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선거를 여는 사람들의 총선이야기 Another0415
김용서, 김용옥, 그리고 범국민행동[펌: 경향 칼럼]
김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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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4월 06일 09시 58분 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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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쿠데타, 민중봉기, 6월항쟁


기분이 좀 더럽지만, 잊자. 탄핵소추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좌익혁명’이라고 이화여대 김용서 교수가 아무리 우겨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니까. ‘노무현 좌익정권’을 타도하려면 군부 쿠데타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극우들의 썰렁한 농담일 뿐이다. 알고 보면 그들도 불쌍한 이웃이다. 군사정권이 끝난 지 벌써 17년이 지났고, 김대중·노무현 등 ‘불순세력 집권’은 2기로 접어들었다. 총선도 전망이 없다. 그들에게는 정말 방법이 없다. 그것밖에는.

그런데 도올 김용옥씨의 느닷없는 민중봉기 선동은 무언가. 현 정세가 동학혁명 때와 같으니 민중혁명을 해야 한단다. 민중의 함성이 곧 헌법인데 헌법재판소가 무슨 탄핵 판단을 하느냐며, 헌법을 불사르라고 자못 신파조이다. 그가 노무현 대통령 지지도 20%대일 때 ‘군주방벌론(君主放伐論)’을 제기했다면, 그 발언은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 이래로 권력자와 재벌의 성은(聖恩)을 갈구해온 그가 무슨 불만이 있다고 이렇게 흥분하나. 고립무원의 ‘쿠데타 세력’에는 처절함과 비장미라도 있지. 끊임없이 ‘권력’을 욕망하는 이런 천박함이 또 어디 있나.

-탄핵정국 제각각 해석-

방향만 다른 두 사람의 ‘뒤엎기 소동’은 더 지켜볼 게 없다. 그러나 왜 이런 소동이 발생했는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탄핵정국에 단순·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유행 때문에 두 김씨도 이러는 게 아닐까. 많은 이들이 촛불시위를 ‘제2의 6월항쟁’이라고 부른다. 6월항쟁은 군사정권을 끝내고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쟁취한 운동이다. 지금 기성정치는 당연히 이 토대 위에 있다. 한나라당도 민정당은 아니다. 그런데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탄핵정국을 6월항쟁이 설정한 ‘민주주의 최저선’이 도전받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나 ‘의회 쿠데타’조차 헌정질서 내의 일이다. 헌법재판소를 기다릴 것도 없이 야당은 이미 자살 판정을 받았다. ‘최저선’은 이상없다.

그런데도 탄핵정국을 흔히 ‘개혁 대 수구’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이해한다. 탄핵과 저항의 스펙터클이 그런 단순화를 유도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탄핵정국은 6월항쟁처럼 ‘우리’와 ‘그들’간의 대결이 아니다. 이번 대결을 주도한 세력이 누구인가. 자칭 ‘민주정통세력’ 민주당이다. 탄핵정국은 오랜 민주화 세력이 분열하고 충돌한 것이다. ‘우리 안의 낡은 것’과의 대결. 이것이 탄핵정국의 키워드이다.

'낡은 것’은 도처에 있다.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집권세력에도 있다. 집권한 민주화세력도 부패하고 보수화했다. 탄핵정국은 이 기득권화된 민주화세력의 낡은 유산, 더 이상 시대를 견딜 수 없는 부문을 해소하는 자기분열, 자기분화 과정이다. 자연히 대치전선도 복잡하다. 하나의 구호로 재단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다른 가치있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또다른 규율적 권력이 될 것이다. ‘차이’ 때문에 ‘연대’를 포기해서도 안되지만, ‘연대’ 때문에 ‘차이’를 포기해서도 안된다. ‘차이 없는 연대’는 민주주의를 정체시키기 때문이다.

-결국은 ‘우리안의 개혁’-

이어령씨의 1962년 저작 ‘흙속에 저 바람속에’에 이런 장면이 있다. 어느 좁은 시골길. 노부부가 길을 간다. 뒤에서 지프가 경적을 울린다. 놀란 부부는 길 가장자리로 비켜서지 못하고, 서로 손을 부둥켜 잡은 채 뒤뚱거리며 앞으로만 내달린다. 민주주의는 아직 배고프다. 탄핵정국을 넘어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깨어있지 않은 자는 노부부처럼 자신도 모르게 장애물이 되고, 역사에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 〈이대근/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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