당신들은 나라를 구했고, 국민들은 나라를 잃었다. 당신들은 의회를 살렸고, 국민들은 의회를 잃었다. 당신들은 정의를 얻고, 국민들은 정의를 잃었다.
야당과 국민은 지금 다른 공간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상호 소통할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야당과 국민간에 사고방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한 시민은 “주권을 잃은 기분”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국민은 국회가 대통령을 쫓아내라고 위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회와 야당은 자기권력의 근원인 시민사회로부터 뿌리뽑힌
존재, 부유하는 존재가 틀림없다. 사실 야당은 정처가 없다. 낡고 부패하고 무능한 야당의 생존을 위해 어디가서든 무슨 일이라도 하는, 그런 ‘자유로운 결사체’이다.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본게 한번도 아니고, 두번도 아니고, 세번도 아니다. 너무도 수없이 보아서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야당이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을 정도이다. 일심단결하여 비리의원의 체포동의안은 부결시키고, 감옥에 있는 의원의 석방동의안은 가결하고 대통령은 탄핵소추한 이들이 모두 같은 집단이다.
야당지배의 16대 국회는 아직 사망하지 않았다. 사실상 집권세력으로 올라선 국회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내친김에 개헌을 할 수도 있다.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야당은 한 목소리로 고건 대통령권한 대행의 국정운영에 협조하겠다며 국정안정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떠받드는 ‘집권야당’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국민 저항을 받아서일까, ‘과도정부’를 잘 지도할 자신이 없어서 일까. 최병렬 한나라당대표는 “국민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이 불안해하고 위기를 느끼는 대상이 있다면, 그 것은 국정이라기보다 기성 정치 그 자체이다. 국민들은 성숙해졌다. 생각만큼 불안감이 크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심의해야 한다”면서 대행체제를 연장하려는, 조순형 민주당대표와 같은 ‘유통기한이 종료된 야당’이 앙시앙 레짐(구체제)을 최대한 연장해서 꾸며낼 일에 더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야당에 대한 불신이 곧 노무현정부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이 지지를 상승시키고 결국 선거도 유리해졌다고 믿을 것이다. 총선에 유리한 환경을 위해 여야대결을 원했고, 그 대결상태를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탄핵소추를 피하지 않은 이가 노대통령이었다. 야당은 야당대로 반노세력의 결집을 위해 정면대결에 나섰다. 오늘의 파국을 국민은 원치 않았지만,
정치인들은 모두 원했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의 분노는 야당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헌재판결은 정치적 판단과 다를 것”이라고 발언을 하는가 하면, 해군사관학교에 가서는 “내년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노대통령은 헌재판결이 날 때까지 자숙하는 게 마땅하다. 노대통령 주재의 국무위원 간담회에서는 일부 국무위원이 대통령에게 공연이나 영화를 보러 다니라며 농담까지 하며 희희낙락했다. 국민들은 아직
그런 농담을 들을 기분이 아니다. 표계산으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국민의 기분은 여전히 더럽다.
야당 뿐 아니라, 대통령, 국무위원, 여당 모두 숨죽이고 국민들의 한숨과 탄식, 분노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자성해야 한다. 사실은 당신들 모두 패자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졌다면 당신들도 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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