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펌] 여의도는 우릴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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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6일 13시 55분 5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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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에 모여 '월드컵 축제' '6월항쟁'을 재현하자는 것보다...지금 시기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은 이런게 아닐까요?


"모두들 외면하니 이렇게라도 뜻 보여줘야..."
[르포]전남 보성 득량 주민들 전국최초 쌀개방 찬반 투표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국언(road819) 기자





▲ 13일 전국에서 첫 실시된 전남 보성 득량면 쌀 개방 찬반투표에 참석하기 위해 예당리 호동마을 할머니들이 투표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2004 오마이뉴스 이국언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쌀 개방이 대세라고 떠들어대고 기업이나 경제단체에서는 농민들 때문에 수출길이 막힌다고 몰아붙였다. 농사꾼한테 농사짓지 말라고 하는데 우리는 어디에 호소하란 말이냐. 도시 사람들은 늙은이들 데모하러 올라가면 교통체증 난다고 외면하고…. 이렇게라도 농민의 뜻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한·칠레자유무역 협정 국회통과로 낙심해 있던 농민들이 재기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쌀 수입 전면개방에 대한 찬반을 묻는 총투표가 13일 전남 보성 득량에서 전국 최초로 실시됐다. 농민들이 쌀 수입 개방 저지를 위해 스스로 주민투표를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득량농민 총투표는 농민들의 쌀 개방 반대의사를 공정한 투표를 통해 확인하고 농민들의 쌀 개방에 대한 입장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목적. 법적 구속력과는 무관하다. 농민들은 이번 투표결과를 투표용지와 함께 청와대에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4월부터 쌀 재협상, 투표결과는 청와대에 전달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둔 바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총 투표를 감행하는 것은 우리농업이 처한 절박한 상황 때문. 오는 4월 20일부터는 미국을 시작으로 UR 협정에 따른 쌀 재협상이 예정돼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 1월 WTO에 쌀 재협상 의사를 통보한 바 있고, 지금까지 미국, 호주, 중국, 베트남 등을 비롯한 10여개국에서 협상의사를 밝혀온 상태다.



▲ 보성 득량 제9투표소인 예당리 호동마을 투표장 모습. 주민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한분은 투표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04 오마이뉴스 이국언

이미 생기를 잃은 농민들이 연거푸 탄식을 쏟아낸다. 중장비나 농기계 장비를 운전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는 선형수(36)씨는 "어르신들로부터 '투표해 봐야 뭐 하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허탈감에 빠진 농민들의 민심을 대신 전해줬다.

선씨는 "쌀, 보리가 주 작물인데 하우스작물에 손댄 젊은이들은 절망상태에 있다"며 "한때는 하우스 일이 돈이 된다고 했지만 빚만 지고 더 헤어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2년 새에 걸쳐 농민 회원만 7∼8명이 득량을 떠났다"며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이 어디 가서 술 마시거나 도박한 사람들도 아니다"고 안타까워했다.

득량면 제9투표소인 예당리 호동마을 투표현장. 한때 130여호 되던 호동마을도 불과 10여년 사이 80여호로 줄었다. 그중 70세 전후가 대부분이다. 한 겨울 농한기에 접어들면 남자들 중 20∼30% 정도는 건설현장 막일에 나간다는 게 동네 이장의 설명이다.



▲ 예당리 덕산마을 투표소 앞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 뒤편은 300여평의 밭에 갓을 재배했지만 시세가 없어 수확기를 넘어서도 손을 못대고 있다. 갓 출하 적기는 이미 지난해 11월이었다.

ⓒ2004 오마이뉴스 이국언
이 마을 투표관리위원장인 문승관(48)씨는 "농민의 현실을 알리려 해도 방법이 없다"며 정부와 언론에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문씨는 "정부나 기업에서는 농민들 때문에 수출이 안 된다고 하지만 농정이 파탄 나면 농민만 죽느냐"며 "농기계업체, 종묘사, 농약제조사, 하우스시설 철강업체 근로자들도 줄줄이 직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들은 어떻게 하나"

문씨는 "젊은 사람은 도시로 나가 일이라도 한다지만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시골 노인들은 어떻게 하느냐"며 "쌀 한 가마니라도 자식들 보태주고, 자식들한테 빚 대물림만큼은 안 해보려고 죽도록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문씨는 또 "소련이 왜 미국한테 무릎을 꿇었느냐"며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양찬석(77)씨는 투표장에 들어서자마자 한마디를 내뱉는다. 양씨는 "지그들은(자기들은) 개방되면 우리 쌀 퍼먹지도(사먹지도) 않을라믄서 왜 남들(농민들) 못할 일 시키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힘이 부쳐 농사일도 못 한다는 양씨는, 5년전 있던 논 마저 다 내 놨다고 말했다.



▲ 보성 득량 농민연대 주최로 경기, 경남 등 타 지역에서 방문한 농민단체 관계자와 주민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농민총투표에 대한 보고대회를 갖고 있다.

ⓒ2004 오마이뉴스 이국언




▲ 주름이 깊게 배인 할머니들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왼쪽은 투표현장을 방문한 민주노동당 전종덕 전남도의원.

ⓒ2004 오마이뉴스 이국언

농민들의 말 속에 이미 깊은 상처가 배어있었다. 한·칠레 FTA를 통과시킬 때 정부와 언론에 의해 농민들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한 데 대한 반감이다. 이정민(43) 농민회 득량지회장은 "어느 나라 정부가 농민과 도시민을 싸움 붙인 정부가 있었느냐"며 "찬반을 떠나 이해시키는 과정이 있어야 됐는데, 농민을 이기주의에 물든 사람들로 몰아갔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농민들한테 농사짓지 말라는 것은 직장인들한테 근무하지 말라는 말과 같은 것 아니냐"며 "그대로 앉아 시체가 안되려면 지금이라도 국민들을 설득시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쌀과 같은 사회적 안보산업은 결정과정이 중요하다"며 "사회적 논의를 거쳐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전국에서 처음 실시하는 농민투표 현장에는 전농 정책실장을 비롯 경기도 여주와 경남 등 농민단체 관계자 10여명도 보성을 찾아 이날 투표현장을 꼼꼼히 모니터링 했다. 전국농민연대 등 농민단체들은 이번 농민투표를 시작으로 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한편, 재협상을 앞둔 정치권을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전남지역에서는 이날 보성을 시작으로 25일에는 해남군 전역에서 농민투표가 실시되며, 나주, 무안, 순천, 곡성 등에서도 쌀 투표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경기도 여주도 이달 중 농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농민단체들은 쌀 개방 반대여론의 여세를 몰아 올해 말 국민투표를 관철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 2월 농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여의도 아스팔트에서 물세례를 당한 농민들. 시름에 잠긴 농민들이 새 봄과 함께 다시 일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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