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3월 26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 홀에서 열린 범국민행동 주최의 국민대토론회 발제문입니다. 각주는 괄호 안에 처리하였으며 표 2개는 생략했습니다. 원문은 첨부한 한글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another0415)
한국민주주의와 탄핵정국 - 탄핵정국의 성격과 과제
조희연(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1. 탄핵국면의 성격--민주주의 최저선의 침범에 대한 국민적 저항
이른바 '탄핵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탄핵정국은 2004년 3월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된 이후의 국민적 저항이 표출되고 있는 국면을 지칭한다. 탄핵이 국민들에게 무리없이 수용되었더라면, 그것은 탄핵정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법리적 판결을 기다리는 국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탄핵정국은 이야기하는 것은 국회의 탄핵가결 이후 그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조성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탄핵정국은 국회 다수세력의 대통령 탄핵가결과 그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구성되는 정국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탄핵국면은 '87년 6월 민주항쟁이 설정한 민주주의의 최저선(bottom line)이 도전받는 상황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라고 본다.
87년 이후 절차적·제도적 민주주의가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여 있다고 느낄 때 '거리정치'로 상징되는 국민적 저항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80년대 이후의 민주화과정에서 거리정치는 바로 이러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여 있다고 느낄 때 부활하는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촛불시위는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성취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탄핵정국을 구성하는 두가지 기본적 측면이 있다. 그것은 첫째 '보수세력의 의회독점'이라고 하는--탄핵을 감행할 수 있는--객관적 조건이며, 다른 하나는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바와 같은 탄핵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다.
먼저 탄핵이라는 결과는, 탄핵을 감행할 수 있는 의회 내 보수세력이 다수세력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탄핵가결은 의회 내 보수세력의 연합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민주당을 단순히 보수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면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구(舊) 민주당(분당 이전)의 보수적 요소와 개혁적 요소가 분당(分黨)으로 분리되면서, 보수적 요소가 한나라당과 연합함으로써 탄핵을 감행하였다는 점에서 이런 분석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분당을 나는 구 민주당의 보수적 구성집단과 개혁적 구성집단의 분리의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개혁적 구성집단의 서투름이나 시행착오에 기인하는 점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보수적 구성집단의 비타협성에 기인해서 촉발되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개혁은 이념적 성격이라는 점에서 진보적 개혁집단이 아니고 자유주의적 개혁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진보적 관점에서는 자유주의적 보수라고 하고, 구 보수를 수구적 보수라고도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의회보수세력이 지배적 분파는 한나라당으로 상징되는 구 집권당이다.
보수세력의 의회독점은 미완의 6월 항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민주항쟁을 통해서 군부독재정권을 타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독재정권의 집권당이 여전히 의회다수세력으로 존재하는 상황이 극복되지 않은 상태로 지난 16여년이 경과하였다는 것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군부정권이 물러나고 87년 이후 사회적 민주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의 의회독점이라고 하는 미완의 정치적 민주화 과제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현실이었다. 국회가 상당히 민주화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정치개혁이 쟁점이 되는 것--예컨대 2000년 낙선운동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4년 후에 다시 낙선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바로 실질적인 의회권력관계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은데서 연유하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노태우 정부 및 김영삼 정부는 과거의 권위주의세력이 변형된 형태로 행정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국민정부는 의회권력은 여전히 보수파의 수중에 있으나 행정부 권력이 반독재 야당세력에 의해 점유된 것을 의미한다. 행정부 권력관계와 의회권력관계의 불일치가 현재의 탄핵을 가져오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탄핵정국을 구성하는 또다른 측면은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국민적 저항이다. 국민적 저항은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조성된 한국민주주의의 마지노선 혹은 최저선(bottom line)을 보수세력이 탄핵을 통해 침범·부정함으로써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최저선의 침범이 국민적 분노를 촉발하였던 것이다. 87년 6월 민주항쟁이 마련해 준 민주주의의 최저선은 단순히 80년대를 성인(成人)으로서 경험한 세대 뿐만이 아니라 20·30대까지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87년 6월 민주항쟁을 경험한 세대들은 어떤 점에서 거리에서 일상으로 복귀하여 있다. 이들의 민주적 비판성은 일상 속에 매몰되기도 한다. 87년 이후의 민주화의 과정에서 개혁주체세력들에 실망하기도 하고 생활 속에 찌들려 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87년 6월 민주항쟁이 자신들의 의식과 삶에 각인한 민주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한다고 했을 때 홀연히 그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거리로 나아오게 된다.
87년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로의 이행의 과정은 단선적인 과정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 과정은 개혁세력과 개혁저항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과정이었으며, 때로는 개혁세력들의 일탈과 부패, 시행착오로 얼룩진 과정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과정은 지그재그식으로 혹은 갈짓자로 전개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의회 내 보수세력이 주목하지 못하였던 것은, 87년 이후의 민주개혁을 둘러싼 갈등의 과정이 지그재그식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후퇴할 수 없는 최저선이 존재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80년대의 민주화투쟁을 정면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세대, 87년 이후 비(非)운동권으로 규정되는 집단들의 참여까지 나타나는 것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또한 이해관계를 달리는 여러 정치집단 간의 '정략'적 갈등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87년 6월 민주항쟁의 마지노선 안에 존재하여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탄핵국면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을 침범하였고 이것이 국민적 분노를 촉발함으로써 조성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 광화문 촛불시위의 현장에서, "나 이회창 찍었다니까""나는 노사모가 아니라니까요"라는 등의 문구를 보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2. 공론영역의 왜곡과 대안적 소통---탄핵정국의 매개적 요인
탄핵정국은 분명 정치적 보수세력의 의회독점과 탄핵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촉발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촛불시위와 같은 국민적 운동으로 전개되는 데에는 또다른 매개요인들이 있다. 어떤 이는 탄핵사건을 가르켜서 '정치적 보수세력의 자살골'이라고 표현하였다. 물론 탄핵이 감행되기 까지는 그것이 '정치적 자살골'이 될 줄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먼저 정치적 자살골에 해당하는 행위를 왜 정치적 보수세력의 독점적 지위를 점하는 의회에서 감행하였는가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여기에 나는 보수세력의 강렬한 위기의식과 그로 인한 보수세력의 능동화라는 요인과 그러한 능동화를 탄핵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나아가도록 만든 왜곡된 여론구조를 들고자 한다.
먼저 보수세력의 위기의식과 능동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87년 이후의 정치적 변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80년대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국민적 전개과정과 그 정점으로서의 87년 6월 민주항쟁은--정치세력들 간의 관계의 측면에서 보면--권위주의시대의 집권세력인 보수적 정치세력의 약화과정이며, 반독재민주화세력(중도자유주의적 정치사회세력과 진보적 정치사회세력)의 성장과 부상의 과정이었다. 사실 이 시기에는 권위주의적 독재세력의 '끝없는 추락'이 이어졌고 반대로 자유주의적 반독재민주세력의 '끝없는 부상'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참고로 나는 정치사회적 이념의 차원에서 현존하는 정치사회적 세력을 나눈다고 할 때 이를 보수세력, 중도자유주의세력, 진보세력으로 구분한다. 3정치세력이 존재하는 셈인데, 물론 이 각각에는 다시 내부 분화가 존재한다. 각 국면 마다에서 이러한 각 세력간의 상호관계는 부단히 변화하게 된다. 독재정권 하에서 독재적 보수세력이 한 쪽에 존재한다고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중도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으로 구성되는 반독재세력이 존재하였다. 87년 이후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는 중도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은 분화되게 된다.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일부(예컨대 YS)는 보수세력과 연합하는 방식으로 위치이전을 하게 되고, 후에 DJ는 집권세력으로까지 변화하게 된다. 노태우정부에서는 중도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이 연합하여 지속적인 민주개혁 요구투쟁을 하게 되는데, 김영삼 정부 하에서는 일부 중도자유주의세력은 집권세력에 포섭되기도 하고 일부는 진보세력과 연합하면서 민주개혁투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변화는 국민정부 이후이다. 국민정부 이후에는 반독재 중도자유주의세력이 집권세력이 됨으로써, 두가지 전선이 공존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구 보수세력과 집권 중도자유주의세력 간의 대립이 존재하게 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집권세력이 된 중도자유주의세력과 진보세력 간의 대립이 공존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도 이러한 전선은 동일하다.) 그러나 이러한 국면은 87년 6.29선언과 12월 대선을 거치면서 변화하게 된다. 87년 6월 민주항쟁은 독재체제를 종식시킨 사건이었으나 동시에 독재세력의 변형된 지배의 출발점이 되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양김의 분열로 인하여 반독재세력의 도덕적 정당성과 국민적 지지가 약화되고 이어서 12월 대선에서의 군부세력의 재집권으로 인하여 끝없이 추락하던 보수세력은 추락을 멈추고 끝없이 부상하던 반독재민주세력은 성장을 멈추면서 양 세력간의 교착상태가 조성되게 된다. 나는 이를 '헤게모니의 교착'이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바로 지역주의 정치질서였다고 생각된다. 이 지역주의를 우산으로 하여, 보수적 정치세력의 추락을 중지하면서 자신의 변형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며, 반독재야당세력은 야당의 지위에서 그러한 변형된 지배 속에서 진행되는 민주개혁의 불철저성을 비판하는 지위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교착의 시기는 10여여니 이어졌다고 생각된다. 97년 야당정부의 성립, 국민정부의 성립은 바로 이러한 교착의 균열과 새로운 해체를 의미한다. 교착상태가 균열되면서 보수세력의 위치재조정, 특히 하락이 나타나게 된다. 반독재야당세력은 집권당에 이를 정도로 성장을 하게 된다.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은 바로 이러한 지역주의의 균열 속에서 새롭게 자기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나타나는 위기의식이라고 생각된다. '잃어버린 5년'에게 보수세력에게 크나큰 상실감을 가져다 주었고 위기의식을 증폭시키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과 변화의 속도는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상대적으로 덜 격렬하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러한 과정이 격렬하고 속도가 빠르게 진행됨. 이것은 김대중 정부는 구정치--지역주의와 부패정치--로부터 상대적으로 덜 자유로왔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단절적 집권은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노무현의 독특한 캐릭터와 결합되면서--변화가 보다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새로운 국면에서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은 이전에 비해 대단히 크게 나타나게 된다. 잃어버린 5년에 더하여 잃어버릴 5년을 생각하면서 더큰 상실의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수세력의 능동화'가 나타나게 된다. 과거에는 집권세력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포용적' 자세를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탈권력화'했다고 하는 생각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의사표현과 능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3·1절 집회와 8·15집회에서의 보수세력과 개혁·진보세력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는 것이 이를 상징한다. 과거 개혁·진보세력은 일상적으로 저항집회를 해왔던 점에 기초하여 본다면, 보수세력이 거리로 나선 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위기의식 만으로 탄핵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새로운 요인이 작용하게 된다. 즉 공론영역의 왜곡으로 인하여 '왜곡된 여론'이 '실제의 여론'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요인이 존재한다. 의회 보수세력이 보수적 언론(미디어 보수세력)이 형성해놓은 왜곡된 여론에 기초하여, 탄핵을 하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탄핵을 감행하였다고 나는 판단한다.
공론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언론이다. 나는 이러한 공론 영역의 왜곡이 정치적 보수세력으로 하여금 탄핵과 같은 자충수를 두도록 하는 판단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사실 언론은 87년 이후의 민주개혁의 세례를 받지 못한 최후의 성역으로 남아 있다. 언론 자신이 보수세력의 중요한 일부로서 전반적인 위기의식과 능동화를 공유하고 이에 따라 행위해 왔다. 여기서 미디어 보수세력의 능동화는 통상적으로 집권 초기 1년여 동안 존재하는 정부-언론의 밀월관계 마저도 포기하고 적극적으로 부정적인 능동적 보도를 통해서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행태로 나타나게 된다. 즉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왜곡된 보도를 하게 된다. 지난 1년이나 국민정부의 전기간을 걸쳐서 보수적 언론은 능동적으로 부정적인 보도를 통해서 여론을 보수적인 방향으로 동원하게 된다. 때로는 의회 보수세력과 미디어 보수세력은 파트너쉽을 형성하여, 여론의 보수적 동원을 위해서 협력하기도 한다. 예컨대 의회 보수세력이 제기한 쟁점을--그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확대보도하는 방식으로 미디어 보수세력이 협력하거나, 미디어 보수세력이 제기한 쟁점을 의회 보수세력이 정치쟁점화하는 방식으로 통해서 상호협력하게 되는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국민정부 이후 집권개혁세력에 대한 다양한 진보적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미디어 보수세력은 이러한 진보적 비판까지도 여론의 보수적 왜곡에 동원하게 된다. 국민정부나 참여정부의 개혁의 불철저성과 한계성을 비판하고 그것의 진보화를 촉구하는 비판 조차도 집권세력의 비판에 활용하면서 부정적인 여론을 확대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적 미디어의 왜곡된 보도를 통해서 형성되는 여론이 실제의 여론과 상당한 괴리를 갖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회보수세력은 미디어 보수세력에 의해 확장된 왜곡된 여론을 '실제의 여론'으로 간주함으로써 탄핵과 같은 선택으로 나아가게 된다. 심지어 의회보수세력은 미디어 보수세력의 탄핵추동 보도에 고무되었다고까지 표현할 수도 있다.(광화문 시위 때 뿌려진 한 패러디신문(주간 패러디신문 '봤데이' 제1호, 2004년 3월)에서는 '조중동은 노무현의 스파이??"라는 글을 싣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대선 패배의 길로 이끈 가장 큰 요인은 '조중동의 허위사실 유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속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유발하게 하여 정확한 선거전략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언론 3사가 거의 똑같은 논조로 매일같이 쏟아내는 노무현의 실정과 실수와 실언--과연 누가 믿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나라당과 지지자들은 조중동의 말을 감쪽같이 또한번 믿어버린 것이다"라는 취지이다. 이는 '냉소적인' 글이기는 하지만, 탄핵국면에서 의회보수세력이 실제의 여론과 괴리된 '가상의 여론'에 의해 탄핵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는데에 보수적 신문언론이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미디어보수세력이나 사회적인 보수세력은 일찍부터 선거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탄핵의 당위성을 역설하여 왔다. 문제는 비판으로서 탄핵을 거론하는 것과 실제로 탄핵을 결행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탄핵은 분명 국회 내의 정치적 보수세력이 감행한 사건이지만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미디어보수세력에 의해 여론이 왜곡되었다는 것이고 그 왜곡된 여론을 실제의 여론으로 간주한 과잉공세가 바로 탄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탄핵사건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우리 사회의 공론영역의 왜곡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된다.
공론영역의 주요기구들이 보수적 신문언론들이 시민사회의 여론분포 보다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서 지속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공론영역에서 시민사회의 여론이 '정상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적어지게 된다. 예컨대 200년 6·15정상회담에 대해서 퍼주기라던가 각종 비판들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이에 대한 비판들이 거의 없다. 이는 당시에 보수언론들과 의회보수세력들의 '정략'적 판단에 의해서 6·15정상회담이 쟁점화되었으나 이제 퇴임 이후에는 쟁점화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현단계 한국의 공론영역은 보수적 신문언론과 의회보수세력에 의해 특정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고 나는 판단한다. 이러한 공론 영역의 정상화는 보수적 신문언론의 논조가 변화하던지 아니면 그 논조에 영향을 받는 국민들의 수가 적어지거나 하는 방향으로 정상화될 것이다.
다음으로 탄핵과 같은 행위가 어떻게 국민적 저항을 촉발할 수 있었는가. 탄핵 당일 정치권에서는 '의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평가와 '민주주의의 학살'이라는 두 견해가 대립하였다. 그러나 하루밤이 지난 후, 국민들은 이를 '민주주의의 학살'로 규정해 주었다. 조선·동아일보 등 보수적 신문언론의 '능동적인' 부정적 보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국민들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가. 이에도 여러 요인이 작동하게 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인터넷 등을 통한 대안적 소통이 확장되고 있었다는 점을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의 미디어 보수세력의 부정적인 보도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그에 반하는 반대정보들이 소통되고 반대의 해석들이 유통되는 사이버통로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탄핵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에 대항하여 그것이 분노로 끝나지 않고 국민적 행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주요한 힘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소통이라고 본다. 현재의 시민사회의 비판적 역동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근거가 바로 이러한 테티즌들의 대안적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집회에서 인터넷 동호회 깃발들도 정치적 집회에서 발견된 것도 이런 점에서 의미있는 현상이다.(이러한 요인들과 함께, 현재의 탄핵정국의 출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독특한 캐릭터가 작용하였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자수성가한 사람의 독특한 개성과 동시에 자기중심적 태도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탄핵 직전의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타협적'인 자세로 접근하였다면 탄핵국면으로 치닫지 않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에까지 이르게 한 그러한 원칙에 대한 고집은 그러한 타협적 접근을 거부하는 식으로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이것이 '기획설'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에 대한 언급 같은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야당시절의 발언과 대통령으로서의 공적 발언을 혼동한 대단히 비판받아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그 언급도 자신의 고집스런 원칙--청탁 관련 거부--을 강조하고자 한 대목이었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양면성을 말해준다. 한편에서 열렬한 지지를 촉발하는 캐릭터가 다른 한편에서는 격렬한 갈등을 촉발하는 캐릭터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개인주의와 냉소라는 일반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네티즌들이 민주주의의 위기국면에서 소통과 참여의 주체로 전환된다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이버 소통의 독특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도해하면 다음과 같다.
3. 노무현정부를 둘러싼 두가지 전선--탄핵정국의 복합성
탄핵정국은 분명히 의회 보수세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의 침범에 의해 야기된 국민적 항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여기에는 복합적 세력들이 결집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2004년의 탄핵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87년 6월 민주항쟁과는 다른 특수성이 존재한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복합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나는 두 개의 전선론을 가지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즉 국민정부와 참여정부 하에서는 두 개의 전선이 공존하고 있다. 하나는 수구보수정치세력과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세력 간의 대립전선이며, 다른 하나는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세력 대 진보적 개혁세력 간의 대립전선이다.(정치사회적 세력의 이념적 성격 분화구도에 대해서는 조희연, 1998, {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당대, 3장 5절 참조.)
노무현 정부 1년을 돌이켜 본다고 하면 이라크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시민사회세력이 노무현 정부를 탄핵해야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수구보수세력은 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비판하면서 탄핵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1년 동안 이라크파병문제, 수용소 발언 등 미국에서의 친미적 발언, 노동자 손배소·가압류 문제를 둘러싼 노동자 분신문제, 비정규직 문제, 새만금 문제 등을 둘러싸고 시민운동세력이나 민중운동세력 내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비판과 저항을 행하여 왔다. 반대로 보수세력은 3·1절 집회나 8·15집회 등을 통해서 친미주의와 보수주의의 입장에서 노무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다양한 비판과 저항을 행하여왔다. 이것은 국민정부 이후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쉽 스타일이나 언행, 국정운영의 미숙함 등과 같이 수구보수세력과 진보적·급진적 세력이 공히 비판적이었던 사안들도 존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특별히 국민정부 이후 개혁을 둘러싼 두 개의 전선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반개혁적 수구보수세력과 개혁세력 간의 대립전선이며 다른 하나는 개혁세력 대 그 개혁의 한계성과 불철저성을 비판하는 진보적·급진적 세력 간의 대립전선이다.(사실 이러한 이중적 전선은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시민혁명기에 구 왕당파적 수구보수세력 대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개혁세력의 대립이 존재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개혁세력 대 프롤레타리아적·민중적 저항세력 간의 대립이 존재하였던 것이다.) 이 두가진 전선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지만 특정 국면에서 합류하거나 중첩되게 된다. 탄핵은 첫 번째 전선에서 보수세력의 대대적인 '수구'적 공세에 따라서 두가지 전선이 합류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는 일반민주주의가 극대로 위협을 받게 될 때 일반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에 진보적·급진적 세력들이 연대해온 통일전선론적 맥락에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전선에서의 대립이슈는 주로 지역주의와 부패 문제였다. 지역주의와 부패문제를 둘러싸고 수구보수세력과 노무현적 개혁정치세력 간의 대립전선이 강하게 설정되었다. 여기에 노무현의 독특한 캐릭터가 결합되면서 탄핵정국과 같은 극적 국면이 형성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두가지 전선의 존재는 탄핵정국이 87년 6월 민주항쟁이 설정해 준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의 침범에 대한 저항으로 출현하였지만, 단순히 87년 6월 민주항쟁의 회복으로만 한계지워질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탄핵정국에서의 국민적 저항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을 최대의 정치적 수혜자로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주지하다시피 열린우리당의 지지가 20%대에서 50%대로 급증하였다. 이는 통상적인 정치변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치열한 반독재민주화운동의 최대의 정치적 수혜자가 DJ와 YS였던 점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2004년의 탄핵정국은 수구보수세력의 '역사적 반동'에 의하여 투쟁의 지형 자체를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탄핵무효와 민주수호로 합류하고 있지만, 그 내부에는 노무현 지지세력도 존재하지만 진보적인 노무현 반대세력도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위의 표(생략)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진보적·급진적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노무현적 개혁세력--이는 나는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라고 본다--은 지역주의나 부패 문제를 둘러싸고 수구보수세력에 비해서 분명히 '개혁'세력인 것은 분명하고 이 점에서 탄핵정국은 부패정치와 지역주의정치의 청산과 유지를 둘러싼 전선에 집중하여 있지만, 반대로 여타의 쟁점에서는 노무현적 개혁세력의 한계를 중심으로 진보적·급진적 세력의 도전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컨대 이라크 파병문제를 둘러싸고는 노무현적 개혁세력, 즉 중도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은 한나라당과 똑같이 친파병세력이었으며 한나라당과 이점에서 연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더큰 흐름에서 보면 세계화와 관련된 정책에서도 노무현적 개혁세력과 보수세력의 차이 보다는, 노무현적 개혁세력 대 진보적·급진적 세력의 차이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세계화에 대응하여 이른바 신자유주의정책--노동유연화나 국제경쟁력 강화 정책 등--에 대해서는 보수세력이 제한된 개혁마저도 거부하면서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데 반하여 제한된 개혁정책이나 사회보장정책을 수반하면서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87년 이후의 과정이 '민주화와 세계화의 이중적 과정'(이러한 민주화와 세계화의 이중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조희연, 2003, "정치사회적 담론의 구조변화와 민주주의의 동학: 한국현대사 속에서의 지배담론과 저항담론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조희연 편, {한국의 정치사회적 지배담론 변화와 민주주의의 동학: 한국 사회운동과 민주주의의 동학(3)}, 함께읽는책; 조희연, 2002, "정치적 자유화의 '축복'과 경제적 자유화의 '재앙'--문민정부와 국민정부의 정치경제개혁정책의 구조적 성격", <시민과 세계> 2호, 당대)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민주세력'이 친세계화 정책이나 개방화 정책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적극적인 추진자가 되는 것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쟁점에 대해서는, 보수세력과 중도자유주의세력이 동질성을 갖게 된다. 세계화는 이전의 '전우(戰友)'--과거의 독재세력과 반독재세력--를 통합시켜 내고 있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런 쟁점을 중심으로 본다면, 노무현적 개혁세력은---수구적 보수세력과 구별하여--자유주의적 보수세력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도 촛불시위와 탄핵무효을 향한 국민적 저항이 단순히 노무현 정부 지지운동만으로 협애화되어서는 않된다. 오히려 수구보수세력에 공세를 받는 노무현 정부를 지원하면서도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러한 국민적 저항을 통해서 노무현 정부의 한계성이 성찰되고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되고 공론화되는 것을 내포하여야 한다.
이러한 두가지 전선은 약 17년 전 6월 민주항쟁 시기에 비해서 우리 사회가 분화되고 의식과 실천이 성장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비록 촛불시위가 87년을 지키려는 성격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87년 이후의 우리 사회의 의식과 실천행동의 발전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탄핵정국에서의 국민적 저항이 단순히 노무현 지지운동으로 되어서는 않된다. 보수정치세력의 반민주주의적 폭거를 극복하는 동시에, 노무현 정부의 성찰과제, 노무현 정부의 한계지점들을 성찰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진보적·급진적 세력은 바로 이러한 수구보수세력의 역사적 반동으로 조성된 '우경화' 국면에 어떻게 대중과 함께 호흡하면서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동시에 민주주의를 확장심화시켜 낼 것인가하는 과제를 고민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4. 민주주의의 확장 및 심화를 위한 과제--탄핵정국의 진통을 승화시키기 위하여
이상의 논의를 전제로 할 때, 한국 민주주의의 수호를 넘어서서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장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주목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첫째, 탄핵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탄핵이 가능했던--보수세력의 의회독점을 깨는 단계로까지 발전해야 한다. 단순히 탄핵 자체를 반대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수구보수세력의 의회독점을 깨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6월 민주항쟁의 미완의 과제를 완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6월 민주항쟁이 성취하고자 하였던 민주주의는 사실 여러 정치세력들의 다원적 권력균형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사실 87년 이후 정치개혁이 전면적으로 수행될 수 없었던 것은 구 체제에 기득권을 갖는 정치세력이 의회의 다수자적 지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탄핵정국을 둘러싼 긴장은 우리 정치가 진정으로 다원적 정치질서로 가는 건전한 긴장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다원적 정치질서로 가는 데 있어서 보수세력의 의회독점이 깨어지는 것은 중대한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탄핵정국은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미완성으로 남겨진 한국정치의 다원화로 가는 긍정적인 계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의회독점의 균열이 결코 열린우리당의 다수당화(多數黨化)로만 사고되어서는 않되며,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의 괴리를 극복하는 계기로 되어야 한다. 현재의 제도정치는 단순히 지역주의와 부패의 극복으로만 협애화될 수 없는, 다양한 계급계층적 이해를 대의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지평이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 등 진보적 정치세력들이 참여하는 개방화된 제도정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현존 한국제도정치의 문제점은 수구보수세력과 노무현적 개혁세력(중도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의 쟁점인 지역주의와 부패에 의해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정치와 시민사회의 다원적인 요구가 대의되지 않는 '배제의 정치구조'에 의해서도 주어진다. 이러한 배제의 구조는 반공주의, 지역주의, 권위주의의 유산에 의해서 재생산되고 있따. 이런 점에서 보수세력의 의회독점이 깨어지면서 이것이 보수세력 및 중도자유주의세력 간의 의회 내의 권력균형이 이루어지는 계기이자 동시에 진보적·급진적 세력에게도 의회참여권 및 경쟁권이 주어지는 개방적인 구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현존 제도정치세력들에 의해서 '대의되지 않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목소리가 대의되는 제도정치질서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째, 보수세력의 자기성찰과 성찰적 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혹자는 탄핵정국을 통해서 보수와 수구가 분리됨으로써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가 출현하는 계기가 된다고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앞서 서술한 바대로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은 세상을 왜곡되게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이 민주화가 가져오는 거대한 변화를 수용하는 전제 위에서 자기정체성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거대한 변화 속에는 자신들의 기득권의 재조정 및 박탈도 포함되어 있다. 의회보수세력은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의 하향 재조정을 '방어적 위기의식'의 관점에서만 바로볼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보수가 수구로부터 분리되고 합리적·개혁적 보수로의 '거듭남'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대선 이회창 총재의 은퇴회견에서 '한나라당이 개혁적·합리적 보수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라는 충고는 이 탄핵정국에서 음미해볼 대목이 된다.
합리적·개혁적 보수의 탄생은 민주개혁으로 인한 변화를 위기의식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자세를 넘어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다원적 정치질서라는 것은 과거의 권위주의체제에서 패권적 지위를 누렸던 보수세력의 힘이 하향조정되고, 소수자적 지위를 누렸던 개혁·진보세력의 힘이 하향조정되어, 다원적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데서 가능해진다. 이런 점에서 보수세력이 하향조정된 상황을 수용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탄핵은 이러한 도도한 변화를 역류하여 의회보수세력이 수구화·퇴행화한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탄핵정국은 이 땅의 보수세력의 자기성찰의 계기로도 되어야 한다.
네째, 공론영역의 왜곡이 극복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앞서 서술하였듯이, 탄핵과 같은 '자충수'는 기본적으로 왜곡된 여론구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적 신문언론들이--여론을 '보도'하기 보다는--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서 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어가기 위한 정치적 행위를 매일매일 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한국의 신문언론이 지나치게 '정치화(政治化)'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상식의 수준에서 볼 때 언론기관은 정당이나 정치집단이 아니다. 공론영역의 정상화는 위해서는 언론이 이러한 정치집단적 의식을 버리고 보도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탄핵정국은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신문언론들의 탈(脫)정치화와 민주적 정상화라는 과제를 성찰적으로 고민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탄핵정국을 계기로, 보수적 신문언론 내부에서의 자성적 개혁노력이 필요하다.
다섯째, 노무현 정부의 한계를 직시하고 노무현 정부의 한계지점들이 비판되고 극복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탄핵은 수구보수세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는 개혁적·진보적 대중들을 국민적 저항대열에 합류시켰으나 이 대열에 합류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노무현 정부에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직시하여야 한다. 사실 탄핵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대단히 낮은 수준을 지속하는 것이 바로 이를 상징한다고 생각된다. 탄핵이 국민적 압력에 의해 철회되더라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진보적 비판의 쟁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시민적 비판과 민중적 비판이 다시 '들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여섯째, 이런 점에서 촛불시위의 현장은 '탄핵무효''민주수호'라는 깃발만이 아니라다양한 깃발이 펄럭이는 개방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 '촛불의 미학'은 탄핵에 반대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억압하는 식으로 작동해서는 않된다. 촛불시위는 기본적으로 '최소주의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나 최소주의적 운동 속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촛불시위의 현장은 '차이 속의 연대'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
촛불은 그 빛 속에서, 모든 차이를 동질화하는 측면이 있다. 수구보수세력의 반민주적 역류행위에 대해서는 연대하여 저항하여야 하지만 동시에 내부의 차이들이 존중되어야 한다. 진보적·급진적 세력들도 자신들의 주장을 무차별적으로 '강제'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차이 자체가 드러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또다른 규율일 수 있다.
최소공약수적인 구호를 공유하면서도 다양한 하위 구호들이 들려질 수 있어야, 촛불시위의 현장이 진정한 열린 공간이 된다고 생각된다.
일곱째, 탄핵국면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이 땅의 민주세력--개혁, 진보세력--에게도 도전으로 다가온 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탄핵정국 조차를 다원적 정치질서로 가는 진통이라고 해석할 때, 개혁적·진보적 세력들도 더욱 책임성을 담보하는 세력으로 자기진보를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이 땅의 개혁적·진보적 세력들은 단순히 저항자의 지위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3·1절 집회와 8·15집회에서 '수평적으로' 두가지의 대립적인 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은 개혁적·진보적 세력들이 소수자의 지위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새로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지혜롭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보수세력의 수구성이나 퇴행성으로부터 '반사이익'을 얻는 단계를 넘어가서,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책임있는' 세력으로 자기발전해야 한다.(2004년 3월 24일 중앙일보에 실린 보통아줌마의 칼럼은 역설적으로 이를 촉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김경숙, "진보여, 진짜 모습을 보여달라") 이러한 자기발전에는 단순한 저항의 차원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운영에 대한 책임있는 비젼과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을 포함한다. 보수세력이 성찰적 노력을 통해 개방성을 제고하여 가야 한다고 하면, 이 땅의 개혁적·진보적 세력들은 더욱 책임성을 제고하여 가야 한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탄핵정국을 둘러싼 갈등 자체가 한국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방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촛불집회에 대해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금지조치를 내리고 야당에서 이를 불순한 정치집회로 비판하고 있는데, 오히려 평화주의적 방식으로 탄핵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표출되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격찬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탄핵과 같은 극단적 행위에 대해서 또다른 극단적 저항을 표출하지 않고 이를 촛불시위와 같은 승화된 형태로 표출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의식의 성숙이며 한국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80년대에서와 같은 '전투적인' 양상으로 표출되지 않는 것은, 한국민주주의의 지그재그식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한국민주주의가 부단히 정착하여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에는 선거가 1달 밖에 남지 않는 독특한 상황이 작용하고 있다. 4·15총선이 목전에 있음으로써, 탄핵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총선에서의 투표로서 '응징'하고자 하는 의식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선거를 통한 '응징'의 자세는 비판받아야 할 태도가 아니라 민주사회에서는 권장되어야 할 덕목이기 때문이다. 만일 선거가 3년이 남았다면, 분신이나 똥물투척, 과격한 의사표출, 전투적인 가두투쟁 등으로 국민적 저항이 표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음으로 오히려 국민들의 분노가 민주주의적 통로를 통해서 표출되는 방향으로 유도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신들의 불만과 저항을 선거를 통한 선택을 통해서 단행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촛불집회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나, 선거관리위원회의 규제발언은 한국 국민의 민주주의적 성숙성을 고려하지 않은 태도라고 아니할 수 없다.
5. 맺으면서: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새로운 관계모형을 창출하자
맺으면서, 나는 탄핵국면에서 표출되는 한국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역동성을 단순히 탄핵저지 차원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제도를 형성하는 차원으로까지 승화되어야 한다고 점을 강조하고 싶다. 탄핵정국은 제도정치에 반하는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의 상호관계를 보다 모범적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제도적 모델을 만들어야낼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운동----시민운동 및 민중운동--간의 관계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는 제도정당 주도형의 유럽형 모델이 있을 수 있다. 유럽사회의 경우 좌파정당이나 진보정당(노동당이나 사회당 등)이 제도화되어 있어 시민사회의 요구가 제도정당에 의해 폭넓게 반영되는 상태에 있다.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럽형은 시민사회의 정치적 의사와 요구를 '대의'하는 데 있어 정당의 역할이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둘째는 다원적인 이익집단들이 중요하고 시민사회운동 조직들은 시민사회의 요구를 제도정치에 반영하는 '로비형' 조직으로 존재하는 미국형 모델이 있을 수 있다. 미국 사회에서 다원적인 다양한 사회운동조직들이 존재하지마는 시민사회의 정치적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는 데 있어서의 사회운동조직들의 직접적인 정치적 역할은 상대적으로 주변화되어 있다. 셋째 제도정치가 권위주의적 국가로부터 충분히 독자화되어 있지 않고 시민사회의 정치적 의사와 요구를 반영하는 데 있어 시민사회운동조직의 역할 역시 크게 발전되어 있지 않은 후진국적 유형을 들 수 있다. 후진국에서는 민주주의이행국면으로 들어섰지만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 억압과 통제'의 유산이 충분히 극복되지 않은 상태에 있고 그러한 유산을 넘어서는 시민사회운동조직의 적극적인 대의적인 역할 역시 충분히 발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다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 있어서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운동의 상호관계'를 보게 되면 후진국적 유형을 벗어난 상태인데, 향후 유럽형 모델로 가느냐 미국형 모델로 발전해 가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시민사회운동이 '정치'에서 갖는 강력한 이니쉬어티브와 영향력, 상대적으로 지체되어 있는 제도정치, 세계화가 가져오는 국내적 제도정치의 독점적 지위의 약화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유럽형이나 미국형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근대적' 과제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제도정치로 진입함으로써 시민사회운동의 요구가 일정하게 진보정당을 통해서 대의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시민사회운동이 일상적인 국면에서 직접민주주의적 기구로 작동하는 새로운 제도적 모형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근대민주주의는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권력을 국민들이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선출된 대표들에게 모든 권력을 위임하여 '정치'를 대의기구들에게 독점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탄핵국면은 사실 선출된 대표자들이 선출 이후 일상적 국면에서 국민들과는 무관하게 '전권'을 가지고 있는 대의민주주의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영향력의 정치, 운동정치, 시민사회운동정치, 시민정치, 민중정치로 대표되는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일상적 국면에서 대의기구에 의해서 대표되지 않는 국민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대의'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제도적 모형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소환제도와 같은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더나아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선거 간(間) 국면에서 대의민주주우의의 한계를 보완하면 시민사회운동들이 제도정치에 일상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참여민주주의의 정신을 구현하는--제도적 시스템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제도정치의 위기와 그 한계가 극명하게 노정되는 국면이야 말로 창조적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된다면 탄핵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진통 마저도, 제도정치와 운동정치가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일상적으로 교정되는 한국적·세계적 모델이 배태되는 산고(産苦)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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