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동권연대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26일 최옥란열사 추모문화제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연행, 해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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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의 박래군입니다. 여기에 처음 글을 써보려고요. 최옥란열사 추모제 이틀 참가기를 정리되지 않은 채로 끄적여 보았습니다.
향불도 피우지 못한 최옥란 열사 2주기 추모제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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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4.20 장애인차별철폐투쟁기간 선포식을 가졌다. 장애인이동권연대를 중심으로 장애인단체, 인권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광범하게 결합한 투쟁기획단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는 아니었다.
그날의 낮 집회는 경찰에 신고한 집회였고, 따라서 지금의 개같은 집시법에 의하더라도 분명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집회였다. 하지만 경찰은 신고사에 기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대 재료들을 빼았고, 장애인들이 장시간 앉아서 있을 요량으로 가져온 소파와 메트리스 등의 집기와 최옥란 열사 추모제에서 쓸 용품들을 집회 대오를 침탈해 강탈해갔다. 신고서는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을 신고하는 것이지 일일이 무슨무슨 물품을 쓸 것이므로 허락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정 문제가 있으면 집회장 밖에서 잘 관찰하다가 집회가 끝난 후 사법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도 온당한 처벌이 아닐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광화문 촛불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도 그 현장에서 강제로 해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집회라는 것은 머릿수가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를 강제해산하려 하다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고, 여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을 것이니 경찰이 몸 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소규모의 집회의 경우 경찰은 거의 이성을 잃는다. 중요한 것은 위로부터 '찐빠'를 먹지 않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시를 받드는 충정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2.5톤 트럭 가득한 물품들을 빼았았다. 경찰은 장애인들이 이날부터 4월 20일 장애인의 날까지 노숙농성을 그 자리에서 하려는 것을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자리를 못 잡게 하려 했다. 그렇지만 합법적인 집회를 침탈한 것은 분명 불법이다.
나는 그 자리에 오후 6시 30분경 참석했다. 민가협 총회에 참석하였다가 늦었던 고로 최옥란 열사의 추모제가 이미 시작되었거니 생각했다. 그렇지만 낮의 경찰의 불법 침탈과 여전히 야간의 집회는 허용할 수 없으며, 신고되지 않은 불법집회이기 때문에 해산하라는 강압으로 인해 행사는 진행되지 못했다.
전경들이 언제라도 쳐들어올 기세로 백여명 남짓한 대오를 둘러치고 있는 살벌한 상황에서 7시를 넘겨서야 겨우 추모제는 시작되었다. 자꾸 경찰은 증원되고 최옥란 추모사업회에서 준비한 비디오를 상영하고 있는 중에도 경찰은 즉시 해산할 것을 경고했다.
전노련 의장의 추모사에 이어 노래공연 이 이어졌고, 민중가수 류금신 씨의 노래가 끝난 뒤 경찰은 드디어 추모제 행사장에 들이닥쳐 벽을 쳤다.
강제진압을 위한 준비작업은 이로써 완료되었다. 오후 8시경 대오 속에서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가 마이크도 없이 나서서 온몸으로 저항할 것임을 선언했다.
"경찰은 단순해서 오늘 우리가 촛불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추모제고, 문화제라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잡아가라고 하십시오. 그래도 우리는 다시 모일 겁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칠 테면 치라는 그 선언이 있은 지 20여분이 지나자 경찰은 먼저 비장애인 남성들을 경찰 버스에 사지를 번쩍 들어 실어 올렸다. 다음에 여성 비장애인, 장애인 순서로 그렇게 경찰 버스에 실린 사람들은 모두 82명이었다. 장애인들의 휠체어가 나동댕이치고, 비명이 울리고, 장애인이 짓밟혀 부상을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팔을 꺾어!", " 씹새끼, 주둥이 닥쳐, 엄살 부리지 마!", "시발놈들 한놈도 남기지 말고 실어!"-그들에게는 장애인들의 버둥거림도 엄살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장애인들의 항변은 통하지 않았다. 9시 30분경 세종문화회관 앞 추모행사는 경찰의 폭력으로 짓밟혔고,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된 최옥란 열사의 추모제는 중단되었다.
2
나는 경찰버스에 올라타서 2시간 가량을 대기하다가 서대문 경찰서 수사2계로 넘겨졌다. 서대문경찰서 앞에서도 무려 1시간 30분을 기다린 다음이었다. 말은 직원들이 외근 중이라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린다지만 사실은 퇴근한 형사들을 불러모은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집에 가서 쉬다가 투덜거리고 나온 형사들이 우리를 반길 리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는 게 서로 좋은 게 아니냐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조사를 거부했다. 불법연행이므로 신원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 같으면 즉각 욕이 나오고, 강제로라도 지문 채취를 시도했을 텐데 위의 지침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였다. 밖에서는 면회를 와서 찾았지만, 우리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면회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회당의 한 친구는 전화 바꿔주지 않는 형사와 대판 붙었다. 거기에 한 녀석이 '죄인'들이 조용히 있지 않는다 해서 더 붙어 버렸다. 사과할 것과 못한다는 옥신각신 한 바탕이 조용한 경찰서에서 한밤중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빵과 우유를 사다 먹고, 다음날 새벽 1시경에는 누가 시켜주었는지도 모르는 밥을 먹고 있는데 새벽 2시 20분경에 신원만 알려주면 20분만에 내보내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긴가민가 했지만 그에 응해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이것도 찜찜한 것이었지만) 직업과 소속단체를 적어주고 나니, 학생들에게는 학년과 과를 적으라고 했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기다려 4시경 다른 사람들은 모두 훈방으로 나갔다. 나만 남고. 나는 5시 30분 즉심통지서를 받고 나올 수 있었다. 조서도 꾸미지 않은 채 자기들 멋대로 전력으로 일률적으로 구분하는 처분
방식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이게 절차적으로 맞는 것인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기실 나는 이번에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경찰의 불법성과 우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조서를 꾸밀 생각이었다. 그외에는 침묵하자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었던 것인데, 이런 나의 저항의지는 경찰들의 간편한 사건 처리방식으로 적용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훈방이 아닌 즉심이 나와 다행이다. 어차피 집시법 불복종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마당에 즉심에서 경찰의 불법성을 제기하고, 즉각적으로 즉심 결과에 불복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할 것이다. 싸움 거리를 만들어주었으므로 경찰서에서 있었던 불쾌한 감정을 조금은 누그러 뜨릴 수 있었다.
이 김에 경찰의 불법성을 정리해보자. 첫째, 관혼상제나 문화행사, 종교행사는 집시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경찰은 최옥란 열사의 추모제를 추모제가 아닌 신고하지 않은 야간집회로 불법화하지만 그것은 경찰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 효순이, 미선이 촛불추모제를 결국은 사법처리하여 그 촛불집회 주최자들 20여명은 구속, 수배와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일단 그 촛불집회를 못하도록 막지는 않았다.
결국 경찰의 전례로 보더라도 추모제를 신고하지 않은 집회라고 해서 불법화하고 현장에 경찰력을 투입, 강제해산한 것은 경찰의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가 아닌가. 둘째, 형평성의 문제다. 광화문의 야간 촛불집회는 불법으로 규정하고도 보장하고, 보호하고 있다. 그들 때문에 서울 시내 교통은 마비되고, 통행도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지만 경찰이 나서서 교통도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단지 소규모의 장애인들이 추모제이기 때문에 업수이 여기고 경찰을 들이밀어 탄압한 것은 아닌지. 오히려 장애인들이고, 소규모의 행사라고 한다면 아무리 현행 법에 어긋난다고 해도 보호해주어야 마땅한 것이다. 경찰은 이로서 강한 세력 앞에서는 한 없이 약한 모습을, 약한 세력 앞에서는 한 없이 강한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기껏 1백명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추모행사 하는 것이 무에 그리 큰 문제일 것인가. 사람 다니는 데 불편하지도 않고, 도로는 침범하지 않았는데도 그렇다. 설령 야간 노숙을 미리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경찰이 나서서 강제연행할 것까지는 없다. 노숙할 수 있는 것도 자유인데, 공공의 장소에서 몸 불편한 이들이 자신들의 생존과 관련한 문제를 갖고 노숙 좀 한다고 해서 폭력을 휘두르며 끌고 갈 것까지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다시 경찰의 누구의 편이며, 최옥란 열사가 왜 죽었는지를 온몸으로 알았다.
하나 더, 경찰서에 갔더니 형사들이 확인서를 디밀었다. 미란다 고지를 받았음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확인을 거부했다. 물론 경찰은 경찰 버스에서 미란다를 고지했다. 두 번이나 말이다. 그렇지만 미란다 고지는 현장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체포, 연행할 때 범죄사실이 무엇인지를 알리고, 그외 변호사 선임권이나 묵비권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 현장에서 연행할 때는 강제해산 명령 3번을 마이크로 떠든 것 외에는 없지 않은가.
경찰서의 밤은 지루했다.
3
3월 27일 토요일 광화문 촛불집회에 갔다가 궁금해서 세종문화회관으로 건너갔다. 전날 추모문화제에 참가하였다가 경찰서에 연행되어 즉심통지서를 받고 풀려났던지라 다시 저녁에 하는 추모문화제가 걱정되어서였다.
이날의 추모문화제는 억지로 억지로 마쳐졌다. 경찰은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인 1백 명도 안된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을 향해 행사 중에 2번이나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해산한다는 경고 방송을 했다. 저날 경찰들이 어떤 야만을 저질렀는지 아는 이들이라 일부 참가자들이 야유를 했지만,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사회자가 앞으로 나오라고 해도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종로경찰서에서 나온 위를 핑계대는 무전기를 든 정복과 사복 간부들은 빨리 끝내라고만 한다. 다행히 인권단체들의 궂은 마당에 빠짐없이 참석하시는 후덕한 이웃집 아줌마 같은 민주노동당 김혜경 부대표가 있어서인지 강제해산까지는 가지 않았다.
같은 시각에 광화문에서 종로거리로는 1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서 이미 경찰이 불법으로 결론지은 '촛불집회'를 흥겹게 진행하고 있었다. 경찰은 그 집회의 외곽에 경찰 버스를 세워서 교통을 막아주고 있었고, 전경들도 집회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배치했다. 불법집회임에도 누가 봐도 경찰은 집회의 성사를 위해 협조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6시까지 진행되었다는 수구세력들의 동화면세점 앞의 저질 집회 역시 경찰은 보호해 주었다. 그들은 친북좌익세력 척결이 최대의 구호였다. 그 전날 집회의 사회자가 대통령 영부인이 대학교도 나오지 않았다며 욕까지 해대서 말썽이 난 그 저질 집회도 보호하는 마당에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종로경찰서 간부는 인내할 시간이 없다는 말만 거듭했다.
"윗분들이 왜 자꾸 길어지냐며 추궁하십니다."
그날 추모제에는 전날 영정도 빼앗기고, 향로도 촛대도 빼앗겨서 초라하게 진행되었다. 현수막도 1주일을 준비해서 만들었다는 그 많은 만장도 피켓도 모두 빼앗겼으니 몸만 갖고 치룬 행사였다. 최옥란 열사의 영정을 한 사람이 이동식 접이탁자 뒤에 들고 서고 그 위에 종이컵을 씌운 초에 불을 붙여놓고, 그리고 국화꽃도 아닌 보라색 붓꽃을 바쳤다. 최옥란 그의 영정 앞에 꽃을 바치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장애인들. 그들에게는 최옥란이라는 그 여성이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국무총리에게 반납하러 가다 경찰에 막혔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이 나라의 장애인의 현실을 절감하였다.
최옥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온몸을 던져 장애인들이 겪는 멸시와 차별을 증언했던 사람, "죽어서도 차별 받는" 그의 영정 앞에서 사지를 뒤트는 그들은 자리를 지켜냈다. 그들은 4월 20일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고 했다. 구로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받는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를 면회하고 경찰에 항의하기 위해 그들은 그 자리를 휠체어 끌고, 목발을 짚고 떠났지만, 내일은 다시 모이자고 했다. 다행히 박경석 대표는 불구속 입건으로 이날 밤늦게 풀려났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난 하나 다짐을 한다. 내년 최옥란 열사의 추모제는 인권단체들이 앞장서서 세종문화회관에서 하자는 것이다. 그것도 야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모아서 성대하게, 비장하게 치루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할 일은 그녀가 3월 28일 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반드시 이번 사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찰의 자의적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집시법을 반드시 개정하든지 폐기하는 투쟁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킬 장애인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비장애인들의 투쟁이 장애인 차별 철폐를 앞당기는 희망임을 난 믿는다.
(덧붙여서 하나 세종문화회관 돌기둥에 똥칠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세종문화회관 직원들이 나와서 한다는 말은 겉으로는 장애인들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한 것은 거기가 문화행사가 열리는 곳이므로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이었다. 노란색 선 밖으로 나가달라고 하고, 큰 소리로 하지 말라고 하고. 저 고고한 문화만 문화인지 아는 세종문화회관의 입장에서 보면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경찰에 떨면서 치루는 초라한 문화행사가 우습게 보일 터이지만 내게는 장애인들의 이 행사가 그 안의 화려한 무대에서 벌이는 그 썩은 문화에 비해서 백번 천번 더 소중하게 생각된다. 문화를 전문가들의 소유물로 착각하는 것들에게는 장애인들이 이 행사를 준비 하기 위해 흘린 땀방울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말로 설득시킬 수는 없다. 거기에 시골의 똥간의 푹푹 썪은 똥을 끼얹고 싶은 심정이 속구치는 것은 나만 그랬을까. 문화가 권력 가까이에 있을 때 그 문화는 이미 죽은 문화다. 민중들의 자발적인 창의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동감 있는 그 문화가 진짜 문화다. 더욱이 자신들의 생존권, 인권을 알리고자 만들어낸 문화양식이라면 아무리 초라하고 서툴다 해도 애정을 갖고 키워줘야 한다. 이틀에 걸친 최옥란 열사 2주기 추모문화제는 그래서 더욱 소중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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