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평가 지점(3) - 반자본과 총선
운동 진영은 좌우 세력에 따라 강조점은 다를 수 있지만 반자본을 승인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이론적 강령적 인식에서부터, 자본주의로부터 비롯되는 모순과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는 맥락까지 주장들은 다양하다.
반자본이라 했을 때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한다는 이념, 사상적 측면에서의 반자본이다. 이는 사회주의, 또는 노동해방 등의 기치로 표현되곤 한다. 둘째는 자본운동에 반대하는 노동자 민중의 실천으로서의 반자본이다. 이 경우 대개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등과 같이 실천 방향과 노선으로 표현되곤 한다. 셋째,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립을 이야기할 때 사용되는 반자본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맥락에서 자본측, 사측에 반대하는 공세적 표현으로 곧잘 등장하곤 한다.
그렇다면 총선이 있기까지 운동 진영이 반자본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했는가? 좌파운동 진영은 대개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반제, 반전 등으로 반자본에 대한 실천적 입장을 피력해왔다. 탄핵 국면에 있어서는 민중탄핵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이는 반신자유주의정권의 의미를 담는 것이었다. 한편 '반신자유주의 전선'에 대한 문제제기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전선의 약화 흐름에 대한 지적으로 정치조직 운동의 우경화와,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의 실리적 경향이 커지는 데 따른 위기감의 표현이다.
민주노동당은 총선 공간을 통해 기치와 실천방향 차원이라기보다는 정책적인 방식으로 반자본을 표현하였다. 가령 "부자에게 부유세, 가난한자에게 복지" 등과 같은 슬로건이 그러했다. 사민주의적 정책으로 회자되는 이러한 유형의 정책도 큰 틀에서 보면 반자본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총선 공간에서 반자본에 대한 내용적, 실천적 제기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노동당이 정책적으로 표현한 것들은 광의의 측면에서 반자본에 포함되지만 그 자체로 노동자 민중운동의 반자본 실천방향과 내용을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체할 수도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며 대중적인 소환제, 발의제를 제기한 것도 반자본의 내용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실천이었지만 형식 차원에서만 보면 제도개선의 의미가 큰 것이었다. '민중행동'의 실천에 대해 거론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선전전 한두 번 한 것이 전부였다고 볼 때 점수를 매기기는 곤란하다.
지금 총선 평가 잣대의 한 지점으로 '반자본'을 상정하는 의미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선은 명백히 부르주아정치위기의 수렴 공간이자, 부르주아정치질서 재편의 틀이다. '보수'와 '개혁'은 총선을 거치면서 화려한 자기변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의 대립점들, 위기를 심화하는 쟁점과 사안들을 총선을 거치며 매끈하게 소화하였다. '보수'와 '개혁'간 경쟁의 틈바구니를 뚫고 '진보'가 자리를 잡긴 했지만, 이 '진보'가 노동자 민중운동이 걸어가야 할 반자본의 총체적인 실천방향과 노선에서 일정하게 격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진보라는 점을 정확히 짚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전선으로 표현되는, 오늘날 자본운동의 경향에 반대하기 위한 노동자 민중의 실천에 대한 총체적인 전망을 세우지 않고 '진보'가 그것을 대체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명백히 지배계급들은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위한 권력의 재생산에 몰입할 것이며, 이에 치명적인 저항이 없는 한에서 '진보'를 수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의회 안에서 '반자본'을 제기하고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실천을 북돋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지 않는 것 역시 '진보'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총선은 끝났고, 지배질서는 재편되었다. 동북아경제중심을 추진하는 자본은 안정적이고, 지배계급도 총선 이전보다 훨씬 안정되어 보인다. 지금 자본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노동자 민중들이 반자본의 거시적 방향 설정과 구체적인 행보는 어디를 행해야 하는가.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전통을 잇는 일과, 의회 안에서의 '진보' 투쟁의 전통을 마련하는 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반자본' 운동으로 승화시킬 방안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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