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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조로증 혹은 조숙증 (2004.6,11,)-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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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6월 13일 15시 14분 2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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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조로증 혹은 조숙증



기사돌려보기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민교협 상임공동의장


요즈음 인권문제를 국가보안법과 같은 시국사범 문제를 넘어 과거 같으면 인권문제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과 관련시켜 사고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 같은 경향 중의 하나가 희귀병이다. 희귀병은 그 피해자가 소수라는 이유로 치료제의 개발로부터 사회적 관심에 이르기까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생명권이라는 가장 중요한 인권이 침해를 받고 있는 경우이다.

어쨌든 이 같은 희귀병 중의 하나가 조로증(早老症)이다. 이 병은 정상보다 몇 배나 빨리 늙는 병으로 이 병에 걸리면 10살 난 어린애가 외형상으로는 50대 처럼 늙어 보이게 된다. 조로증이 외형적으로 빨리 늙어 버리는 병이라면, 정신적으로 빨리 늙는 병은 빨리 성숙해진다는 뜻에서 조숙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요즈음 민주노동당을 생각하면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이 조로증 내지 조숙증이다. 내가 민주노동당을 조로증 내지 조숙증과 관련시켜 생각하게 된 것은 민주노동당이 이번 총선 결과, 나아가 이후 계속 치솟고 있는 지지도에 힘입어, “2008년 제 1 야당, 2012년 집권”이라는 야심적인 프로그램을 내놓고 나서이다.

물론 5.16 쿠테타 이후 43년 만에,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진보정당이 원내진출을 한 것도 감격스럽기 짝이 없는데, 4년 뒤에는 수구세력인 한나라당을 제치고 제 1야당이 되고, 또 4년 뒤에는 열린우리당과 같은 개혁적 신자유주의세력을 제치고 제 1당이 되어 집권을 한다니 얼마나 가슴 설래이는 이야기인가. 그리고 브라질 노동자당의 노동자출신 룰라대통령의 승리를 생각하면 그같은 시나리오가 단순한 희망 사항이나 당원 사기 진작용 선동 문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2008년 제 1야당, 2012년 집권”이라는 프로그램은 조로증, 조숙증의 전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현재의 민주노동당의 실력으로 2008년에 제 1야당이 되고 2012년에 집권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핵심이 아니다.

설사 순수가정으로 2008년에 제 1야당이 되고 2012년에 집권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그것이 조로증, 조숙증에 대한 우려를 해소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조로증, 조숙증에 대한 우려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서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실력이 아니라 현 상황에서의 한국의 노동자, 민중, 그리고 국민들의 의식이다. 물론 정치교육사업과 선전전을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빨리 급격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날고 기는 교육사업과 선전전을 한다고 해도 2008년과 2012년에 현재의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국민이 제 1야당과 집권의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단언컨대 2008년에 제 1야당이 되고 2012년에 집권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고속철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부시의 푸들이라는 말을 듣는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보다 더 우측으로 우경화 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의 열린 우리당화(열린 노동당?)을 완성하는 방법밖에 없다. 즉, 민주노동당이 자발적으로 조로증과 조숙증이 걸려 서구의 진보정당들이 100여년에 걸쳐서 우경화한 거리만큼을 4년내지 8년동안에 초고속으로 압축적으로 우경화하는 길밖에 없다.

다시 말해 “2008년 제 1야당, 2012년 집권”이라는 프로그램은 민주노동당이 대중 추수적인 득표 제일주의에 매몰되어 8년 내에 진보정당이기를 포기하고 제 2의 열린우리당, 열린 우리당보다 약간 강한 개혁적 자유주의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 다름 아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민주노동당이 2008년에 제 1야당이 되고 2012년에 집권을 한다면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진보성이 사라져 민주노동당이 존재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반증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를 또 다르게 표현한다면, “2008년 제 1야당, 2012년 집권”이라는 프로그램이 우려스러운 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아예 불가능하다고 느끼면 자신의 정체성이라도 지키고 있을 턴데 가능하다는 생각이 민주노동당을 표를 위해 영혼을 파는 정치적 파우스트로 만들 것이 불을 본 듯 훤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21008년 제 1야당, 2012년 집권”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민주노동당이 당분간은 영원한 원칙있는 10%정당, 20%정당으로 남아 있기를 꿈꾼다. 이 같은 불온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나 하나뿐일까?


2004년06월11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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