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 반동/ 심약한 교수들의 넋두리
1.
교수들의 "테르미도르 반동"이란 어휘 선택이 이 글의 전반적인 흐름을 지시하고 있다. 테르미도르 반동은 부르조아 민주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반동이었는데, 지금의 탄핵을 그렇게 본다는 것은 노무현 정권을 부르조아 민주주의로 설정하면서, 한민당을 봉건적 세력으로 규정한다는 것인지........
오히려 탄핵을 부르조아지 내부의 권력 갈등으로 표현하는게 옳바를 것인데, 굳이 테르미도르 반동이란 어휘를 선택한 것은 교수들의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2.
아마도 교수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다음의 말일 것이다.
"현재의 민중탄핵론은 부르주아 계급과 중간 계급의 개혁성에 대하여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 주시하다시피 참여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어 받으면서, 정치개혁, 언론개혁을 진행하였다. 지금 정세는 참여 정부의 정치개혁으로 지역주의, 보스를 중심으로 한 사당정치가 위협받게 되면서 수구보수세력이 대통령 탄핵을 통해 반동적 공세를 취한 것으로 보아야한다.
물론 참여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된 기조로 설정하였고, 중간 계급이 손해보지 않는 방식으로 개혁을 진행하였다(예컨대 소액 주주 운동 등). 노동계급 내에서도 분열 정책을 통해 일부는 덕을 보고 일부는 피해를 보았으며,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등이 최대의 피해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애초에 부르주아 개혁, 또는 소시민적 개혁의 한계가 아니었는가."
즉,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중간계급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그리고 노동계급내 상층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아마도 자본의 황금기때 서구사회에서 보여지던 그러한 성격의 권력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가 지금 우리가 코포라티즘을 경과하고 있는가? 모를 일이다.
이게 교수들의 가장 하고싶은 말이었고, 또 가장 치명적인 오류일 것이다.
부르조아 내부의 권력다툼은 그 구체적 양상이 소위 매파와 비둘기파로 표현되는 미국의 공화, 민주 양당으로 표현되든, 쿠데타로 인해 장면 정부가 너머지고 혹은 박정희 정부가 무너지는 양상으로 표현되든, 그것의 성격이 부르조아 내부의 권력다툼임은 분명하다.
"정치적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보다 많은 민주주의가 항시 중간계급의 요구가 되어 오지 않았는가"
교수들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자본이 자기의 위기를 세번이나 모면하면서, 신자유주의로 접어든 지금에 "중간계급"이 어떤 양태로 존재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며, 또 존재하는 그 중간계급이 현실의 역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한 궁금할 따름이다.
아마도, 교수들은 자신들과 같은 많이 배운 심약한 전문직 고소득 종사자들을 중간계급으로 설정하고 있고, 또 이들/자신들의 요구의 정당성과 중요함을 애써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3.
"개혁적 부르주아지와 중간계급의 개혁성이 한계가 있다고 이를 반대함으로써 사실상 그 사회의 수구보수 세력의 이해에 기여할 경우, 주창자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 사회의 가장 반동적 계급의 이해에 복속하게 되는 사태를 초래하는 것이다.
맑스는 이러한 경우를 반동적 사회주의라 불렀다. 또한 정치투쟁은 노동자 계급의 동력만으로 혁명을 완수할 수 없는 한 각 계급들간의 연합/연대전술이 필수적이다. 소위 "민중탄핵"을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정세에서는 결코 현재 의회탄핵과는 다른 구체적 대안, 정치적 절차를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설사 그것이 실제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노동자들의 힘만로 이루어 질 수 있는 혁명을 의미하지 않는 이상 타계급과 동맹/연대/연합을 해야 탄핵가결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때 나마 그 교수들의 글을 읽고 공감을 느끼던 시절이 어느듯 과거사가 되었음을 지독히도 실감케 하는 귀절이다.
"개혁적 부르조아지와 중간계급에 반대함으로써 사실상 그 사회의 수구보수 세력의 이해에 기여할 경우....가장 반동적 계급의 이해에 복속하게 되는 사태...." 이 말은 내가 운동을 처음 접하던 87년 그때 이미 비판적 지지론으로 드러났고, 92년, 97년에 글자 하나 변하지 않고 동일한 이름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또.....02년 대선을 지나 415총선 전야에 과거의 좌파교수란 사람들의 입에서 조금도 더 세련되지 않는 말로 나타난다.
아마도 중간계급의 성격을 "동요하는"이라 표한 늙은 혁명가들의 지적이 이렇게 새삼스러울 순 없다......늙은 사람 무시하지 말자!!
그래서 어쩌면 이 교수들의 이 성명서는 자신들의 계급을 찾아 회귀해가는 한 중간계급 무리들의 자기 선언일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제발 그 성명서에서 맑스의 이름은 빼줘라...맑스가 무슨 죄가 있냐?
4.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스스로를 탄핵반대 대중운동과 분리시킴으로써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 또 투쟁속에서 이 운동을 실질적으로 지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구체화된다."
대중운동과 함께 해야하는게 좌파의 혹은 노동운동의 숙명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중운동이라는 것에 대한 판단은 전제되어야 한다.
지금의 탄핵반대 대중운동의 성격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중운동과 동일시 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류이다.
이미, 탄핵반대 대중운동은 노무현 정권의 개입과 총선국면 속에서만 판단이 가능해 졌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노무현 정권의 "대중동원"의 성격을 보다 짙게 띄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 곳에 모인 대중의 개별성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 개별성들은 파병반대 촛불집회에 참여했고, FTA비준에 반대했었고, 부안에 갔었고, 노동열사들의 죽음에 슬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 모인 대중은 그러한 개별성들을 소통하고 집산하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고,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의 성격이 지극히 노무현적이라는 것이다.
5.
"짜증이 납니다. 언니들 세명이 그만뒀습니다. 허울좋은 인사고과로 언니들 세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일을 하거나 잠시 지친몸을 쉬고 또 다른 생활을 이어가겠지요. 민중을 가장한 이들이 광화문을 뒤덮고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은 회사에서 짤리고, 감시당하고, 관리당하며, 또는 다른 곳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새로운 일에 의욕이 넘치기도 하고, 또 좌절하기도 하며, 그렇게 삽니다.
사실 전 촛불무리 근처엔 한번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어릴때부터 촛불은 산소를 태워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막힌 방에 켜두면 숨이 막히거나 불이난다고 배웠습니다. 지금의 수많은 촛불들이 세상을 밝힐 것인지, 더 많은 이들의 숨통을 막아버릴 것인지, 나는 모를수도 있습니다. 다만, 나는 정말로, 그들을 결코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호명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
내 홈피에 올라 온 한 후배녀석의 넋두리이다.
그렇다. 그렇게 모인 대중을 우린 민중이라 부르진 않는다.
우리의 적을 향해 지지의 의사를 보이는 그 대중은 한때 우리의 우회적인 동지였을 수도 있고, 또한 우리의 직접적인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의 정세를 파시즘의 도래전 상황과 유비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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