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강준만의 퇴장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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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5일 16시 23분 5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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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퇴장을 보면서

진보누리 / 진중권

진지하게 쓰지요. 강준만씨가 한국일보에 쓰던 칼럼의 연재를 중단한다고 밝혔군요. 앞으로 "자성"을 하겠다고 합니다. 강준만씨가 이런 식으로 물러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게 "자성"할 일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고, 현실에서 그 견해가 그저 적합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정이 났던 것뿐입니다. 필요한 것은 도덕적 "자성"이 아니라 (저는 이 빌어먹을 문화도 싫습니다), 그동안 자기 논리의 모순, 말하자면 자기가 사용했던 기준에 자신의 발언이 어긋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점검하는 논리적 "점검"이겠지요.

1. 강준만과의 인연 제게는 처음부터 강준만씨의 패러다임이 '김대중주의=호남지역주의' 위에 서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그의 글이 전부 다 오로지 김대중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비판을 했지요. 그때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괴상한 지식인 유형론을 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그는 대단히 히스테리컬하게 반응을 했습니다. 거의 죽자사자의 태세였지요. 심지어 '인물과 사상'에 글 세 번 실어준 것으로 저를 키웠다고 저에 대한 양육권까지 주장하시더군요. 그걸 보며 대단히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외려 '오버'를 한 강준만을 감쌌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강준만과 붙어 봤자 조선일보만 좋아하지 않겠어요? 그후 저는 그가 고소를 당했을 때 "나를 고소하자"며 안티조선 운동에 뛰어들었고, 덕분에 그에게 "이 사회의 의인"이라는 작위까지 얻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의인" 아니거든요. 그냥 상식인일 뿐. 하여튼 그 촌스러운 찬사를 대단히 불편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사회에 악인과 의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인이나 의인이 될 주제가 못 됩니다. 그냥 자기 견해를 가지고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도덕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하여튼 의인 작위식을 보면서 "이 분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달라지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위 '옥석논쟁' 때 그는 나를 다시 저 바닥으로 끌어내리더군요. 책 두 권 분량으로 갖은 욕설을 다 퍼부어 놓았더군요. 양이나 질적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아마 그가 그 동안 조선일보에 퍼부은 욕설보다 내게 퍼부은 욕설이 더 많을 겁니다. 물론 지나가는 길에 슬쩍 사과는 했지만, 저는 아직 그것을 제대로된 사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강준만의 논리는 그때 이미 파탄이 난 겁니다. 저 스스로 그것을 알았겠지요.

2. 강준만의 두 가지 문제 제가 괜히 강준만을 건드린 것은 아니고, 그의 글쓰기를 보며 내가 느꼈던 점을 얘기했던 것 뿐입니다. 첫번 째 비판에서는, 그의 글쓰기의 기준이 상식/몰상식 혹은 사회적 공공선 위에 서 있기보다는, 김대중과 그의 당을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었습니다. 이제 제 지적은 사실로 드러났지요. 두번 째 비판은 그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꾸 기준을 이리저리 바꾼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논리적 비일관성에 대한 지적이었지요. 이것 역시 이제 충분히 드러났다고 봅니다.

한때 강준만으로부터 책 두 권 분량의 욕설을 듣고, 그 지지자들로부터 인터넷을 통해 매일 다구리를 당하면서도, 제가 지면을 통해 그에 대한 공적 비판을 하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를 비판할 사회적 맥락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준만처럼 마음에 안 든다고 저 역시 책 두 권 분량으로 그를 욕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게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비판도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저 개인의 한풀이에 불과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드러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강준만 지지자들과의 논쟁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이것은 더 이상 논리적 싸움이 아니라 어떤 신앙과의 싸움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예수병 환자나, 불교병 환자와 합리적인 논거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지요. 다만, 그들의 논리가 자기모순으로 가득 찬 이상, 시간이 지나면 현실에 의해 자동적으로 반박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면 저의 귀차니즘입니다.) 3. 지역주의의 몰락 강준만이 파탄에 이른 것은, 제가 제일 먼저 지적했던 그 부분 때문입니다. 즉 그의 글쓰기가 철저하게 김대중과 호남지역주의라는 패러다임 위에 서 있다는 것이지요. 그는 옳고/그름의 기준으로 김대중과 호남지역주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김대중과 호남지역주의를 가지고 옳고/그름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아주 심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 부분을 지적했다가 독일에서 살해협박까지 받았습니다. 이것이 제가 최초로 그 열성적인 지지자들과 가진 접촉이었지요.

물론 강준만은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굳게 믿었겠지요. 또 사람에게는 그렇게 믿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를 옳고/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할 강준만이라는 지식인을, 민주당의 선동가 내지 이데올로그로 만들어버렸지요. 김대중과 호남지역주의를 절대적 진리로 삼다 보니, 민주당의 몰락과 함께 그의 글질도 멈출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의 진리가 몰락해 버렸거든요. 그러니 할 말이 뭐가 남았겠습니까? 이제 다 드러났지요. 그가 노무현을 지지한 것은 김대중의 적자인 한에서였다는 사실, 노무현이 흔들릴 때에 그가 침묵한 것은 노무현보다 그에게는 민주당이 더 우선적 가치였기 때문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쪼개져 나갈 때에 열 가지 이유를 들어 "열린우리당이 실패할 것"이라 저주를 퍼부은 것이라는 사실. 이미 민심은 민주당을 떠나고 있는데, 그 당을 계속 지지하려다 보니 논리가 꼬이고, 자기모순을 범하고, 그러다가 탄핵사태를 만나 완전히 파탄이 나 버린 것입니다.

강준만이 깨닫지 못한 것은 민주당 역시 지역감정의 수혜자였다는 사실입니다. 호남 대 영남이라는 지역주의적 정치구도는, 거기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영남당과, 그 구도에서 두번 째로 큰 이익을 보는 호남당 사이의 암묵적 야합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사실. 강준만은 이를 보지 못한 거죠. 그래서 오로지 영남당만 지역주의를 유포하는 악마의 세력이고, 호남당은 거기에 반대하는 천사의 세력이라는 천진난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차피 영남과 호남은 공범입니다. 꽂아내도 당선되는 분위기. 기득권 유지의 이상적 조건이지요. 양자는 그저 대권을 놓고 부딪힐 뿐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그런 의미에서 호남당과 영남당 모두에게 위협적인 사건이었지요. 이번 탄핵사태에서 강준만은 아마 깨달았을 것입니다. 기득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영남당과 호남당이 한 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탄핵시도는 결국 그 동안 지역주의 구도가 한나라당만의 책임이 아니라, 실은 민주당-한나라당의 공모에 의해서만 가능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여기서 강준만이 거의 종교적 진리처럼 지녔던 신념이 와르르 무너진 거죠.

4. 강준만의 컴백을 기대하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실수를 어떻게 가공해내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강준만은 그 동안 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해 왔다고 봅니다. 그 동안 소외되었던 호남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의 문제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지식인들이 제 스스로 무덤에 기어들어가 닭짓을 할 때 나름대로 현실참여의 물꼬를 터 준 공은, 우리가 오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그저 자기 논리를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할 특정 시점에, 계속 낡은 패러다임을 고집하는 실수를 했을 뿐입니다.

제가 보기에 "자숙"을 해야 할 사람은 강준만이 아닙니다. 한때 그를 교주처럼 모시다가 이제는 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숙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과연 강준만의 '글'을 사랑한 걸까요? 아니면 그의 글 속에 표명된 정치적 '입장'을 사랑한 걸까요? 저는 후자라고 봅니다. 그리고 글쟁이의 글을 논리전개, 제시된 근거 등의 텍스트 내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유불리의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썩어빠진 독자넘들이야말로 정말 '자숙'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강준만이 제가 지적한 두 가지를 이제라도 되돌아보고, 자신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분석하여, 자기 입장을 좀 더 나은 논리로 재무장하여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강준만의 보수성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가 진보정당을 지지할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열우당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대변할 글쟁이도 거의 없는 상황 아닙니까? 오죽하면 서영석 류가 설치겠습니까. 걔들은 어차피 수준이 안 됩니다. 바로 거기에 강준만의 몫과 역할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출처 : 진보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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