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발의권, 국민소환권 쟁취를 위한 네트워크 ( http://www.democracy.or.kr )에서 퍼옵니다. 만일 가능하다면, 운영진께서 이 글을 메인화면에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주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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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식 (2004-04-02 03:34:10, Hit : 2, Vote : 0)
인터넷신문 [참소리] 기고
국민발의권 쟁취 운동의 정당성을 알리는 글을
전북 인터넷 대안신문 참소리(www.cham-sori.net)에 기고했습니다
[참소리는 부안 핵반대 투쟁 당시 현장취재로
군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았던 매체입니다].
본문 뒤에 자료 두 개를 붙였는데, 하나는 <국민발의권, 국민소환권> 개념을 간단히 적은 것이고,
다른 것은 <인권운동사랑방>이 작성해 이 곳 <질문과 답변>에 올려져 있는 글입니다.
동지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급하게 썼습니다.
지금 새벽이니까 낮에는 [참소리]에 올라가 있으려나...
비판받을 내용이 낳을 겁니다. 마구 해주세요.
그럼 열씨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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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손으로 더 많은 민주주의를!
- 국민발의권 운동을 제안한다.
정치에 대해서 지금만큼 환멸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정치인들로부터 지금만큼 농락당한다는 모멸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나는 "혹시는 슬퍼도 하고 혹시는 울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젊은 새의 꿈은 항상 날음에 있"다는 어느 시인의 격려를 상기할 줄 알았던가? 지혜와 정열을 모두 저당잡힌 채로 좌표없이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지는 않았던가?
정치의 이중의 현실이 상기되어야 할 것 같다. 먼저 주권자로 일컬어지는 국민들은 정치의 언저리만 맴돌 수 있을 뿐이다. 현재의 정치제도 아래에서 주권자로서 국민이자 시민인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의 대표를 지지하고 간혹 선출하는 일일 뿐이다. 이 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열성적이고 능동적인 정치적 활동은 아마도 내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자의 보디가드를 자처하는 일일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신조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이해득실을 계산해 정치적 행보를 물먹듯이 반복해 바꾸어대는 정치인을 철새라 일컫는다. 그렇다면 그와 흡사한 의미에서 나 또한 국민으로서 정치에 대해 철새가 아니었던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국민의 참정권 확대의 일환으로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는 국민발의권 운동에 대해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국민발의권 운동이 싹트고 있을 때 나는 국민발의권의 뜻이 무엇인지 차마 그 누구에게도 묻질 못했다. 내가 했던대로 야후, 네이버, 동아대백과사전, 국어대사전, 정치학사전을 지금 한 번 검색해보면 누구나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느끼는 정치의 두 번째 현실이다.
여기에 정치의 세 번째 현실을 추가하는 것이 현실 감각을 일깨우는 데 보탬이 될 것 같다. 내 입으로 반복하기에 끔찍한 그 현실에 대해 죄송하지만 다른 분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대신하려 한다. "이라크 파병, 굴종적 대미외교, 에프티에이 비준, 비정규직 확대를 청사진으로 건 노사관계 로드맵, 전자 독재 네이스 실행…. 노동자들이 못살겠다고 제 몸에 불을 사르고 죽어가고 청년 실업자와 반실업자가 급증하고 신용불량자 카드 빚으로 죽어나고, 거기다 대고 '분신은 투쟁의 수단이 아니라'는 야만적 발언을 일삼고, 대책은 내놓지도 못하면서 부정부패나 저지르고, 부정부패 들통나니까 재신임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헌법에도 없는 정치 쇼를 벌여서 국민들을 위협하고, …끝이 없어요 끝이."
이것을 막으려면 물론 노무현 지지하는 것으로 안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른바 진보정당을 선호한다. 구체적인 투표행위 또한 별다른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진보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표현할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지지정당과 지지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자유이고 권리다. 그러나, 좀 더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도 안 된다. 진보적인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와 별도로, 정치를 의회, 그리고 행정부와 사법부 등 국가기구 안으로 제한함으로써 국민을 정치의 영원한 소외의 대상으로, 정치를 국민의 영원한 환멸의 대상으로 붙박아두어서는 안되며, 시민이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또 다른 정치적 운동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국민의 정치적 권리가 참정권에 제한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요구(그런 것이 있다면)만이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할 특권을 갖는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같은 뜻에서 가장 직접적인 민주주의만이 올바른 해결책으로서 특권을 갖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또한 회의적이다. 그러한 주장은 목표와 수단을 혼동한다. 근본적인 지향에 행동의 선택 문제를 대질시키기 때문이다.
국민발의권 쟁취라는 운동은 의미심장하다. 진보정당 지지가 결국 정치에 대한 국민의 소외를 연장하는 한계를 갖는 것이라면 국민발의권 운동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 안에 있으면서도 정치를 그 외부로 확장하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관건은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과 대중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 정치라는 이중의 정치 현실을 대중이 자주적으로 극복해나가느냐 여부의 문제다.
인권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말은 한 위대한 페미니스트의 말을 본따 "인권은 스스로 쟁취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국가가 국민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교육해야 한다"고 했던 한 위대한 사상가의 말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누가, 국민 누가 국가를 교육한다는 뜻이지?" 물론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줄 아는 국민들이다. 국민들이 직접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최소한의 제도가 국민발의권이다. 그리고 그것을 요구하는 운동이, 같은 말이지만, 국민발의권 쟁취 운동이다. 우리는 사회 민주화 운동이라는 대의 앞에 다시 한 번 결집해있다. 우리가 결국 요구하는 것은 국민발의권 자체라기보다는 인권과 민주주의다. 더 많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의 새로운 윤리를 창출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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