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4..6.10.(목)
[시론] ‘국보법 철폐’ 盧정부 시험대
노무현 정부는 자신을 개혁정권으로 자처해 왔다. 그러나 노 정부가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개혁과 관련해서는 여야간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 여야가 차이를 보이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민주개혁의 문제이다. 노 정부는 그간 다수당인 야당이 발목을 잡기 때문에 민주개혁을 적극 추진할 수 없었다고 변명해 왔다. 그러나 17대 총선을 통해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됨으로써 이제 그런 변명이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되었다. 민주개혁이 얼마만큼 이뤄질 수 있는가는 무엇보다 노 정부와 여당의 의지에 달린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 민주주의를 ‘반신불수의 민주주의’로 만들고, 더 한층의 민주주의 진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국가보안법이다. 때문에 노무현 정부가 과연 민주개혁을 추진하는 정부인지는 무엇보다 노 정부가 국보법 철폐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인지의 여부에 의해 판별나게 되었다.
- 체제수호 반민주 악법 -
국보법은 북한을 대표적인 ‘반국가단체’로 낙인찍고 있다. 이 법에 따른다면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통일이란 ‘북한 타도’ 이외에는 없다. 그렇지만 북한을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남북한간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임을 위정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국보법은 시대착오적이다. 이 시대착오적인 법을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북한 방문이나 북한주민들과의 접촉이 정부의 사전 또는 사후 승인을 받았는지 아닌지가 국보법 위반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되었다. 때문에 국보법의 성격이 변질되었다. 남북한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들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된 것이다.
국보법은 ‘반민주적인 체제유지법’이다. 이 법은 잠재적으로 현존하는 남한체제의 변혁을 추구하는 모든 정치적 행위를 ‘반국가적 행위’나 ‘이적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 그간 반자본주의 경향의 운동은 물론 민주화를 위한 운동들이 국보법 위반으로 처벌받아 왔다. 그러나 체제 변혁을 추구하는 행위일지라도 평화적 방법으로 추구하는 한 그 행위의 자유까지 인정하여야 민주주의체제이다. 체제 유지를 위한 법적 장치는 형법으로 족하다.
국보법은 ‘반인권법’이다. 이 법은 학문·사상·양심의 자유와 같은 보편적 인권으로 인정받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에 본질적인 제약을 가한다. 그러나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것은 현실의 구조적 모순 등을 폭로하는 ‘체제비판적인’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보법은 그런 자유를 억압하고, 현존 질서 속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의 이익을 체제 수호의 이름으로 옹호하는 ‘수구적인 반민주적 악법’이다.
우리 사회가 그간 많이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국보법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때문에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북한주민과 접촉했다고 해서 처벌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적단체 결성 등의 혐의로 처벌받고 있으며, 남북한을 함께 품고자 노력해온 한 해외학자가 그의 학문적 저술을 통해 북한을 위한 주도적 임무를 수행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국보법은 우리 국민이 누리는 자유를 ‘새장 속의 자유’로 축소시키고, 그 새장으로부터 탈주하는 모두 사람들을 간첩이나 간첩동조자로 만드는 법적 장치가 되고 있다.
- 헌법에 위배 폐기 마땅 -
게다가 국보법은 사실상 그 모든 조항들이 죄형법정주의와 평등권 등을 보장하는 헌법상의 기본규정들조차 위배하고 있는 ‘헌법 위의 법’으로 군림하고 있다. 때문에 국보법은 개정되거나 새로운 법으로 대체되어야 할 법이 아니라, 유보 없이 폐기되어야 할 법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보법의 폐기에 나설 것인가? 제2기를 맞이하면서 노 정부는 그 이름에 합당한 민주개혁 정부인지, 아니면 ‘무늬만 민주개혁 정부’인지를 입증해야 할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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